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고 (5)] 금융 자유화와 이건희의 범 삼성계
김춘효 자유언론실천재단기획편집위원 (매체 정치경제학 박사) media@mediatoday.co.kr 2018년 02월 03일 토요일
한국 경제의 최대 권력이 삼성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 미디어의 최대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저자는 이건희로 대표되는 삼성 오너 일가라고 단언한다. 삼성은 한국 최대의 미디어 집단을 소유하고 있다. 삼성은 광고, 협찬 등으로 한국 언론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미디어 통제력은 이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나온다. 삼성의 미디어 권력은 근본적으로 미디어를 둘러싼 제도 장악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일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삼성의 성장史, 삼성의 미디어 진출 역사, 이병철의 제국 통치 방식, 삼성家와 한국 파워 엘리트, 이건희의 범 삼성家 확장, 삼성 미디어 제국,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한국 미디어 (신문, 유료방송, 광고, 영화) 시장 구조와 삼성의 미디어 검열 영향력 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삼성 권력은 자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 미디어의 구조 장악에서 나온다.
한국 사회에 대한 삼성의 지배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경제력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배력의 뿌리가 되는 미디어 통제력을 정밀 분석할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분명해진다.
이에 저자는 미디어오늘·자유언론실천재단과 함께 한국 미디어 통제 체제와 나아가 한국 사회 지배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삼성의 한국 미디어 통제에 대한 심층 연구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 편집자주
목차는 다음과 같다.
(01) 왜 삼성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인가
(02) 삼성 제국과 내부 통제 라인
(03) 이병철과 그의 자녀들 그리고 한국 파워 엘리트
(04) 한국 매스컴 속의 삼성 미디어史
(05) 금융 자유화와 이건희의 범 삼성계
(06) 누가 한국 신문 시장을 지배하는가
(07) 누가 한국 광고 시장을 통제하는가
(08) 누가 한국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가
(09) 누가 한국 유료 방송 시장을 통제하는가
(10) 삼성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1) CJ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2) 중앙일보 그룹의 소유 구조와 이사회
(13) 1965년 사카린 밀수 사건과 2005년 X-파일
(14) 범 삼성가의 미디어 검열 방식
(15) 누가 미디어 자유화의 최대 수혜자인가
(16) 삼성 없는 한국 미디어를 위하여
(02) 삼성 제국과 내부 통제 라인
(03) 이병철과 그의 자녀들 그리고 한국 파워 엘리트
(04) 한국 매스컴 속의 삼성 미디어史
(05) 금융 자유화와 이건희의 범 삼성계
(06) 누가 한국 신문 시장을 지배하는가
(07) 누가 한국 광고 시장을 통제하는가
(08) 누가 한국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가
(09) 누가 한국 유료 방송 시장을 통제하는가
(10) 삼성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1) CJ 그룹의 미디어 소유 구조와 이사회
(12) 중앙일보 그룹의 소유 구조와 이사회
(13) 1965년 사카린 밀수 사건과 2005년 X-파일
(14) 범 삼성가의 미디어 검열 방식
(15) 누가 미디어 자유화의 최대 수혜자인가
(16) 삼성 없는 한국 미디어를 위하여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재벌
1980년대는 과도기였다. 정치적으론 군사 독재정권에서 시민정부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기였고, 경제적으론 관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도입기였다. 정치적 전환 변곡점은 1987년 시민혁명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은 7년 동안 국민들을 강압적인 폭력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이후, 한국인은 자유롭게 정치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게 됐다. 정치적 자유화인 절차적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제적 체제 변화는 시민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미국에 의한 외압 때문이었다. 한-미간 무역거래에 있어 미국의 적자가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1985년 한국정부와 미국 통상대표부는 한국의 금융, 보험, 광고, 영화 시장 개방에 대한 협상을 시작했다. 한국경제가 세계 경제 자유화 흐름에 편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 다음해부터 한국정부는 보험업과 증권 등 금융업과 영화와 광고 등의 미디어 시장을 개방했다. 경제 중심축이 정부 주도형에서 시장 중심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Sa, 1993).
사실 한국 시장 개방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의 자발적 협력도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모델을 승계할 수 없었다. 그동안 금전적 물적 자원을 지원해 줬던 미국과 일본이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 등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국가들은 불황 타개책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한마디로 시장 중심 경제구조를 말한다. 대표적인 정책들은 공기업의 사기업화, 금융시장 활성화, 소유 지분 완화 및 기업의 인수 합병 (M&A) 활성화 등이다. 미국과 영국은 또한 이 같은 경제 개방화 조치를 아시아국가도 요구했다. 자국의 기업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Harvey, 2005). 이 같은 시장 개방화 흐름 속에서 전두환은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려 했다.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인정을 위해서였다. 전두환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시장주의자들을 경제 관료로 임용했다. 이들은 정부의 시장 개입 축소, 기업 활동 자유 보장, 금융 자유화 그리고 공공 부문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Kim, 1999).
▲ 1985년 4월26일 미국을 방문중인 전두환 대통령 내외와 레이건 대통령 내외가 백악관 발코니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금융 자유화와 삼성가의 편법 상속
경제 자유화와 시장 개방화 흐름 속에서 삼성의 통치권은 설립자 이병철에서 이건희로 교체됐다. 이병철 삼성 창립자는 1987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삼성은 32개의 그룹 계열사, 종업원 15만 명, 11조 원이상의 자산에 17조 원이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가 12월1일 그룹 회장 직을 승계했다. 회장에 취임한 그는 당면한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 발굴과 형제들 간의 상속 문제였다.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유통, 종합화학, 영화-영상사업, 인터넷 등의 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특히 삼성자동차는 1999년 법정관리로 넘어가면서 약 4조5천억 원의 부채까지 남겼다. 자산 매각을 통해 2조 원 정도의 부채는 상환했지만, 나머지 약 2조5천억 원을 갚아야했다. 이처럼 이 회장의 경영실적은 탁월하진 않았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그는 삼성전자를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시켜 세계인의 머릿속에 삼성을 각인시켰다. 이건희의 경영 스타일은 이병철과 비슷하다. 그룹 비서실 (또는 구조본부)을 통해 수렴 청정하는 방식이다. 그룹의 장기적인 밑그림과 자금운영은 비서실에서 총괄하도록 하고, 정기적인 그룹 사장단 회의를 통해 계열사 업무를 보고 받았다(선우정, 2000).
▲ 1980년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 |
▲ 2013년 5월3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이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 ⓒ 연합뉴스 |
▲ 2013년 5월4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 출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홍라희 여사 뒤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인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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