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통일뉴스 월례강좌서 ‘초월 외교’ 제시
- 김치관 기자
- 입력 2023.04.24 00:00
- 수정 2023.04.24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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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간에 제일 큰 문제는 신뢰의 결여”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상황을 ‘차가운 평화’(cold peace)로 규정하고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외정책 선택지 중 ‘초월 외교’(transcending diplomacy)를 대안으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문정인 명예교수는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열린 ‘2023년 4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미중 갈등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초월적 외교’와 ‘남북 간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문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사항을 “△미국 패권에 도전하지 말라 △국제법, 규범을 준수하라 △약탈적 경제 행위를 멈추라 △일대일로 구상을 전면 수정하라 △보편적 가치를 지켜라”로 나누어 설명하고 “미중 간에 제일 큰 문제는 신뢰의 결여”라고 진단했다.
나아가 “미중 갈등이 단기간에 해결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전제 위에 미중 갈등의 향방을 ‘3가지 길’로 요약했다.
미중이 대타협을 해서 ‘G2’로 가는 길과 ‘신냉전’ 대결의 길, 그리고 기존의 경쟁과 열전 사이에 있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가 그것으로, 이 중 ‘차가운 평화’로 본다는 것.
그는 “기본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갖는 가장 기본명제는 전쟁은 피해야 된다는 것”이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 초당적으로 “대중 강경파가 아주 득세를 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발표문에서 “적대적 경쟁과 대결이 심화하면서 양국 간의 관여와 협력은 실종하게 될 것”이며 “핵 균형을 고려할 때, 양국 간 열전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지만, 차가운 평화와 신냉전 구도 사이에서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고 어둡게 전망했다.
아울러 미중 패권 경쟁설에 대해 “패권의 핵심은 항공모함”이라며 미중의 군사력과 핵전력은 “상대가 안 된다”고 평가하고 “중국 자체가 지닌 내부적 모순과 위기가 너무 많다”는 점도 짚은 뒤 “미국이 지금 중국 위협에 대해 얘기하는 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위협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야 국방비부터 획득할 수 있고 그래야 군산복합체에서 더 많은 자기들 이익을 챙길 수 있고 또 그래야 연구비 많이 나온다”는 것.
“우리가 미국과 중국 싸움을 막을 수가 없느냐?”
그는 이같은 미중 갈등 양상과 ‘한반도 평화와의 함의’를 따져 우리의 외교전략을 다섯 가지 선택지로 예시했다.
△패권국 미국과 일체가 되는 친미 균형 전략(pro-American balancing) △도전국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는 중국 편승 전략(bandwagoning China) △홀로서기 전략(standing alone) -한반도 중립화를 전제로 한 소극적 홀로서기와 핵무기를 보유한 중견국 지위확보라는 적극적 홀로서기 △미국과는 동맹, 그리고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동시에 모색하는 현상유지 전략(status quo via muddle through)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초월 외교(transcending diplomacy)가 그것이다.
그는 “미국하고 중국이 싸우면 그 부수적 피해는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 텐데 우리가 미국과 중국 싸움을 막을 수가 없느냐?”고 ‘예방 외교’ 가능성을 묻고, “미국하고 동맹을 맺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제1 교역상대국”인 이른바 ‘샌드위치 국가’들의 연대를 제시했다.
“샌드위치 국가들을 한 번 소집해서 거기에서 미국-중국 싸움 말리는 방안을 만들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 ‘다자안보협력 체제’와 ‘세계무역기구(WTO) 활성화’ 등의 방안도 덧붙였다.
실제로 호주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프랑스의 중도나 사회주의 정당 등이 연대가능한 상태지만 “현 (윤석열) 정부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는 점도 지적했다. 당장 현 정부 하에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초월 외교’와 같은 창조적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세계는 자꾸 다극체제로 갈 가능성이 더 많아지고 이미 지금 생기고 있다”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권과 중국⸱러시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동방권, 인도⸱브라질⸱남아공 등의 개발도상국세력(Global South)을 꼽았다
그는 “미국 측으로 우리가 붙어서 신냉전 구도가 나오게 되면 우리 한반도는 신냉전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며 “미국이 우리를 정말 지켜줄 수 있는가, 그걸 아마 생각을 해야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미국이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해도 한반도 문제 해결 못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현상 유지를 하든 초월적 외교를 하든지 중요한 건 남북 간의 대화가 있어야 된다”며 “남북이 주도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분명한 건 남과 북이 다투면서 우리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거나 중추국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단언했다.
“문재인 정부, 구상은 좋았지만 실행에 문제 있어”
문재인 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을 지낸 그는 ‘문재인 정부 시기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상당히 좋았는데 실행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북측에 약속했던 것들, 개성공단 재개까지는 않더라도 개성공단 입주자 대표들 방문해서 시설 점검하는 거 정도, 금강산 개별관광 같은 거, 이런 것들은 화끈하게 할 수 있어야 했었다”고 답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미국과 북한 간에 ‘빅딜’을 하게 되면 한꺼번에 다 하겠다라고 하는 건데 그 구상이 틀렸던 것”이라며 “너무 미국을 의식한 것 아니냐 하는 느낌이 든다”고 평했다. “정책을 직접 맡은 이들은 미국이라고 하는 큰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것 같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그는 “미국하고 반대되는 의견을 아무리 얘기해 봐야 결국은 우리가 미국한테 진다. 그러면 그때 고개숙이고 들어가느니 처음부터 아예 ‘우리가 할께요’ 해서 가는 게 제일 좋다라고 하는 게 내가 만나본 외교부에서 북미국을 맡아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는 경험담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제일 어려운 건 이제 남북이 비대칭 관계에 있는 것”이라며 북한이 핵무기와 모든 형태의 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는 상황을 적시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북미 관계 개선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는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의 저서 『힌지 포인트(Hinge Points: An Inside Look at North Korea’s Nuclear Program)』(Stanford University Press, 2023.1)를 인용하며 “아주 중요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판을 깬 것은 미국”이라며 “2019년 2월 28일 하노이에서 트럼프 그가 깨뜨린 것도 최악의 선택이라고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Bad deal is better than no deal”(나쁜 딜도 노딜 보다는 낫다)라는 것.
해커 박사는 영변에 5Mw 원자로, 연료생산공장, 방사화학 재처리 통해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재처리 시설, 핵무기 수소폭탄에 들어가는 삼중수소 실험실, 고농축 우라늄 시설, 제일 중요한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있다며 북한 핵능력의 60-70%에 해당하는 이곳을 완전히 영구적으로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데 그걸 안 받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최악의 선택’을 비판했다고 전했다.
최선희 “우리하고 수교 맺으면, 우린 미국하고 동맹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청중과의 문답 과정에서 문 교수는 북미관계에 관한 실례를 들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2012년 3월초 남북미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측은 헨리 키신저 박사와 존 캐리 상원의원, 도널드 그레그 전주한대사, 북측은 리용호 외무성 부상, 최선희 외무성 북미국장, 한성렬 주유엔 차석대사, 남측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백낙청 교수, 문정인 교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독일 프리드리히 애버트 재단이 재정후원을 담당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재미동포 이행우 선생이 사회를 맡았다.
이 자리에서 리용호 당시 외무성 부상이 ‘미국은 쿠바, 이란 등과 수교를 맺었다가 단교했지만 북한과는 한 번도 수교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미국의 ‘불공정’에 항의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문 교수가 새로 공개한 내용은,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북미국장이 “당신들이 지금 우리하고 수교 맺으면, 우린 미국하고 동맹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는 것. “얼마든지 핵을 바로 포기”할 수 있고 “군사동맹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고.
그는 “나는 그게 진심이라고 본다”며 “왜냐하면 그게 내부적으로 토론되지 않았더라면 최선희가 그 얘기를 못 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새로 공개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발언
캐리 의원이 연설을 하니까 리용호가 딱 손들고 일어나더니만 “미국은 상당히 공정하지 못하다 미국이 쿠바하고 단교를 했지만 수교를 했다가 단교를 하지 않았느냐? 이란하고 수교를 맺었다 단교를 했지 않느냐? 그런데 2차대전 끝나고 나서 한국전 끝나고 나서 우리한테는 한 번도 그런 기회를 주지 않고 지금까지 수교를 맺고 있지 않다. 이런 불공정한 게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존 케리 국무장관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북한이 지금과 같은 행태를 보이면, 수교를 하려면 수교 조약을 맺어야 될 텐데 그러면 상원에서 통과가 돼야 될 건데, 상원 100석 중에 단 한 석도 지지를 안 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행태를 바꿔라. 그러면 나도 한 번 얘기를 해보겠다.”
그러니까 리용호가 “바로 그런 ‘마인드 세트’ 때문에 미국 외교 정책이 망하는 거다” 이렇게 딱 얘기를 했다.
이건 이제는 공개해도 될 거다. 최선희가 가만히 듣고 있더니만 갑자기 허가도 받지 않고 딱 일어서서 발언을 한다. “당신들이 지금 우리하고 수교 맺으면 우린 미국하고 동맹을 할 수도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우린 다 동맹 할 수 있다. 군사동맹 할 수 있다”고 이렇게까지 얘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당신들은 결국에 우리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우리를 적대시해서 남쪽에 미군을 두고 그런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 지금 그런 것 하는 거 아니냐? 만약 당신들 정말 원한다면 우리 얼마든지 핵을 바로 포기하고 동맹 맺을 수 있다. 우리와 수교를 해주면은”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다.
나는 그게 진심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게 내부적으로 토론되지 않았더라면 최선희가 그 얘기를 못 했었을 거다. 그때 최선희가 북미국장을 할 때다. 그런 것들을 봤을 때는 안타까운 거다. (문정인 명예교수 강연 중)
“우발적 충돌이 확산되면 전쟁 일어날 가능성”
그는 “대만과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에 대해서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나는 약간 다른 생각”이라며 “계획에 의한 전쟁 가능성은 상당히 적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사용해야 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문제는 우발적 충돌이 에스컬레이션, 확산이 되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 그건 상당히 있다고 본다”며 “가령 서해에서 무슨 우발적 상황이 벌어졌다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 식으로 강경대응하면 저쪽에서 우리한테 또 반응을 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그는 “미국하고 중국은 지금 아주 첨예한 대결구도 속에 있으면서도 지금 군부 쪽에서는 한 124개 정도의 채널들을 갖고 있어서 계속 협의를 해 나간다”며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항상 열어놓고 부단히 협의해야 되는데 미중 간에는 그래도 있지만 남북 간에는 그게 없다. 그게 큰 걱정이다”고 짚었다.
오는 26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상하원 합동연설과 같은 의전적 대우와 ‘확장억제’와 관련한 확실한 보장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잔치가 끝난 다음에 우리에게 돌아올 청구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 번 생각을 해 봐야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강연에 앞서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문정인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했지만 “그때도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비판과 입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들이 미국과 협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는다”는 바람을 전했다.
2023년 통일뉴스 월례강좌는 평화3000이 후원하고 있으며, 5월 강좌는 17일 오후 6시 30분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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