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이중언어와 사회통합
캐나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이중언어 정책이다. 1969년에 공식언어법이 통과되면서 영어와 불어가 헌법상 동등한 위치의 공용어로 채택됐고, 의회와 연방정부 소속 모든 기관에서 두 언어가 병용된다. 판매 상품이나 간판 등에도 항상 영어와 불어가 동시에 표기된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인구가 이중언어 사용자는 아니다. 영어와 불어를 쓰는 국민의 비율이 비슷하지도 않다. 캐나다 국민의 대다수는 영어를 쓴다. 불어가 모국어인 국민은 22% 정도밖에 안 되고 이 중 많은 사람은 영어도 유창하게 한다.
한다.
이러한 캐나다의 언어 정책은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다문화주의 국가방침을 나타낸다.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퀘벡은 프랑스가 16세기부터 점령한 영토였지만, 1763년에 7년 전쟁을 겪고 난 후 파리조약으로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차지한 영국계로부터 압박과 멸시를 받았던 프랑스계들의 퀘벡 분리주의 운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9년 피에르 트뤼도 총리는 이중언어 정책을 선언하면서 독립을 원하는 퀘벡주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 덕이었을까. 1995년 퀘벡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방탈퇴 찬반 투표는 1% 차이로 무산됐다.
언어를 이용해 다양한 언어권의 주민을 통합하는 방식은 고대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스계 인도 왕국인 야바나 왕국에서 기원전 2~1세기경 찍어낸 은화를 보면 공식적인 이중언어를 쓴 재미있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화폐 한쪽엔 왕의 초상화 둘레에 고대 그리스어로 그 이름을 표기했고, 뒷면에는 코끼리를 탄 제우스신을 새기고 인도권 언어를 적어넣었다. 이후 쿠샨 왕조의 돈도 여전히 이중언어로 표기돼 있다. 부처님상 옆에 그리스 말로 ‘BODDO(붓다)’라고 적어놓은 금화를 보고 있으면 언어를 통해 문화 포용정책을 펼친 고대인의 지혜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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