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잡월드분회 조합원들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 점검해야”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상단 구조물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서울 청와대 앞에서 "자회사 전환 반대, 직접고용 쟁취"를 외치며 노숙 농성하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국잡월드의 어린이·청소년 직업체험 강사들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잡월드라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일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던 홍길동처럼, "한국잡월드 직원입니다", "한국도로공사 직원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1년마다 재계약을 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같은 처지의 이들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뤄진 사측의 일방적인 자회사 전환에 반대하며,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자회사 전환에 반대했던 170여 명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강사들은 지난해 12월 31일 용역업체와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고, 직접고용을 요구한 1,500여명의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도 지난 7월 1일자로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종료돼 해고 상태에 놓였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잡월드는 개관 이후 7년간 필수인력인 강사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해왔다. 그러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상시 지속 및 생명안전 업무를 수행해 온 한국잡월드 직업체험 강사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원청인 한국잡월드 소속의 정규직 전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사측은 자회사를 세워줄 테니 그 소속 정규직이 되라고 했다. 직업체험 강사들은 자회사 소속 전환은 사실상 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다며 이를 거부하며 용역회사 계약만료 시점까지 버텼다.
해고를 앞둔 한국잡월드 강사들은 136일간 회사 앞 천막농성, 43일간 전면파업, 10일간 청와대 앞 단식농성 등을 진행했다. 8개월간 투쟁하던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는 사태의 해결을 위해 교섭한 끝에 지난해 11월 30일 원청인 한국잡월드와 잠정 합의했다. 이들은 대량해고를 막기 위해, 자회사인 '한국잡월드파트너스' 소속으로 전환 채용됐다. 노동자·사용자·정부는 상생발전협의회를 통해 2020년까지 고용 형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자회사 소속 전환 6개월 이후 이들의 일터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12일 오후 민중의소리는 한국잡월드 강사 4명을 한국잡월드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이진형(46)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장(6년차 어린이 직업체험관 강사), 이주용(27) 한국잡월드분회 부분회장(2년 6개월차 청소년 직업체험관 강사), 정인지(33) 한국잡월드분회 교육선전부장(6년차 청소년 직업체험관 강사), 김자영(28) 한국잡월드분회 조직부장(2년 6개월차 어린이 직업체험관 강사)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자회사를 떠나는 강사들
원청 눈치 보는 자회사..."용역 때랑 다를 바 없어"
원청 눈치 보는 자회사..."용역 때랑 다를 바 없어"
이주용자회사 소속 전환 이후 20명이 자진 퇴사했어요. 대부분이 투쟁하셨던 조합원분들이세요.
이진형 퇴사하는 분들은 회사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막상 자회사에 들어와 보니, 임금, 처우, 복지도 나아지는 게 없다는 거예요. 또 자회사로 오면서 소통의 부재도 더 커졌죠.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통로가 없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면, '모르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라고 대답만 하고 제대로 된 피드백이 없는 거예요.
이주용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된 지금도 '잡월드의 권한이다', '원청이 결정하는 거다'라는 소리밖에 안 해요. 용역 때랑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잡월드의 직업체험 콘텐츠와 시설 등 소유권은 원청인 한국잡월드에 있다. 그러나 이를 실질적으로 사용하며 체험 수업을 운영하는 강사들은 자회사인 한국잡월드파트너즈(주)에 소속돼 있다. 그래서 업무분리가 안 될 수밖에 없다.
이진형 자회사가 모회사에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인 거죠. 원청으로부터 독립적인 자회사가 돼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주용 자회사는 원청이랑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원청이 자회사에 관여를 안 할 수 없는 구조에요. 한국잡월드는 특히 핵심 목적 사업을 강사들이 수행하는데, 이것을 외주화시키고, 자신들이 관리를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고용안정은 이뤄진 것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에 이주용 씨는 이렇게 답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적했던 게, '자회사는 없애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원청에서 계약해지하면 강사 300여 명은 붕 떠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비정규직이랑 다를 게 없는 거죠."
이진형 사실 여기가 꿈을 찾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아이들한테 찾아줘야 할 그 꿈을, 우리는 못 찾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아이들한테 '너희들은 희망을 가지고, 비정규직이 되지 말아라'라고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대신 '즐겁고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용역 때와 달라진 게 없는 근무환경
"강사들이 쓸 수 있는 휴게실, 탈의실은 사실상 없다"
"강사들이 쓸 수 있는 휴게실, 탈의실은 사실상 없다"
한국잡월드의 겉모습은 깔끔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강사들의 근무 환경은 열악하다.
김자영 수업 시간 중 5분 휴식 시간은 사실은 아이들을 케어하거나, 부모 응대하는 시간이라 사실상 대기시간이에요. 화장실을 가는 것도, 눈치를 보면서 뛰어 갔다 와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진형 방광염에 걸리시는 분들도 많고, 안에서 오래 서 있다 보니까 다리 부종, 족저근막염이 걸리는 분들도 많아요. 인후염이나 안구질환에 걸리는 분들도 많아요. 거기가 환기가 잘 안 되다보니까. 밀폐된 공간이에요.
인터뷰 중에도 이진형 씨는 자꾸 눈을 비볐다. 이주용 씨는 "동굴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자영 창문이 없어요. 날씨 확인하려면 화장실 창문에서 봐야 해요. 그것도 열 수 있는 문은 아니고 거기서 비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해요. 환기가 잘 안 되니까 안에서 구름같은 먼지가 막 일어나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건, 자회사나 용역 때나 똑같아요.
체험실마다 강사들은 입어야 하는 유니폼이 따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탈의실이 없어, 대부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또 강사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도 없다고 한다. 현재 휴게실은 기존 한국잡월드 직원 50여 명이 쓰던, 한 곳이 전부다. 그마저도 1층에 자리하고 있어, 3~4층의 체험관에서 일하는 강사들은 위치나 시간을 감안했을 때 현실적으로 사용이 어렵다.
이진형 어린이 체험관에 일하는 강사의 수는 총 110명이지만, 여성·남성 라커룸은 각각 한 곳 뿐이에요. 사측은 라커룸을 탈의실이라고 하는데, 칸막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곳도 아니에요.
이주용 거의 '대중목욕탕'인 거죠. 라커도 직원 수에 맞게 제공해주는 게 아니고, 저희들이 다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공간 자체도 협소해요.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보다 150원 더 받는 수준이다. 또 강사 7년차와 신입사원이 같은 월급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에는 용역업체 이윤, 일반관리비, 부가세 등 절감 재원을 전환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사용하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처우를 위해 쓰여진 돈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용 저희한테 돌아온 게 없다는 게 체감이 되고 있어요. 인력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만 늘어났어요.
"노동의 가치 인정 안 해"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느낀 '차별'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느낀 '차별'
한국잡월드의 어린이 체험관은 5세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청소년 체험관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체험이 가능하다. 학생, 학부모, 인솔 교사를 포함해 하루에 최대 3천 명이 한국잡월드에 다녀간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7년동안 열심히 일한 직업체험 강사들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방문자수가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정인지 강사들이 이 기관의 핵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한국잡월드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노·사·전협의회 때 아직도 기억나는 말이 있어요. (한국잡월드) 정규직들이 자신들과 우리는 '문화적 갭(차이)'이 있대요. 팀장 중에 한 분은 우리랑 '한 부대에 담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김자영 우리를 아래로 두는 듯한 기분, 계급을 나눈다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자기 일자리가 좋아지려면 모든 차별이 없어져야죠. 그게 좋은 일자리의 시작이잖아요? 남의 일이 되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이진형 저희는 누군가의 자리를 욕심내거나, 뺏는 게 아니에요. 저희가 작년에 요구했던 건,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근무하면서 그냥 복지, 처우, 임금을 개선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이주용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 분들도 시험봐서 들어오는 사람들과 똑같은 월급을 받게 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임금에 맞춰달라는 거였는데 (사측은) 그것조차도 해주지 않는 거예요.
한국잡월드로부터 자회사 소속 전환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와, 직접고용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들은 것이 있냐는 물음에,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주용 직접고용이 안 된다는 건, 인원이 많다?, 비정규직 강사 338명, 그 인원을 다 받기 어렵다는 이유인 거 같아요.
이들은 정규직 전환 과정을 논의하는 노·사·전 협의회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정규직 전환 방식은 '자회사 소속 전환'으로 맞춰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마치 자회사 소속 전환을 미리 짜놓은 것처럼, 충분한 토론 없이 속전속결로 결정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인지 총 7군데 용역업체가 있었는데,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 다 달랐어요. 다 각자 일하는 환경이나 처우가 다른 시점에서 7개 회사를 묶어서 다수결로 투표를 진행한 거예요.
계약이 빨리 끝나는 직군 같은 경우에는 빨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됐어요. 노·사·전협의회 후반에 강사들이 들어갔는데, 실질적으로 전환 규모, 시기, 대상에 관한 결정은 한 달 안에 이뤄졌어요. 저희가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후다닥 진행해버린 거예요.
이진형 사실 노·사·전협의회 들어가면서 느꼈던 것은 너무 편파적이었다는 거예요. 대화를 주고 받고 해야 하는데, 너무 일방적이었고요. 질의를 하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회사는 뭐가 좋은 거고, 직접고용은 뭐가 좋은 거냐. 각각의 문제점은 뭐냐고 질의하면, 원청에서 그에 대한 응답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냥 '자회사 좋아요'만 말하더라고요. '직접고용은 뭐가 좋은 거예요?'라고 질문했을 때는 설명이 없었어요.
또 강사 직군이 인원이 많은데, 인원수 비례 대표자가 적었어요. 그래서 상황이 너무 부당해 재논의하자는 투쟁을 시작한 거예요.
같은 공간에 일하고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도 몰랐던 강사들은 일방적인 자회사 소속 전환에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주용 그래서 강사들이 5천원 씩 걷어가지고 자회사가 좋은지 직접고용이 좋은 것인지 노무사님에게 자문을 받았어요. 노무사님이 이 회사 같은 경우에는 직접고용이 맞다고 했어요. 다 속았던 거죠. 사실 그동안 노조 만드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기 때문에 서로 얘기를 못했어요. 그런데 자회사 소속 전환이 통과되고 나서, 그 결정이 너무 부당해서 노조가 만들어졌어요.
정인지 '우리는 핵심업무인데 왜 직접고용이 되지 못하지?' 그게 작년부터 궁금했어요. 그것을 알 수 있는 게 상생발전협의회였는데, 그게 진행이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저희는 직접고용이 되지 못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한국잡월드분회 조합원들은 "합의 후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합의문에 쓰인 그 어떤 사항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잡월드와 한국잡월드파트너즈에서 노노갈등이라는 포장을 이용해 단체협상과 노사상생협의회를 진행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사측이)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부, 가이드라인만 던져놓고 끝?"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재점검 기회가 됐으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재점검 기회가 됐으면"
이주용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을) 관리 감독을 하는 기관이 있었다면, 자회사로 이렇게 많이 전환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같은 경우에는 3월에 나온 국회 환노위 보고서에 보면, 잡월드는 자회사 전환을 철회하고 직접고용하라라고 나올 정도 였어요. 객관적으로 직접고용이 맞는 거였어요. 그런 것들을 다 방치하고, 가이드라인만 던져 놓고 끝인 거예요.
김자영 노동자와 사측이 합의를 할 때, 노동자가 불리할 거라는 걸 정부도 알 거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한 대책이나 방안 없이, 가이드라인 하나 주고 (정규직화라는) 결과를 가져오라는 것은 정부가 소홀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진형 한 번쯤은 정책 실행에 대해 재점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거 없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논스톱으로 진행해 왔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자꾸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아요. 고용노동부는 이미 오래 전에 손을 뗐잖아요? 정부도 노동부도 전방위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국가가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한국잡월드 강사들은 이번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투쟁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처럼 느껴진다"며 기사를 보면 쉽사리 지나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주용 씨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데 대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제가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저희는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 거 든요. 지금 그 분들은 해고가 되셨으니까 저희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감히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제가 경험해보니까 자회사는 정말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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