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에게 협박 소포를 보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유선민 서울대학생진보연합 운영위원장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31일 오전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리고 있다.
이에 서울대학생진보연합(이하 서울대진연)과 민중당, 한국청년연대, 국민주권연대 등의 단체와 대학생들의 ‘유선민 구속영장 청구 기각하라’는 연대 기자회견이 9시 30분에 진행되었다.
김선경 민중당 대표는 “경찰이 제시한 CCTV를 수십번 돌려 봤지만 615청학본부에서 같이 활동했던 유선민 동지가 아니다. 경찰들은 국민들의 적폐 청산 요구, 반일 투쟁에 대한 기세를 꺾기 위해서 그리고 진보개혁 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해 이런 조작사건을 벌였다. 민중당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동지들과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다. 사법부는 당장 구속영장을 기각하라”고 발언했다.
또한 정종성 한국청년연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몇 년 전 원세훈 집 화염병 방화사건과 너무나 흡사하다. 범인을 특정해놓고 짜 맞추기 수사를 하고 있다. 원세훈 집 화염병 방화사건 범인으로 몰렸던 회사원은 5년간의 법정 투쟁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경이 제시한 영상이 결국 증거가 되지 못했다. 검경과 언론이 한통속으로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파탄시켰다. 이번 사건도 대학생들의 투쟁 기세를 꺾기 위한 조작사건이다. 이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검경은 사건 조작을 멈추라”고 발언했다.
장송회 서울 주권연대 공동대표는 “사람들이 유선민 동지가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며 살아 온 유선민 동지이다. 이 동지의 삶이 이를 증명해준다. 무엇 때문에 적폐청산에 함께하는 정의당에 협박 소포를 보내겠는가. 검경의 무리한 사건 조작을 멈춰라. 그리고 검경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들도 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가을 강원대학생진보연합 대표는 “경찰에서 공개한 CCTV 영상을 보았다. 마스크에 모자까지 누구라고 확신할 수 없는 영상이었다. 심지어 유선민 운영위원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영상의 범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말이 전혀 되지도 않은 사건을 조작하고 공작하다 보니 집에 있는 스카치테이프, 같이 사는 후배의 신발, 택배에 함께 왔던 뽁뽁이를 증거로 내밀고 있다. 검경이 이 사건을 조작하는 것은 진보진영을 이간질해 갈라놓고, 국민들이 진보 단체에 등을 돌리게 하려는 책동이다. 법이 진정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면, 재판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유선민 운영위원장의 구속영장기각은 당연하다”
대학생들과 연대단체 회원들은 폭우가 내리는 속에서도 계속 기자회견을 하며, 유선민 운영위원장이 석방될 때까지 투쟁을 할 계획이다.
» 큰 나무가 쓰러져 둥치의 일부만 남았지만, 조직이 살아있는 카우리나무. 뒤에 있는 카우리나무와 뿌리로 연결돼 있음이 밝혀졌다. 시배스천 루징거, ‘아이사이언스’ 제공.
“이상하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둥치가 살아있네?”
시배스천 루징거 뉴질랜드 오클랜드공대 교수(생태학)는 서오클랜드를 하이킹하다 이상한 카우리나무 둥치와 맞닥뜨렸다. 무언가의 이유로 나무가 쓰러져 다 썩고 밑동 한 부분만 남았는데, 둥치 가장자리의 상처가 두툼하게 아물어 있는 등 살아있음이 분명했다.
잎이 없는 나무는 광합성을 할 수 없고, 증산작용을 하지 못하면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지 못해 죽는다. 이 나무는 어떻게 둥치만으로 생존할 수 있었을까.
루징거 등 이 대학 연구진은 살아남은 둥치와 이웃에 있던 카우리나무가 뿌리로 연결되어 서로 물과 양분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수분과 수액 이동을 측정해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는 나무가 개별적인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숲 생태계 자체가 (서로 연결된) ‘초유기체’임을 시사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 살아있는 둥치(왼쪽)와 온전한 타우리나무가 있는 숲의 모습. 시배스천 루징거 제공.
나무는 땅 위에서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음이 밝혀져 최근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식물 뿌리와 땅속 곰팡이 균사가 얽힌 균뿌리가 네트워크를 이뤄 영양분과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관련 기사: 새에게도 "도와줘요", 식물은 소통의 '달인'). 식물은 땅속에서 ‘우드 와이드 웹’(Wood-wide web)으로 연결돼 있다고 할 정도다.
식물은 균사를 통하지 않고도 나무뿌리끼리 연결돼 양분을 주고받는다. 자기 뿌리 사이에서, 또는 같은 종이나 다른 종 나무뿌리와 접붙이기 방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산 나무가 죽었어야 할 나무 둥치와 연결된 사례는 드물다.
» 뿌리로 연결된 두 카우리나무 사이의 수분과 수액 이동 얼개. 시배스천 루징거 등 (2019) ‘아이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이 수분과 수액의 이동을 측정한 결과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해가 쨍쨍한 낮 동안 온전한 이웃 나무는 왕성하게 증산작용을 해 뿌리에서 잎으로 수분이 옮겨갔고, 둥치만 남은 카우리나무는 잠자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큰 나무의 활동은 잦아들면서 물과 영양분이 둥치 쪽으로 돌았다. 낮에 비가 올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두 나무는 마치 두 개의 펌프를 가지고 교대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루징거는 “둥치는 잎이 없기 때문에 증산작용을 통해 물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며 “따라서 상대 나무가 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카우리나무는 왜 둥치만 남은 이웃에게 소중한 자원을 나눠주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애초 두 나무가 모두 온전했을 때 뿌리로 연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한쪽이 쓰러져 더는 광합성을 하지 못하게 됐지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나무가 다른 나무의 ‘얹혀살기’를 허용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 뉴질랜드 북부에 분포하는 카우리 숲은 쥐라기 때부터 살아온 세계에서 가장 오랜 숲이다. 키 50m, 밑동 지름 5m 이상인 거목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둥치와 온전한 나무가 둥치의 일방적인 의존 관계만은 아니다. 온전한 나무는 둥치의 것까지 합쳐 확장된 뿌리 체계를 갖추는 셈이어서 비탈에서도 든든하게 버틸 수 있고, 가뭄에도 물을 확보할 확률이 커진다. 또 둥치 지상부가 사용하는 자원의 양 자체가 미미하다.
루징거는 “기후변화로 심각한 가뭄이 점점 잦아지고 있어 이 분야의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 네트워크는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병원체도 전달하기 때문에 그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뉴질랜드 북부의 카우리 숲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숲으로 보전가치가 크지만, 최근 외부에서 유입된 토양 균이 나무의 떼죽음 사태를 불러 비상이 걸렸다.
이번엔 뜬금없이 북을 향해 “자해적 도발을 멈추고, 북미 실무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나섰다. 북이 호도반도 지역에서 행한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를 두고 하는 발언이다.
그가 자신의 ‘용기있는’ 발언으로 보수성향 지지층들에게 얼마나 후한 점수를 따려는지 모르지만 그의 태도를 놓고 각종 SNS상에서는 숱한 비난이 터져나오고 있다.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저토록 사리분별을 못할 수가 있는가하는 조롱썩인 반응이 그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북에 관해서라면 반대하는 무뇌아들이 있다. 습관적인 남북대결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인간속물들이 그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시도때도 없이 북의 동족에 대해서 반목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소위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정의당의 대표로 다시 돌아온 심상정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런 부류들가운데 하나이다.
"北은 자해적 도발을 멈추고, 북미 실무협상 재개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심상정대표는 몇일전 북이 동해상으로 신형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한 것에 대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길에 부정적이고 자해적인 이런 도발을 당장 멈추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지금 기 싸움을 벌일 시간이 없다"며 "북한은 도발을 멈추고 조속히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데 성실히 임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대체가 앞뒤가 맞지도 않은 이런 발언을 하고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소위 ‘진보정치’를 추구한다는 당의 당수로서 그가 과연 해야할 말인지 많은 이들로부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심상정이 이런 앙탈을 부린 것은 지금까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는 틈만 나면 반북적이고 체제대결적인 발언을 일삼아 왔다. 그는 북과의 대결적 자세를 통해 자기지분을 확보하려는 남녘정치권에 만연된 고질적인 반북대결주의적 참새정치인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심상정은 반북대결 의식을 고취시켜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권장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지금 세상에서는 반북발언을 통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심상정은 지금의 민심과 시대적 대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정치인으로의 판단력이 아둔하기 짝이없는 것이다. 지금 민심은 남과 북이 대결하는것보다는 서로 돕고 화해하고 협력해서 민족상호간에 이익을 도모하고 자주적인 평화통일 국가를 만들어 보자는데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으며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거역할 어떠한 명분도 가질 수 없다. 즉, 남북대결을 주창하는 것은 매국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그 시대흐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분단민족에 있어서 분단과 상호불신을 부추기는 행위는 역적들이나 할 짓이라는 점이다. 책임있는 정치인이 시대의 부름에 역행하고 반통일적 반평화적 발언을 일삼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심상정과 나아가 그가 대표라는 정의당이라는 집단의 체면을 무참히 깍아버리는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로 되는 것이다.
심상정은 자신의 가벼운 세치 혀를 휘두르기전에 북에서 왜 그런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부터 알아야 한다. 북이 미사일을 경고발사한 배경도 모르면서 함부로 나서서 조잘대는 것은 역겨운 정치간상배의 이간질에 불과할 뿐이다.
후에 알려진 보도에 따르면 북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시점에서 미국의 최첨단 핵무기 전략잠수함이 군사훈련을위해 반도 동남해를 통과해 부산항에 입항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북미간 또는 남북간의 군사훈련을 중단하기로 한 평화선언조항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북은 미국과 남측의 이같은 약속위배에 대한 경고차원에서 저들의 간담을 서늘케 할 방어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에 있은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 사격에 대해 북은 김정은위원장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지역에 첨단공격형 무기들을 반입하고 군사연습을 강행하려고 열을 올리고있는 남조선군부호전세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신형전술유도무기사격을 조직하시고 직접 지도하시였다"고 그 목적을 밝힌바 있다.
또한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이 위력시위 사격이 목적한대로 겨냥한 일부 세력들에게는 해당한 불안과 고민을 충분히 심어주었을것이다."고 경고한 사실은 미국의 최첨단공격무기 반입과 관련한 방어적 경고조치라는 상식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국가간에 행한 공개적인 약속을 저버리고 숨어서 군사훈련이나 공모하는 것이 ‘도발’인가, 아니면 그것을 지적하고 경고조치하는 것이 ‘도발’인가.
하기야 얼치기 ‘진보’정치인이 그런 의미를 알리도 만무하겠지만 심상정을 비롯한 남녘의 참새정치인들은 이제라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도발'운운하는 자신들이 바로 남북대결을 부추기는 매국사상에 젖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27일 오후 5시 30분 광화문 광장에서는 ‘평화협정 체결! 한미군사훈련(동맹 19-2) 중단!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촉구 7.27 평화대회’가 개최되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우리는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와 새로운 동북아 평화 시대를 만들어 내느냐, 한미일 군사동맹에 갇혀서 영원한 식민지로 전략하느냐,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결의하는 것은 아베 하나와의 싸움이 아닌 전 세계 초일류 제국주의국가 미국에 맞서는 것”이라면서 “미국 대사관을 국민의 힘으로 에워쌀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함께 투쟁하자”고 결의를 모았다.
이어서 13기 서울지역 자주통일선봉대의 ‘우리가 하나로’ 몸짓 공연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안병길 목사(13기 서울지역 자주통일선봉대 공동대장)는 “미국은 세계 곳곳의 민중들을 오락 게임 하듯이 죽이는 나라”라면서 “나는 이곳에 미 대사관을 허물고 전쟁역사관과 평양냉면 1호점을 세우고 싶다”면서 개인적인 소망을 내비쳤다.
이재희 민중당 경기도당 자주통일위원장(경기도 자주통일실천단장)은 “20여 명의 실천단과 함께 평택 미군기지에서 집회를 하고 경기도민들을 만나는 선전전을 하고 왔다. 경기도당이 있는 평택에 미군의 심장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우리는 유엔사가 해체되는 그 날까지 싸우겠다”는 결심을 전했다.
엄강민 금속노조 부위원장(20기 민주노총 중앙통일선봉대 대장)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대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와 아베가 밀실에서 제정한 것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 당한 노동자들의 후배로서 분노한 국민들과 함께 일본대사관을 타격해나가며 강력히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날 평화대회는 미 대사관 앞에 미국 규탄 내용의 현수막을 펼치고 “평화협정 체결하자! 한미군사훈련 중단하라! 전쟁연습 중단하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하라! 평화를 방해하는 미국을 규탄한다!” 구호를 외치는 상징행동으로 마무리 되었다.
경매장에서는 생후 40~50일의 강아지들이 플라스틱 상자를 타고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전시됐다. 50~60평 규모의 경매장에는 100여명의 사람이 모여 두세 시간 동안 200여 마리의 강아지를 거래했다. 15초에 한 마리씩 경매대에 오른 강아지들은 대략 3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이상에 팔렸다. 최우선 기준은 외모였다. 경매 직전, 외모를 꾸미려 목욕하다 죽는 강아지도 있었다.
2회. 폐견, 버려지는 강아지
한손에 쏙 들어오는 아기 비숑은 완벽해 보였다. 복슬복슬한 털, 순한 눈망울, 모아 쥔 앞발이 귀여웠다. 찬찬히 살펴 찾아낸 단점이라고 해봐야, 주둥이가 조금 길다는 정도. 사람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지난 6월26일, 경기도 김포 ○○경매장에서 만난 아기 비숑은 경매에서 유찰된 강아지들이 담긴 노란색 물류 바구니 안에 있었다.
6곳의 반려동물 경매장을 취재하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강아지를 만났다. 그 가운데는 팔리지 않는 강아지들도 있었다. 그들의 앞날이 어찌 되는지, 우리는 궁금했다.
_______ ‘반품’ 사유는 너무 많았다
6월20일 경기도 광주 △△경매장, 100여 좌석의 맨 앞줄에는 ‘거상’들이 앉아 있었다. 강아지들이 잘 보이는 그곳은 경매장과 자주 거래하는 단골 구매자들의 자리였다. 3번 구매자 앞에는 100만원에 육박하는 비싼 개들이 종이 박스에 담겨 착착 쌓여 갔다.
그의 의자에는 △△△△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만 10여개 지점을 가진 프랜차이즈 펫숍이었다. “말티 수컷입니다. 얼굴 너무 깜찍하네요. 50만부터 갈게요. 되게 귀여워요. 51, 52…, 58, 59, 60(만원). 3번!” 말티 수컷은 손잡이를 접어 휴대할 수 있는 종이상자에 담겨 3번 낙찰자에게 넘겨졌다.
6월20일 경기도 광주 △△경매장에서 한 낙찰자가 강아지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심장 소리를 듣고 있다.
낙찰자는 강아지 꼬리를 들어 항문 상태를 확인했다. 앞다리를 만져 탈구 가능성을 살피더니, 한쪽 귀를 가슴에 대고 심장 소리를 들었다. 입으로 후후 바람을 불어 털 아래 피부염은 없는지 살폈다. 휴대전화로 사진도 찍었다. 사진에 예쁘게 나오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외모와 건강을 점검하는 시간은 5분 남짓. 강아지의 운명은 이 시간에 달렸다. 펫숍 사업자는 5분 동안 ‘한 달 안에 팔 수 있을지’ 가늠한다. 조건에 맞지 않는 강아지는 그 자리에서 반품된다. 경매 진행 중에도 개들은 쉴 새 없이 반품당했다. 반품 마감은 경매 다음 날 낮 12시지만, 낙찰자는 ‘현장 반품’을 선호했다.
밥을 잘 먹지 않거나, 심장 소리가 나쁘다는 이유로 강아지들은 반품됐다. 탈장, 귀 청소 상태, 항문 냄새, 눈곱, 숨골, 부정교합, 아이라인 유무 등도 반품 사유가 됐다. 보조 경매사에게 반품 사유를 이야기하면, 강아지는 농장에서 담겨 나왔던 플라스틱 우유 상자로 되돌아갔다.
_______ 유찰되고 반품당해도 강아지는 자랐다
한바탕 경매가 끝나면, 유찰되거나 반품된 개들이 재경매에 올랐다. 간혹 재경매가 없는 날에는 구매자가 경매 준비실에 들어가 유찰된 개들을 살펴보고 경매장과 직거래했다.
반품 과정에서 농장주, 경매사, 펫숍 사업자 사이에 언쟁도 일어난다. 6월25일 경기도 김포 □□경매장에서 반품당한 몰티즈가 재경매에 올랐다. “몰티즈, 이쁜데 부정교합이 약간 있네요. 20만원!” 경매사가 입을 떼자마자 바로 낙찰됐다. 뒤편에 앉아 있던 농장주는 고함을 질렀다. “25만원 받으라니까, 왜 20만원에 팔아?” 반품당한 강아지의 농장주를 달래려고 경매사가 애쓰는 경우도 있었다. “밥을 안 먹는다고 반품됐는데, 배가 빵빵하네요. 5만원!”
경매 전 강아지들의 배에는 농장번호와 개체번호가 적히고, 이후 경매사에게 넘겨진다.
재경매에서도 팔리지 못한 개들은 농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루 이틀 뒤, 농장주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른 경매장을 찾는다. 같은 경매장을 다시 찾는 경우도 있다. 몇 차례 유찰 또는 반품을 반복하면서 강아지들은 자란다. 몸집이 커지면 인기는 더 떨어진다.
_______ 평생 새끼를 ‘빼는’ 종·모견으로
경매장을 취재할수록 의문이 커졌다. 외모가 좋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다는 이유로 5개월 이상 유찰만 거듭해 ‘상품가치’가 사라진 강아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6월26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경기도 김포 ○○경매장에서 한 농장주가 철장에 갇힌 갈색 푸들 앞에 섰다. “얘는 얼마야? 5개월쯤 됐으려나.” 경매장 직원이 답했다. “15만원에 가져가요.” 곁에 서 있던 우리가 농장주에게 물었다. “모견으로 데려가시게요?” 농장주는 웃으며 말했다. “응.” 갈색 푸들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생후 5~7개월이 되도록 팔리지 못한 강아지 가운데 일부는 모견(암컷)이나 종견(수컷) 후보로 경매장에 돌아온다. 갈색 푸들도 그런 강아지 중 하나로 보였다. 원래 농장에서 다른 농장으로, 철장에서 태어나 다시 철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후 1년이 되기 전부터 번식을 시작한 종·모견들은 보통 8~9년 또는 죽을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새끼를 ‘빼는’ 일만 하게 된다.
_______ ‘하자’있는 개들만의 경매장
취재 과정에서 우리는 관련 업자들을 통해 경기도 고양 XX경매장에 대해 알게 됐다. 잘 팔리지 않는 개들을 거래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폐업하는 펫숍에서 ‘떨이’로 내놓은 개, 몸이 약하고 ‘하자’가 있는 개, 가정에 입양되지 못하고 농장에서 커버린 개들이 거래된다는 것이었다.
XX경매장의 위치와 경매날짜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어렵게 경매장 대표와 통화했지만, “우리는 모두 대형견이고, 강아지는 (경매에) 많이 나오지 않는다. (펫숍 하는 사람은) 와도 살 것이 없다”며 경매 정보를 주지 않았다.
7월14일 찾은 경기도 고양 XX경매장의 외관은 버섯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처럼 보였다.
수소문 끝에 7월14일 오후 찾아간 XX경매장의 외관은 과수원이나 종묘장처럼 보였다. 검은 가림막을 둘러친 비닐하우스 입구에 네 글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버섯재배’. 그러나 비닐하우스 안에 버섯은 없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이전 취재에서 보았던 경매장들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70여개 좌석 위로 경매 버튼들이 늘어져 있고, 진행석 뒤에는 빈 케이지들이 쌓여있었다. 이미 경매는 끝난 듯했다.
경매장 밖 테이블에서 몇몇 농장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에 썩 좋은 개는 안 나와.” ‘시바 전문 견사’를 운영한다며 명함을 건넨 농장주는 “저렴한 것들은 나오지만, 처음 시작하는 거면 경기도 남양주 ◇◇경매장으로 가는 게 낫다”는 충고를 건넸다. 1시간 전에 경매가 끝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른 농장주는 이날 경매에서 산 강아지들을 보여줬다. “그래도 진주가 나와.” 잘만 찾으면 1만원에 좋은 개를 사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작은 바구니 뚜껑을 열자, 품종을 알기 어려운 강아지 세 마리가 꼬리를 흔들었다. 낯선 사람의 손길에도 순순히 눈만 껌벅이는 강아지들을 “연신내 역 앞에서 팔면, 마리당 4만~5만원은 받을 수 있다”고 농장주는 말했다. XX경매장에서 팔려나간 강아지들이 재래시장에서 거래된다는 뜻이었다.
_______ 모란시장 바둑이의 운명
7월19일,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에서 그 연결고리를 볼 수 있었다. 상설시장의 한 골목에 ‘육견’ 판매점포가 있었다. 예전에 비해선 축소됐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개고기 있어요.” 호객하는 상인 앞에 놓인 냉장고 옆면에는 붉은 글씨로 ‘똥개’라 적혀 있었다.
육견 점포들이 늘어선 도로의 건너편 주차장에 반려용 강아지를 파는 상인들의 좌판이 있었다. 드문드문 늘어선 6곳의 좌판마다 평균 10여 마리의 강아지를 팔고 있었다. 두어 곳은 어린 품종견들이 주류를 이뤘고, 나머지는 도사견 또는 진돗개 믹스견의 새끼들이었다.
폐장 시간이 다가오자, 모란시장의 상인들은 믹스견 강아지 두어 마리를 묶어 2만~3만원에 팔았다.
흔히 개농장에서 보았던 ‘뜬장’보다 작은 사이즈의 ‘뻥개장’(사방이 뚫린 작은 케이지) 안에는 더위에 늘어진 강아지들이 많게는 9마리까지 들어차 있었다. 테이블 위에 매대를 차려 잠시나마 강아지를 풀어준 곳은 상태가 좋은 편이고, 대부분의 상인은 닭이나 염소와 함께 바닥에 놓인 케이지에 개를 가둬두고 있었다.
어느 좌판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경기도 남양주 ◇◇경매장에서 주로 ‘싼 개’를 낙찰받던 업자였다. 그의 좌판에는 몰티즈, 푸들, 미니핀 등 품종견들이 주로 진열됐다. 이들 품종견 또는 건강해 보이는 강아지들은 5만~30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생후 2~3개월이 갓 지난 믹스견들은 마리당 2만~3만원의 가격으로 거래됐다. XX경매장 앞에서 만난 농장주가 제시한 가격과 비슷했다. 폐장 시간이 다가오자 그 가격은 마리당 1만원으로 떨어졌다. 2만~3만원에 두어 마리를 묶어 팔기도 했다.
경매장에서 볼 수 없었던 다 자란 개도 모란시장에 있었다. 고양이를 주로 파는 매대에서 눈빛이 불안해 보이는 ‘바둑이’를 발견했다. 바둑이는 이날 시장에 나온 강아지 가운데 유일한 성견이었다.
“며느리가 출산이 임박해서 (파양하니) 좋은 곳으로 보내 달라”고 어느 아주머니가 부탁했다는 개의 가격은 1만원이었다. 바둑이는 시장의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사람의 손길을 반기지 않았다. 다가가면 등을 돌려 돌아눕기만 했다.
‘바둑이’는 모란시장에서 만난 유일한 성견이었다. 바둑이는 이전 반려인이 파양한 개였다.
어느 남자는 시장 좌판에서 모견용 비숑을 찾고 있었다. 지금 기르고 있는 7개월짜리 암컷 비숑의 “덩치가 너무 커서 번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번식업자들은 더 작은 크기의 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반려견 구매자들이 작은 개를 선호하는 탓이다. 그는 모란시장의 상인들에게 적당한 모견을 추천받고 싶어 했다.
강아지와 닭을 함께 팔고 있는 시장 상인에게 개들이 어디서 오는지 물었다. “데리고 오는 곳이 있어.” 어디서 데려오는 것인지, 직접 키운 것은 아닌지 다시 물었지만, 길게 답하진 않았다. “장사하는 사람은 키워서는 못 팔아.”
빗방울이 쏟아지려 하자 상인들은 가격을 더 낮춰 불렀다. 30만원을 호가하던 닥스훈트는 15만원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대부분의 강아지는 파장시간이 될 때까지 팔리지 않았다. 짐칸 전체를 개장으로 개조한 1.5톤 트럭이 어느 좌판 앞에 섰다. 여름의 더위를 시장 케이지에서 받아낸 강아지들은 다시 트럭의 케이지로 옮겨졌다. 사람에게 질렸다는 듯 돌아눕던 1살짜리 암컷 바둑이도 장이 파하도록 케이지에 남아 있었다. 바둑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_______ 폐견, 국물용, 유기견
‘돈의 논리’에 따라, 아무도 원치 않는 개들의 다수는 식용견 시장으로 흘러간다고 동물권 단체들은 주장한다. 오래전 개 번식업에 종사했다가 이제 동물보호단체를 운영하는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이하 행강집) 박운선 대표는 “10여년 전만 해도 ‘폐견’들을 수거해 건강원으로 납품하는 업자들이 있었다. 이른바 ‘나까마’라고 불리는 중간 상인들이 번식농장을 돌아다니며 마리당 1만원 또는 5천원에 매입해 개소주집이나 개고깃집에 판매했다”고 말했다.
펫숍으로 팔려나가지 않는 강아지는 모견 또는 종견으로 농장에 팔리고, 교배 능력이 떨어져 그 역할까지 다하면 또다시 경매장에 매물로 돌아온다. 이 개를 ‘폐견’으로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처음 알았다. 경매장에 나온 폐견들은 마리가 아니라 상자 단위로 거래된다. 몇 마리씩 한 상자에 넣고 헐값에 파는 것이다. 이런 폐견을 낙찰받아 가는 사람들은 육견 판매업자라고 동물단체들은 추정한다.
7월19일 낮 찾은 모란시장의 한 골목에 ‘육견’ 판매점포와 건강원들이 늘어서 있다.
관련 업자들은 육견으로 팔리는 이런 폐견을 ‘국물용’ 혹은 ‘육수용’이라고 표현했다. 동물단체 동물구조119는 7월23일 경기도 포천의 한 번식장에서 모견 9마리를 구조했다고 밝혔다.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는 “농장주가 ‘번식능력이 떨어진 모견을 개고기 육수용으로 처리하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해서 구조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음성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육견 경매장’뿐만 아니라, 반려견 경매장에도 가끔 폐견들이 나온다. 경기도 고양의 XX경매장은 원래 반려동물을 파는 곳이지만, 동물권행동 카라는 이 경매장을 ‘반려동물 최후의 경매처’로 꼽았다. 카라는 2014년 발표한 <반려동물 대량생산과 경매 그리고 식용도살 실태보고서>에서 “(번식농장의) 모견, 병 들거나 제때 팔리지 않은 대형 품종견들이 식용으로 도살되기 위해 XX경매장에서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201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펴낸 <반려동물 연관산업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농경연은 반려동물의 사육, 생산, 유통, 유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기 위축 또는 과잉생산으로 (반려동물) 판매가 부진하면 경매가 유찰되고, 유찰된 반려견이 식육견으로 판매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적었다.
농경연의 보고서는 2년 전, 카라 보고서는 5년 전에 발표됐다. 박 대표의 증언은 10년 전 상황에 대한 것이다. 이후 당국의 단속과 여론을 의식한 업자들이 육견 유통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폐견들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번식농장 종모견으로 이용되었을 아이들(강아지들)이 최근에는 유기견으로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박운선 대표는 말했다. 육견으로 판매하지 않더라도, 시골길이나 한적한 거리에 그냥 내다 버린다는 것이다.
_______ 사랑받거나, 버려지거나, 먹히거나
XX경매장에서 육견을 목적으로 개가 거래되는지 아닌지, 우리는 확인하지 못했다. 현장 접근이 어려웠고, 경매 시간을 공개하지 않아 실태를 목격할 수 없었으며, 다시 취재를 시도하기에도 장벽이 높았다. 나중에 농식품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서 확인한 결과, XX경매장은 동물판매업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무허가 상태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전국 반려동물 경매장 현황
무허가로 운영되는 경매장이 전국적으로 몇 곳이나 되는지 알려주는 통계는 없다. 알 수 없는 숫자의 무허가 경매장 가운데는 ‘육견용 경매장’도 포함되어 있다. 이 ‘무법지대’는 얼마나 많은 개를 집어삼키고 있을까. 우리가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합법적’ 경매장 18곳에서 매주 5천여 마리의 강아지들이 흥정에 오른다는 사실, 그리고 흥정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한 강아지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펫숍에 팔린다면 도시의 가정에서 살아갈 것이다. 재래시장으로 밀려난다면 반려인을 만날 가능성은 작아진다. 모견 또는 종견으로 팔려간다면 평생을 철장에 갇혀 지내다 폐견 취급을 받을 것이다. 폐견의 일부는 거리와 야산에 버려질 것이고, 어쩌면 일부는 육견으로 팔려나갈 것이다.
번식장, 경매장, 펫숍은 한국 반려동물 산업의 ‘블랙 트라이앵글’입니다.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애니멀피플>이 그 현장을 직접 취재했습니다. 한 달 동안 사전 취재와 자료 조사를 벌였고, 두 달 동안 전국의 강아지 번식장 4곳, 반려동물 경매장 6곳, 펫숍 2곳 등을 잠입 취재했습니다.
반려견 산업은 외부자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강아지 번식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은 경기도의 한 상가를 임대해 관청으로부터 동물판매업 허가를 받았습니다. 엄격한 회원제로 운영되는 반려동물 경매장에 접근하기 위해 펫숍 사업자로도 등록했습니다. 펫숍에서 보름간 ‘알바’로 일하며 개가 물건처럼 사고 팔리는 현장도 기록했습니다.
돈의 논리로 굴러가는 한국 반려견 산업의 실체를 이제 영상과 글로 보여드립니다. 물건처럼, 때로 물건보다 못한 존재로 거래되는 생명을 구출하기 위한 텀블벅 펀딩도 준비했습니다. 동물의 친구, <애니멀피플> 친구들의 참여와 도움을 기다립니다.
백두산 천지를 가본 사람이 많지만 달빛 아래, 그것도 대보름 달빛 아래 그 호수를 밤새도록 내려다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청복(淸福)을 나는 2003년 추석날 누렸다.
천문봉(天文峰) 기상관측소의 직원숙사 숙박은 당시에도 불법이었으리라 생각되므로 어느 패거리에 묻어간 것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연변에 살러 가서 첫 추석에 어느 단체에 동행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백두산 첫 등반이었는데 환상적인 경험이 되었다. 얼마 후 공원의 운영 주체가 상급으로 옮겨가고 관리가 엄격해진 뒤로는 다시 누릴 수 없게 된 경험이다.
그런데 백두산의 진짜 모습에 접하며 충격을 받은 것은 날이 밝은 뒤였다. 안개가 걷히는 데 따라 조금씩 드러나는 봉우리들의 모습. 그렇게 험악한 풍경을 나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꽤 큰 사진도 많이 봤었다. 하지만 넓은 경치를 담은 사진에는 봉우리들의 거친 질감이 제대로 나타날 수 없었다. 천지를 둘러싼 삐죽삐죽한 능선은 거대한 그릇을 누군가가 막 깨트려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달빛 아래 신비로운 정적에 잠겨있던 호수면보다 사나운 싸움의 현장 같은 봉우리와 능선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 수십만 년 전 마구 때려 부순 자리가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천지 분화구 모습. ⓒ바이두백과
천지의 거친 풍경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잔상(殘像)으로 남아있었다.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하는 순진한 믿음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남을 침략한 일이 없는 민족이라고 하는 표현에 베트남 참전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예외적인 일이라고 애써 제쳐놓을 수 있다. 하지만 민족의 큰 상징의 하나인 백두산이 이렇게 험상궂은 모습이었다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백두산이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경위를 되돌아보는 것이었다. 고대사와 신화에서 백두산이 가졌던 역할은 인정할 수 있지만, 삼국시대 이후 농업사회의 발전 단계에서는 접근이 힘든 백두산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19세기 이전 문학작품에는 백두산이 등장하지 않고, 지리서에 기본 정보가 실려 있을 뿐이다. 단군신화가 민족사회의 위기 속에서 나타난 것처럼 20세기에 들어와 민족의 위기 앞에 백두산이 부각된 것 아닐까?
최남선은 <백두산근참기>(1927)에서 단군 신시(神市)의 자취를 삼지연 고원지대에서 찾았는데, 허황한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 농경문화가 자리 잡기 전 수렵과 채취를 일삼던 단계에서는 사람이 비교적 많이 살만한 지형과 위치였을 것 같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성립한 뒤에는 경제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농업국가의 관리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712년 정계비 설치 때 그런 상황이 보인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 부르고, 특히 청(淸)나라를 지배한 만족(滿族)의 발상지로 여긴다. 백두산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높고 큰 산이다. 쳐다본 사람들이 남쪽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조선시대를 놓고 본다면 농업에 열중하던 남쪽 사람들보다 수렵과 채취에 아직 종사하던 북쪽 사람들이 더 많이 쳐다봤을 것 같다. 사냥꾼이든 약초채집인이든 조선사람보다 북쪽 사람들이 천지 물가에 더 많이 나타났을 것 같다.
우리 역사에 북방민족으로 숙신, 말갈, 거란, 여진 등 많은 이름이 나오는데, 만족은 이들을 포함해서 만주 지역의 토착 민족을 거의 모두 망라한 존재로 보인다.('만주'라는 지명도 '만족의 땅'이란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다.)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합하는 연장선 위에서 지역의 모든 부족을 통합해 '만족'의 깃발을 내걸었던 것이다.
지금의 만족은 등록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좡족(壯族)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집단이다. 그러나 등록인구 200만 명이 안 되는 조선족만큼 존재가 뚜렷하지 않다. 한족문화에 동화되어 자기네 말과 글을 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만주어 문자는 청나라 건국과정에서 몽골어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청나라의 관용어로 주로 사용되었다. 18세기 중엽의 만족 작가 조설근(曹雪芹)이 <홍루몽>을 한어로 쓴 것을 봐도 만주어의 사용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복식과 음식을 비롯한 '만족문화'는 일반 만족의 생활에 별로 남아있지 않고 관광자원으로만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민족정체성이 흐려졌는데도 많은 등록 인구가 유지되는 것은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중국의 정책 때문이다. 많은 자치향(自治乡)이 1980년대 이후 만들어진 데서도 이 점을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57년에 베이징시 구역 내에 몇 개 만족 자치향이 설치되었다가 그 이듬해 대약진 운동 속에 인민공사로 바꿨던 것을 개혁개방으로 접어든 후에 다시 자치향으로 복원시킨 곳들이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은 건국 때부터 내건 것이지만 장기간 안정적으로 시행된 것은 개혁개방시대에 와서의 일이다.
다시 백두산으로 돌아와서 2003년에서 2006년까지 연변에 체류하는 동안 백두산에 여러 번 갔다. 당시에는 바이산(白山) 시 쪽의 서파(西坡) 관광구가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아서 대개 안도(安圖)현 관내의 북파(北坡)에 다녔지만 한 번 힘들여 서파에도 간 일이 있고 두만강 발원지 쪽의 용암대지도 여러 번 찾아갔다. 두만강 발원지에 특별히 관심이 컸던 것은 정계비와 관련된 의혹을 풀고 싶어서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1년에 한 번 잠깐씩 연길에 다니러 가면서는 백두산 갈 틈을 내기 어려웠다. 그러다 작년부터 연길 체류를 늘리면서 다시 다니게 되었다. 작년에는 서파에 올랐다. 10년 전과 달리 북파 입구에서 서파 입구까지 시원한 포장로가 깔려 있고 등산로도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것을 보며 금석지감을 느꼈다.
▲몇 해 전까지 서파 올라가던 길. ⓒ바이두백과
금년에는 남파(南坡) 쪽을 살펴보고 싶었다. 바이산 시 관하의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압록강이 수원지로부터 백여 리 남쪽으로 흐르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곳에 있다. 이곳에서 백두산 남쪽 기슭으로 올라가는 관광구가 개발 중이어서 아직 산에 올라갈 형편은 못 될 것 같지만 장백현을 한번 보고 싶었다. 연변 이외의 조선족 자치구역을 잘 살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 천지의 옛 도면. 북쪽으로 열려 있는 흐름이 장백폭포를 통해 북파로 내려가는 길. 남쪽의 봉우리들 밖에서 정남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압록강 상류. 압록강 상류의 서쪽 기슭이 지금의 장백현이다. ⓒ바이두백과
금요일 오전 7시 네 가족이 떠났다. 간단한 점심 외에는 부지런히 달렸는데, 장백현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강 건너 혜산시가 마치 한 도시의 다른 구역처럼 가깝게 보였다. 이쪽 강변에는 두만강변 같은 엄중한 철조망이 없고 공원이 많이 조성되어 있었다. 경찰이나 군인이 특별히 배치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도중에 검문소가 한 곳 있었지만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탈북자가 중국 내부로 빠져나가는 것만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저쪽 강변에는 철망이 있지만 허술해 보였고 아이들이 그 밖의 강가에 나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단둥(丹東)이나 도문(圖們)에서보다 훨씬 가까이 느껴졌다. 내키는 대로 서로 나들이도 하며 지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공원에서 노인들이 편안하게 놀고 있었다. 외부 사람들 모습에 긴장하거나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연변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조선족과 한족을 (특히 노인들) 가려서 알아보게 되었는데, 한족만 있는 것 같았다. 눈빛이 각별히 맑아 보이는 한 어른에게 아내가 말을 걸었다가 몇 가지 그곳 사정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장백현 쪽에서는 탈북자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중국어와 중국 사정에 어두운 탈북자가 의지할 만한 조선족사회가 연변처럼 크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두만강변처럼 경계가 삼엄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장백현의 조선족이 근년 큰 도시로 많이 옮겨가서 인구비율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음을 이 노인은 체감한다고 했다. 어울려 놀던 조선족 친구들이 이제 몇 안 남았다고. 연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 이곳에서는 더 빠르게 느껴지는 듯.
서파 입구인 숭장허(松江河)에서 장백현으로 넘어오는 도중에 북파로 빠지는 길이 갈라진다. 예전에는 장백현의 압록강변까지 왔다가 강을 따라 올라갔는데, 도중에 능선 하나 넘어가는 길을 내서 거리를 줄인 것이다. 어딘가에서 막힌다는 그 길을 막히는 데까지라도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참았다. 예약해 놓은 숭장허의 5성급 온천호텔이란 곳에 얼른 가고 싶은 마음이 나도 바빴다.
지린성 바이산시 푸숭현 숭장허진(吉林省 白山市 抚松县 松江河镇). 18만여 평방킬로미터 면적에 2700만 인구의 지린성은 중국 밖에서라면 당당한 국가 규모다. 1개 자치주(연변)와 8개 지급(地級) 시로 구획되는데, 그중 하나인 바이산시는 1만7000여 평방킬로미터 면적에 120만 인구로, 우리나라의 1개 도 크기로 볼 수 있다. 백두산의 서쪽 기슭은 바이산시 구역이고 장백현도 그 일부다. 장백현이나 푸숭현은 우리의 시-군 단위에 비슷한 것이고 숭장허진은 푸숭현 관내의 1개 읍-면 격이다.
숭장허진이 서파 입구의 관광도시로 자라난 것은 최근 10여 년 내 일이다. 선양(瀋陽), 창춘 방면에서 들어오는 고속도로가 깔리고 비행장이 만들어졌다. 호텔과 상점과 식당으로 채워진 신도시가 만들어졌는데, 새로 만들어진 거리치고는 썩 자리 잡힌 모양이라서 설계가 잘 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백두산 산정에서 직선거리가 약 60킬로미터, 바라보이지도 않는 곳인데,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입장권을 사서 관리국 운영의 버스를 타고 등산로 입구로 간다. 1990년대에 개발되어 천지 턱밑에까지 호텔과 상가가 들어선 북파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설계와 운영이다.
▲ 천문봉에서 내려다보는 북파 관광단지. 오늘 점심에 만난 이들에게 들은 얘기로는 북파의 기존 호텔과 상가도 철수시키는 정책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더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약 100리 밖의 이도백하진(二道白河镇)에 관광시설의 건설이 집중되어 온 것을 보면 사실인 것 같다. 앞으로는 관광객이 천문봉 꼭대기 위에서는커녕 산꼭대기가 보이는 곳에서는 일절 숙박하지 못하게 될 듯. ⓒ바이두백과
중국 경내의 백두산 일대에는 1960년에 창바이산보호구가 만들어졌고 1986년에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지린성의 관리조례(吉林长白山国家级自然保护区管理条例)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관광개발이 지방정부의 손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관리에 혼선을 빚고 제일 먼저 개발된 북파에는 난개발의 경향까지 나타났는데, 2005년 관리국과 관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일원적 관리, 개발과 통제가 시작되었다.
▲ 창바이산자연보호구 지도. ⓒ바이두백과
1990년대 북파 구역 운영의 주체는 안도현이었다. 한국 관광객의 증가가 안도현의 큰 수입이 되었으므로 한국 손님의 편의 위주로 산속에 서둘러 시설이 개발되었다. 대우호텔도 그때 지어졌다. 관리국이 생겨 운영권을 넘겨받으면서 바뀐 개발 방식을 보여주는 곳이 서파다. 관광의 편의보다 자연보호를 앞세우는 방식이다. 남파의 개발 방식도 비슷할 것을 기대한다.
숭장허에서 밤을 지낸 후 아이들만 산에 보내고 아내와 나는 숭화강(松花江) 쪽으로 바람 쐬러 갔다. 작년에 서파에 올랐기 때문에 다른 쪽을 좀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후에 아이들이 돌아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고 한다. 계절이 맞고 토요일이니까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입장권이 8000매나 팔렸다더라"는 말에 생각이 잠깐 머물렀다. 8000매면 약 1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2억 원이 안 된다. 연중 손님이 제일 많은 날 관리국 수입이 그 정도라면 목적이 돈 버는 데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우리가(대한민국이)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대략 4분의 3은 중국이, 4분의 1은 북한이 관리하고 있다. 중국의 관리정책은 대단히 훌륭하다. 우리의 국립공원 관리 수준보다 훨씬 낫다. 중국 입장에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산이기 때문에 관리를 잘하는 것이다. 이 산 아끼는 마음을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이웃나라끼리 잘 어울려 지내는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