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에 관한 특례법'의 폐해... 침묵하는 정치권에 묻고 싶다
▲ 진천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 위치도.(진천군 홈페이지) ⓒ 충북인뉴스
외지에 나갔다가 고향에서 살고 싶어서 집을 지어 귀향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이상한 얘기가 들렸다.
마을 이장이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공무원이 와서 '산업단지가 추진된다'고 했단다. 2018년 하반기의 일이다. 2019년 상반기에 주민설명회를 한다고 했다. 이후 면사무소에서 열린 주민설명회를 농민들이 막았다. 업체는 일단 주민설명회를 했으니 사업을 밀어붙인다고 했다. 업체는 태영건설이라는 회사였다.
절대농지가 사업부지의 절반 이상이나 되는데, 설마 이 농지를 모두 없애고 산업단지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마을 주민들은 절대농지를 해제하는 권한을 가진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를 몇 번이나 방문했다. 다행히 농식품부 실무자는 절대농지 해제에 부정적인 의견이라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2021년 10월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농식품부가 절대농지 해제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절대농지가 해제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산업단지 계획이 승인되더니, 같은 해 12월에는 '이주대책'이라는 것이 공고됐다. 한 마디로 순순히 보상금, 지원금을 받고 떠나라는 얘기다. 보상협의에 응하지 않으면 토지강제수용을 한다는 말도 들렸다.
지금까지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의 어느 주민이 겪은 이야기다. 이들은 집도 농지도 모두 빼앗길 수는 없다며 매주 수요일 진천군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진천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산업단지라는 명목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여당, 야당이 따로 없다. 충청북도는 더불어민주당 도지사(이시종) 시절 많은 산업단지들을 추진했다. 진천군 이월면 사당리에 추진되는 '진천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도 그 중 하나다.
산업단지 들어서면 지역이 발전할까
산업단지를 추진하는 것이 과연 지역발전에 도움되는 일일까? 필자가 활동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에서 검증해 봤다.
첫째, 인구가 늘어나는지 살펴봤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농촌지역 읍면의 경우에는 인구가 증가하기는커녕 감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3개 이상의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는 경기, 충남, 충북 48개 읍면동의 인구변화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2년 대비 인구가 감소한 읍면동이 32개에 달했다. 심지어 해당 기초지자체(군)의 평균 인구감소율보다도 더 줄어든 곳들도 많았다.
산업단지가 인구를 증가시킨다는 통념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도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자동화로 인해), 그나마도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둘째,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도움이 되는지 들여다 봤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지방소득세 법인세분, 주민세 등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단지로 인해 지자체나 국가가 지출하는 예산 또한 만만치 않다.
진천군의 경우 2014년에서 2021년까지 연평균 45억 6000만 원을 산업단지 기반 조성·유지관리, 보수에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앞으로 산업단지가 노후화되면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갈 수도 있다.
산업단지 진입도로 건설과 공공폐수처리시설에도 공공재정이 지원된다. 2018년 전국 산업단지 진입도로 건설 예산이 국가 차원에서 2385억 원에 달했다. 충청북도도 468억 원을 책정했을 정도다.
이밖에 입주기업들에게 지급하는 지원금과 각종 세제혜택도 결국 지자체가 재정을 부담하는 것이다. 진천군은 기업 이전 지원 명목으로 2011년에서 2021년까지 총 270억 원을 썼다.
산업단지가 분양에 실패하거나 했을 때, 지자체가 그 부담을 떠안기도 한다. 2021년 7월 감사원은 일부 지자체가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채무보증을 하거나 손실부담을 불합리하게 떠안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산업단지가 진짜 지역발전에 도움되는지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지역에 따라서도 산업단지로 인한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다.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나
산업단지를 통해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도 분석해 봤다.
이익을 보는 쪽은 분명했다. 지금 추진되는 대부분의 산업단지는 민간업체가 주도하는 사업이다. 산업단지 개발업체는 싼값에 땅을 취득해서 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분양한다.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분양이 잘 되면 업체가 돈을 번다.
시공업체도 돈을 번다. 산업단지 조성 공사를 수주해 이익을 낸다. 유지·관리를 하는 업체도 마찬가지다. 산업단지 개발업체가 시공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진천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는 태영건설이 80% 지분을 가진 특수목적법인(진천 테크노폴리스 주식회사)이 추진하는 사업인데, 공사도 태영건설이 수주했다.
입주업체도 돈을 벌 수 있다. 분양을 받았다가 더 높은 가격에 팔아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입주하면서 여러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산업단지 안에 산업폐기물매립장까지 설치하는 경우에는 폐기물 업체가 큰 돈을 번다. 순이익만 수천억 원대에 달할 수 있는 이권사업이다.
피해를 입는 쪽도 분명하다. 일단 산업단지 부지에 포함된 토지와 건물은 결국 강제수용까지 당한다.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강제로 쫓겨나야 한다. 그 안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은 생활기반을 잃어버리게 된다.
산업단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산업단지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대부분의 산업단지가 농촌지역에서 추진되고 있으니, 쫓겨나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농촌주민들이다.
'이명박 1호 법률'부터 폐지해야
▲ 사진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성서5차산업단지에서 열린 기공식에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
무분별한 산업단지 추진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제정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에 관한 특례법'이라는 법률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08년 4월 국회에 제출돼 다음 달 통과했다. 이 법률에 따라 산업단지 인허가 기간이 2~4년에서 6개월로 단축되고 7개 위원회의 심의가 산업단지계획위원회라는 1개 위원회의 심의로 대체됐다. 환경영향평가도 졸속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산업단지가 추진됐다. 현재 지정된 1262개의 산업단지 중에 43%가량인 542개가 이 법률이 통과된 2008년 이후 지정됐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조차도 이 법을 폐지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별말이 없었다. 지역에서는 민주당 지자체장이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산업단지를 추진하는 사례들까지 있다.
과연 특례법이 지금도 필요할까? 이 특례법이 없어도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 산업단지 추진이 가능하다. 굳이 졸속으로 산업단지를 추진할 수 있게 하는 특례법을 존속시킬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명박 1호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법은 이제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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