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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6일 토요일

20세기 기적 등

통일까치소리<19>-20세기 기적 등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9/04/06 [16:34]  최종편집: ⓒ 자주시보

-20세기의 기적, 세금 없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 ​(1)
- 재 캐나다동포 리상명 -

요즘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은 세금을 내고 있는가?
세무국의 직원도 아니고 한 달 수입의 많은 액수를 세금으로 꼬박꼬박 바치는 내가 새삼스레 이런 물음을 제기한데는 사연이 있다. 그것은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검색 전문 웹 사이트인 구글에 《세금없는 나라》를 입력하자 뜻밖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나온 답에 충격을 받아서였다.

세금 없는 나라도 있다니? 서방의 표현으로 북은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도 아니고 오히려 수십년간 제국주의국가들의 극악한 제재와 봉쇄 속에 생존하는 특수한 나라인데 도대체 어떻게?
그를 이해하는 과정에 알게 된 놀라운 많은 사실들이 나에게 준 커다란 감동이 이 글을 쓴 계기로 되였다.
세금에 짓눌린 사람들
북이 지구상에서 세금 없이 살아가는 유일무이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그날부터 진실을 알고 싶은 나는 많은 시간을 바쳐 관련된 자료수집에 몰두하였다.
세금이란 국가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개인 또는 집단의 소득의 일부를 무상으로 받아내는 화폐수입이다.
사회가 계급으로 갈라지고 국가가 발생하면서부터 생겨난 세금은 국민들을 수탈하는 기본 공간이었다.
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와 같은 착취사회에서 세금은 국가재정수입의 기본항목으로 되였으며 통치자들은 그를 통해 권력기구를 유지하고 백성들에 대한 략탈과 다른 나라와의 전쟁정책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해왔다.
나는 이 글에서 구태여 세금의 종류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를 파고들수록 많은 것을 깨달았다.
수천년 전부터 존재하는 세금이었지만 그것이 좋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고 전부 고통과 부담에 대한 말, 지어 백성들의 피를 빨아내고 뼈를 깎는 것이라고 욕하는 소리뿐이었다.
가혹한 세금수탈의 력사가 남긴 일화는 참으로 많았다.
고대그리스의 스파르타가 올림픽경기에서 1등을 한 사람에게 일생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준 일, 아프리카의 남단 희망봉이 15세기말 오스만제국이 들씌운 막중한 과세부담을 피하기 위한 사람들의 필사의 노력끝에 발견된 웃지 못 할 이야기, 17~18세기경 로씨야 황제 뾰뜨르1세가 싼크뜨-뻬쩨르부르그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거액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별의별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세금을 짜내다 못해 나중에는 수염을 기른 사람에게는 수염세,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모자세, 머리칼과 눈의 색갈에 따라서도 세금을 받아낸 악착한 이야기 등이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제국들의 크고 작은 무수한 정복전쟁들이 일어날 때에도 의례히 가혹한 세금정책이 뒤따르곤 하였다.
놀랍게도 착취사회의 어느 시기에나 통치배들은 백성들에게 하나와 같은 논리를 주입시켜왔다.
그것은 세금을 왕(국가)이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막아내고 국내질서를 유지하며 《태평》을 보장한데 대한 보상으로 그(국가)에게 바치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실로 그럴 듯하게 포장한 말이었다.
브루조아 고전정치경제학의 대표자이면서 동시에 부르죠아 재정학의 《시조》로 불리는 영국의 아담 스미스도 조세가 국가재정수입의 경상적인 원천으로, 경비충당의 제1재원으로 된다는 이론으로 세금징수의 《정당함》을 주장하였다.
예로부터 백성은 순진하여 국가를 믿고 그에 의지하려는 관념이 강했다. 통치배들은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금은 생겨서 오늘까지 백성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고 오직 통치배들의 이기적 목적에 이용되어왔다.
세금이 국가운영에 필수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라일이 마음에 든다면 왜 백성들이 그것을 부담으로 여겼겠는가.
어느 사회에서나 백성은 세금을 바치기 위해 종사하는 《기계》였고 각종 명목 밑에 가증되는 세금수탈은 백성들의 삶을 핍박하였다.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하고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세금이라는 말이 전해온 것도 그래서였다.
현대에 와서도 세금은 연약한 백성들의 등허리를 무겁게 짓누르며 죽음과 함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되고 있다.
북과 잇닿은 남쪽의 경우만 놓고 보자.
남쪽의 세금정책은 수십년간 민중을 괴롭혀왔다.
특히 감옥귀신이 된 박근혜의 집권기간에 만들어진 《세법개정안》으로 해서 온갖 불평등한 세금정책들이 람용되고 《세금폭탄》들이 련이어 터져 민생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다.
통계에 의하면 그때 남쪽당국이 한 가정으로부터 징수한 년 평균 세금액수는 2010년보다 수천US$ 더 늘어났으며 주민들은 면적이 겨우 0. 7평 되나마나한 집 아닌 쪽방에서 살아도 매달 수백US$의 집세를 내야 했다.
《태어났더니 주민세, 나라가 갈라졌다고 방위세, 월급 받으니 근로소득세, 힘들어서 답답한 가슴 풀려고 담배 핀다고 담배세, 퇴근 후 한잔 했더니 주류세, 아껴 써서 저축했더니 재산세, 결혼 못했다고 독신세, 실업자로 집에 있으면 수도세와 전기세, 아~ 어떻게 살겠는가.》라고 세금정책을 비난하는 서민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 많은 가입자들의 공감을 샀다.
세금에 의한 부담이 크니 그를 피하기 위한 탈세행위가 성행하여 각종 범죄가 판을 친다.
문명과 부를 자랑하는 미국의 경우도 피차일반이다.
증세와 감세의 오락가락 정책 변경 속에 녹아나는 것은 빈곤계층뿐이고 부자들만을 위한 세금제도에 불만을 느낀 사람들이 죽음으로 항거해나서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는 곳도 다름 아닌 미국이다.
2015년 4월, 미국회의사당으로는 무장한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뛰여들어 자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사결과 이 사나이가 《1%의 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하라》라는 글이 쓰인 간판을 들고 있던 항의시위자였다는 것이 판명 되었고 여론들은 그가 세금에 눌리워 날로 어려워지는 생활처지에 대한 울분의 표시로 죽음을 택하였다고 대서특필하였다.
세금으로 살찌고 전횡을 휘두르는 어리석은 탐욕과 욕망이 날치고 세금 때문에 삶과 미래를 졸지에 잃어버리는 인생이 폭증하는 것과 같은 구조적모순으로 하여 자본주의제도는 이 시각도 파멸의 구렁텅이로 서서히 빠져 들어가고 있다. (계속)

20세기의 기적, 세금 없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 (2)
- 재 캐나다 동포 리상명 -

세금 없는 첫 나라
국가가 존재하는 한 세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굳어진 인식이다.
이것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세금이 없이도 국가가 운영되고 오히려 민중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나라.
이제는 북에 대해서 말해보자.
북에는 누구나 두려움을 안고 바라보는 국세청이나 세무국 이라는 《괴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세무원이라는 직업도 없고 해마다 바치는 세금보고서도 없다.
조선에서도 계급사회인 고조선 때부터 조세제도가 있었지만 조선봉건왕조말기에는 수탈의 잔인성이 절정에 이르렀다.
홍명희 선생이 창작한 장편소설 《림꺽정》에서 보듯이 손바닥에 피가 지며 마련한 모피를 관가에 바친 백정촌사람들에게 차례진 건 쪼드는 가난과 신분적 차이로 인한 갖은 수모와 멸시, 천대 뿐 이었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악랄하고 살인적인 식민지조세제도는 일제강점시기에 있었다.
한해농사를 짓고 나면 빚이요, 세금이요 다 뺏기고 백성들에게는 북데기만 남았다. 그것을 털어 겨우 모은 낟알마저 일제는 군량미공납으로 악착하게 빼앗아갔다.
조선민족은 말 그대로 《세금을 쓰고 태어나 세금을 지고 죽는》 채무노예의 피눈물 나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하기에 백성들은 꿈속에서도 세금 없는 나라를 갈망하여왔다.
사무친 소원이 하늘에 닿은 듯 드디어 도탄에 빠진 암흑의 땅에 새날이 밝았다.
조선민족의 저주와 원한의 대상인 악착한 조세제도를 청산할데 대한 구상을 일찍부터 무르익혀 오신 김일성주석께서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의 간고한 나날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반인민적인 세금제도, 전매제도를 철폐하고 공정한 세금제도를 세울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으며 해방이 되자 《20개조정강》에서 새로운 조세강령을 제시하시여 일제의 약탈적인 세금제도를 철폐하고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적인 세금제도를 실시하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단일하고도 공정한 세금제도가 세워진 북에서는 사람들이 가혹한 조세부담에서 완전히 해방 되였고 그들이 바치는 많지 않은 현물세와 소득세는 전적으로 나라의 번영과 복지에 돌려지게 되였다.
북에서는 세금수입을 나라의 경제문화건설을 위한 보충적인 자금원천으로 효과 있게 쓰는 한편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가 닦아지는데 따라 인민들의 세금부담을 체계적으로 덜어주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제국주의국가들은 전쟁수행에 필요한 자금충당을 위해 인민들의 세금수탈을 강화하였지만 북에서는 준엄한 전쟁시기에도 노동자, 사무원들의 소득세를 대폭 낮추는 조치를 취하였고 한푼의 돈이 그립던 전후 어려운 시기에도 소득세를 30%나 낮추고 농민들의 현 물세률도 대폭 낮추도록 하였다.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개조가 완성되고 공업화의 기초가 튼튼히 닦아지자 김일성 주석께서는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애는 문제를 제기하시고 그 실현을 위해 먼저 농민들이 바치던 농업현물세를 1964년부터 1966년 사이에 완전히 없애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셨다.
1973년에 이르러 북의 국가예산수입에서 98. 1%는 사회주의경리로부터 얻은 것이었고 주민들로부터의 세금수입은 1.9%에 불과하였다.
바야흐로 역사의 기적이 태어날 순간이 다가왔다.
인민들을 세금부담에서 영원히 해방시키기 위해 김일성주석께서는 1972년에 발표하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 《국가는 낡은 사회의 유물인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앤다.》(제33조)라고 규정하시였고 그 후 1974년 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세금제도를 철폐할데 대한 조치를 취하셨으며 그해 3월에 있은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3차 회의에서 그것을 법령 《세금제도를 완전히 없앨 데 대하여》로 제정하여 4월 1일부터 실시하도록 하시였다.
조선민족의 세기적 숙망은 드디어 실현 되었고 세금을 국가의 필수적동반물로, 공민의 《신성한》 의무로 간주하여오던 기성관념과 낡은 시대는 끝장났으며 인류는 세금 없는 첫 나라를 현실로 보게 되였다.
세계의 광범한 신문들은 《조선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세금 없는 나라로》, 《조선은 4월 1일부터 세금을 받지 않는다.》, 《조선인민 세금에서 완전히 해방》, 《세상에서 세금을 철폐한 첫 나라》라는 제목으로 그 의의를 대서특필하였다.
수많은 인사들과 각국의 지도자들이 비결을 배우기 위해 앞을 다투어 북에 찾아왔다.
그러나 서방세계는 아직도 이에 대해 믿기 어려운 일, 해할 수 없는 현실, 수수께끼 같은 문제라고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세금이 없이 국가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하면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어느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 학급학생들과 조세문제와 관련한 토론을 벌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4차 대회에서는 가까운 앞날에 북에서 세금제도를 종국적으로 없앨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이 제시되었다. 토론의 초점은 농업협동조합에서 바치는 현물세가 낡은 사회의 유물인 조세의 일종인데 사회주의사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선행 이론에서는 조세문제를 국가의 존재와 결부시키면서 조세의 성격도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기초하여 규정하였고 조세의 본질도 국가가 국민소득을 재분배하여 국가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얻어내기 위한 경제적 수단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것으로는 김일성주석께서 내놓으신 세금제도를 종국적으로 없앨 것에 대한 과업을 타당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학생들 대부분의 견해는 지금 서방세계가 생각하듯이 국가가 존재하는 한 조세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는데 머물러있었던 것이다.
이날 조세제도의 부당성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깨우쳐주신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조세에 대한 이해를 국가와 함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제와도 결부시켜보아야 한다는 원리를 새롭게 밝히셨다. 그리고 조세는 사적소유에 의거한 착취사회의 고유한 경제적 현상이며 국가가 생산수단에 대한 집단적 소유, 사회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다면 국가와 사회운영에 필요한 돈을 조세공간을 이용하지 않고도 국가소유의 기업소들에서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셨다.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막혔던 물목이 터진 듯 일제히 환성을 올렸고 조세 폐절문제를 순간에 해명하신 그이의 비범한 예지와 비상한 논리적 분석은 수십년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만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북의 인민들은 김일성주석께서 마련해주신 사회주의제도에서 정권의 주인이 되여 사회와 경제발전에 참답게 기여하고 있으니 세금이 필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세금폐지는 인민의 어버이, 위대한 수령을 모심으로 하여 북 민중만이 받아 안은 행운중의 행운으로 되였다.

20세기의 기적, 세금 없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 (3)​
- 재 카나다 동포 리상명 -

웃고 있는 사람들
세상을 둘러보면 세금 때문에 흘리는 인간의 눈물을 북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제대로 닦아주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백성들에게서 악착하게 짜낸 세금은 지배층의 권력 강화와 부귀영화에 막대한 이익을 준 반면에 백성들의 커다란 불만과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한때 영국의 어느 학자는 역사에 기록된 크고 작은 수많은 대중적봉기들과 농민폭동들의 원인이 가혹한 세금수탈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 프랑스혁명, 카슈미르폭동 등이 그러하였다.
무자비한 세금징수를 실시한 폭군 네로는 방탕한 생활로 재정위기에 처하자 도시에서 팔리는 모든 음식물에 세금을 물게 했고 짐꾼에게는 하루벌이의 8분의 1을 세금으로 부과하였다. 그 후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는 시민들에게 심지어 공동변소를 사용할 때에도 세금을 징수하도록 강요하였다. 백성들의 반감은 극도에 달했고 에스빠냐와 팔레스티나 등 속국들에서는 인민폭동이 거세차게 일어나 결국 로마제국은 붕괴되고 말았다.
현대문명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는 수십종을 헤아리는 세금부담으로 사람들이 2중3중의 착취를 당하면서 지금 이 시각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마크 트웨인이 《세무원과 박제사의 차이는 박제사는 세무원과 달리 우리의 피부만 벗겨간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미국의 세금정책을 신랄히 비난하였겠는가.
2009년부터 미국에서 정부의 지출과 세금증대를 반대하여 《티파티》라는 시민운동이 광범하게 전개되고 세계적인 반월가 시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고 남쪽땅에는 아직도 반세기이상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남민중이 바친 세금의 많은 몫이 당국을 통해 미국에 고스란히 바쳐지고 있다. 국민들은 생활난에 허덕이고 대학생들은 등록금에 죽어 가는데 당국자들은 국민의 혈세를 고스란히 외세에 섬겨 바치고 있다.
그러나 북 민중은 늘 웃고 있으며 공화국은 날이 갈수록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세상에는 《선진국가》,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지만 세금이 없는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사실 북이 인민적 시책들을 실시하는 것은 결코 남보다 경제가 더 발전 되었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세금제도가 폐지된 1970년대에 북은 제국주의침략세력의 대규모전쟁연습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여 군력강화에 막강한 힘을 기울여야 하였다.
바로 그런 속에서 북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금제도를 폐지하였던 것이다.
세금을 없앤 북의 조치는 사회주의나라라고 하여 다 실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유한 나라라고 하여 실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오직 인민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그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진정한 노동계급의 정권하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세금을 받으면 손쉽게 국가의 재정원천을 확보할수 있다는데 대해 잘 알고 있는 북이지만 결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인민의 부담을 국가가 걸머지고 국가가 어렵고 좀 힘들더라도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북의 고유한 정치방식이다.
북은 전후 수십년간 제국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고립 압살 책동과 제재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특히 최근 년 간 북에 대한 적대세력들의 제재소동은 잔인성과 악랄성에 있어서 극도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북의 정권은 언제 한번 세금으로 이것을 해결하려 한 적이 없으며 오직 자신들이 쌓아온 자립적 경제토대와 자강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뚫고나가고 있다.
만일 북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 그러한 환경에 처하였더라면 그 해결방도를 세금인상에서 찾았을 것이다.
김일성주석께서 이룩하신 세금페지의 위대한 업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45년 동안 굳건히 유지 고수 되고 있다.
3년전 리히텐슈타인공국 왕자가 북의 여러 곳을 방문한 소감에 대하여 피력한 글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유럽의 중부에 위치하고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내륙국가인 리히텐슈타인공국은 다른 자본주의국가들에 비해 세금이 적은 것으로 하여 여러 나라 사람들이 시민권을 얻고 있으며 2 000여개의 다국적기업들이 조세를 회피하여 들어와 있다.
따라서 세금과 관해서는 일종의 자부심도 없지 않은 이 나라의 왕자가 세금 없는 북에 대해 내린 평가는 그만큼 세인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그는 글에서 과거 자신이 냉전시대 동유럽의 나라들을 여러 차례 방문해서 《공산주의체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북을 방문하는 기간 가장 놀라웠던 점으로 경제와 예산체계를 꼽았다.
그러면서 세금이 없고 누구도 임대료를 내지 않는 아파트가 공짜인 나라, 의료봉사와 교육이 무료이며 심지어 정부가 음식까지 제공하는 나라에 갔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탐구했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가 세금을 걷는 대신 국영기업의 수익을 가져간다는 것을 통해 일부 이해는 하게 되였다,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정부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교육과 과학, 기술, 아이들의 미래에 노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는 점이며 이는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하였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명백한 것은 북이 실시하는 놀라운 시책들에 의해 인민들은 늘 웃음 속에 살고 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인민을 위한 헌신과 사랑 속에 그들의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체 인민의 지지를 받는 공화국이 나날이 강대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의 정치에서 나는 그것은 굳게 확신한다.

-4월 6일 조선의오늘
국가장학금제도가 나오게 된 사연
우리 공화국의 모든 대학생들은 국가로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아무런 불편도 없이 배움의 나래를 활짝 꽃 피워 가고 있다.
장학금!
바로 여기에도 절세위인의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 우리나라에서는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 밑에 당과 국가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대학들을 짓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주면서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주체36(1947)년 5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학습조건과 생활형편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몇몇 학생들과 대학일군들을 부르셨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청사로 간 그들이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서려는데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문을 여시고 마주나오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뜨겁게 잡아주시고 학생들을 의자에 앉히신 다음 전부터 만나려고 하였는데 그동안 시간을 얻지 못해 미루어왔다고 하시면서 요즘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 형편을 들어보자고 하셨다.
학생들은 한결같이 불편한 점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학생들의 몸가짐에서 어려워하는 기색을 헤아려보신 수령님께서는 여러 통의 편지들을 꺼내놓으시며 외국에 가있는 우리 유학생들의 편지인데 그들은 몸도 건강하고 공부도 잘할뿐더러 그 나라 학생들과 농구경기를 하여 이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고 교시하시였다.
그이께서 내주신 편지를 서로 돌려가는 사이에 학생들은 어려움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굳어졌던 마음도 풀렸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을 둘러보시며 요즘 출석정형은 어떤가, 생활이 곤란하여 대학을 그만두는 동무들은 없는가라고 물으셨다.
학생들과 대학일군들은 그이께서 벌써 대학형편을 환히 꿰뚫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 학생이 일어나 출석률은 그전보다 높아가고 있으나 가정사정이 곤란하여 대학을 그만두려는 학생이 더러 있다는 것을 숨김없이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신 채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자책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있는 학생들과 대학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우리나라는 아직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하여 학생들이 조그마한 곤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어서야 되겠는가고 저으기 갈리신 목소리로 교시하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나라의 사정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앞으로 전체 전문학교 학생과 대학생 수의 50%에 해당하는 인원에게 국가장학금을 주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되면 생활이 아직 넉넉하지 못한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나라의 혜택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여 장학금을 주는 외에 여름옷과 겨울옷을 내주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모든 학생들이 안착하여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학생들에게 어떤가라고 의견을 물으셨다.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분에 넘치는 사랑과 은정에 가슴을 들먹이던 학생들과 대학의 일꾼들은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힘있게 대답을 올렸다.
그들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하신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셨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그이의 인자하신 모습을 우러르는 학생들과 대학일꾼들의 가슴마다에는 뜨거운 감사의 정이 꽉 차올랐다.
종합대학을 창립하기 전인 주체35(1946)년 6월 28일 예비과를 둘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면서 예비과 학생들에게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나라에서 장학금과 교과서, 학용품 등을 내주어 공부시켜야 한다고 가르쳐주시고 그 얼마 후에는 대학창립준비위원회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지금 나라의 형편은 어렵지만 예비과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주어야 한다고, 나라의 형편이 펴이는 차제로 본 학부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도록 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교시하신 수령님이시였다.
그리하여 예비과 학생들은 대학창립당시로부터 모두가 국가장학금을 비롯하여 교복과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학습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무상으로 공급받게 되였다.
그러시고도 본 학부 학생들에게 당장 장학금을 내주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시여 늘 마음속에 품고 계시던 수령님께서 오늘은 친히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장학금을 줄데 대한 국가적 조치를 알려주시면서 그처럼 기뻐하시는 것 이였다.
그 후 종합대학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조건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교사와 기숙사, 식당, 편의시설들이 더욱 알뜰히 꾸려졌으며 학습장과 잉크, 신발 등이 공급 되였다.
특히 주체36(1947)년 6월 20일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결정 제133호로 《전문학교, 대학생 장학금수여에 관한 결정서》가 채택됨으로써 국가장학금제가 실시되게 되였다.
국가장학금제의 실시!
그것은 해방된 새 조선의 노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을 부강한 자주독립국가의 내일을 떠메고나갈 미더운 기둥감으로 키우시려는 수령님의 숭고한 뜻과 크나큰 사랑이 낳은 인민적 시책이었다.

-4월2일 조선의오늘
꿈이 현실로 된 이야기​
함북도 북부피해를 하루빨리 가시기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던 (2016)년 10월 어느날 밤 함경북도 무산군의 한 소년은 잠자리에 들자마자 깊은 꿈에 빠졌다.
학급동무들과 함께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의 수족관과 실내물놀이장 등 여러 곳에서 즐겁게 야영의 나날을 보내는 꿈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야 그것이 꿈이라는것을 알게 된 소년은 그것이 너무도 아쉬워 학교에 가서도 꿈 이야기를 동무들에게 들려주며 실현 못할 꿈만 꾸었다고 투정질을 하였다.
그러한 때에 소년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함북도 북부피해지역의 아이들을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로 또다시 불러주시였다는 소식이였다.
소년은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전에 함북도 북부피해지역 1 000여명의 소년들이 이미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로 간 뒤였고 또 야영을 겨울이 다가오는 때에 한다는 소리도 처음으로 들었던 소년이였다.
어떻게 되여 그런 꿈같은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는지 소년은 알수가 없었다.
며칠전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북부피해지역 학생소년들이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 가서 야영을 하도록 하였는데 야영생활을 하고있는 학생소년들은 물론 그들의 부모들과 일군들모두가 정말 좋아한다고 하시면서 못내 기뻐하시였다.
세상에 아직 있어보지 못한 그 현실에 피해지역의 인민들과 어린이들의 기쁨은 끝이 없었다.
북부피해지역의 인민들은 세상에 자연재해로 한지에 나앉고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은 많아도 그 아들딸들이 당의 손길에 떠받들려 즐거운 야영소로 간 실례는 찾아볼수 없다,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이런 일은 우리 원수님의 사랑의 품에서만 펼쳐질수 있는 사변적인 일이라고 하면서 재앙의 파도가 몇천만번 다시 휩쓸어도 그이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래일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을것이라고 가슴속진정을 터치고있었다.
피해지역 인민들과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그려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북부피해지역에 있는 초급중학교 학생들가운데 이번 야영에 참가하지 못한 대상이 670여명 되면 올해에 야영을 한기 더 조직하여 그들도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서 야영을 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베풀어주신 뜨거운 사랑에 대하여 무산소년에게 전해주던 선생님은 말하였다.
자연계의 대지에는 그늘이 있지만 위인의 품에는 음지가 따로 없기에 아이들을 제일로 위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너의 꿈은 실현되였다고.

-4월 6일  조선의오늘스승과 제자들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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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명절과 기념일이 오면 공화국의 미래과학자거리에서는 유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그것은 스승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스승을 존경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미풍이며 사람들이 지녀야 할 도덕의리입니다.》
애젊은 홍안의 시절부터 80나이가 지난 오늘까지 후대교육에 자기를 바쳐가는 교육자들 중에는 김형직 사범대학 교육과학대학 후보원사 교수 박사 최광순선생도 있다.

미래과학자거리에서 살고있는 그의 집으로는 때 없이 제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들중에는 청년대학생들만이 아니라 년로보장을 받은 장일남도 있다.

최광순 선생의 제자이며 수십년 세월 당 일꾼으로 사업한 그는 선생의 생일과 명절에는 물론 여느 날에도 때 없이 찾아와 스승의 건강과 생활에서 불편한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성의껏 방조를 주었다.

직무를 놓은 지도 여러 해가 되고 대학을 졸업한지는 40년 세월이 되어오지만 스승에 대한 도덕의리를 지켜가는 그의 모습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도 그는 최광순 선생의 집을 찾아와 스승의 가족들을 감동시켰다.
《이젠 할아버지가 되였는데도 대학시절 선생님을 찾아오다니…》
스승의 부인이 감동에 젖어 하는 인사에 장일남은 말하였다.
《선생님을 제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제대배낭을 메고 대학교정에 들어선 그날부터 심리학과 교육과학의 심원한 세계를 깨우쳐주고 군사복무의 나날처럼 학과학습에서 앞장에 서도록 이끌어주던 스승이었다.

졸업 후에는 맡은 사업에서 부닥친 난관 앞에 맥을 놓고 주저앉았을 때에도 제일먼저 찾아와 억세게 일어나 시련을 뚫고나가도록 격려해준 그 고마운 스승을 세월이 흐르고 머리가 희어 졌다고 어이 잊을 수 있으랴.

몇해 전, 안내가 병으로 사망했을 때에도 연로한 몸으로 제자를 찾아와 위로해주며 마음속아픔을 덜어주려고 마음 쓰시던 선생님…

학창시절에 오고가던 스승과 제자의 따뜻한 정을 검은머리 희어진 노년기에도 소중히 간직한 그들의 모습은 우리를 몹시 감동시켰다.

최광순 선생의 집을 찾아오는 제자는 그만이 아니었다.
현재 중앙기관의 일꾼으로 사업하고 있거나 연로보장을 받고 있는 김명숙, 류영식 등 수많은 제자들이 선생님의 생일을 잊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

3년전 최광순 선생이 80돐 생일을 맞을 때에도 그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정성이 깃든 생일선물들을 가지고 찾아와 스승이 노당익장 하도록 고무해주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나라 일에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최광순 선생이 50여년세월 후대교육사업과 과학후비양성, 나라의 교육사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크게 헤아리시여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 주시였다.

절세위인의 축복 속에 생일상에 마주앉은 최광순 선생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동무들은 나를 스승이라고 부르지만 나도, 동무들도, 우리 인민모두를 사랑의 한품에 안아 사회주의 소중한 우리 집을 떠받드는 기둥들로 자래워 주고 내세워주시는 우리 원수님 이시야 말로 우리 모두의 스승이시고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그렇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온 나라가 덕과 정으로 화목한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사는 사회주의 내 나라, 소중한 우리 집의 참모습이 그대로 스승과 제자들의 모습에 비껴있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지식을 줄 뿐 아니라 넋과 정을 다해 사랑하고 제자들은 키워준 스승을 끝없이 존경하고 따르는 아름다운 윤리, 인정의 세계에 의해 우리 사회는 더욱더 아름답게 가꿔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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