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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6일 금요일

북미 평화 협정 논의, 남한은 낙동강 오리알?

"박근혜, 미국이 북한과 몰래 바람 피면 어쩔텐가?"
[정세현의 정세토크] 북미 평화 협정 논의, 남한은 낙동강 오리알?
이재호
기자
| 2016.02.26 14:50:26

북한의 '수소탄' 시험과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 4호'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도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제재가 예상되는 가운데, 북한에 이른바 '끝장 제재'를 부과해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구상이 나름 효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재가 나오게 된 과정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일변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안보리 제재에 합의하면서도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여지를 열여뒀다. 

미-중 양국 외교장관은 23일(현지 시각) 회담을 가진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재는 대화를 위한 수단이며,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북미 양국이 지난해 12월 평화협정 체결 문제로 접촉을 진행했다고 보도했고, 미국 역시 이를 시인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겠다고 공언했던 한미 양국의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렸다. 지난 23일 예정됐던 한미 공동 실무단 약정 체결이 미국 측의 요청으로 돌연 연기됐고, 급기야 25일(현지 시각) 미국 태평양사령관은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협의하기로 합의한 것인지, 양국이 아직 사드를 배치하기로 합의하지는 않았다"며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이에 북한에 대해 강한 압박 정책을 추진하며 미국만 바라보고 있던 박근혜 정부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내 관료들이 미국과 중국의 변화된 움직임을 미리미리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는데 '임전무퇴'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했다"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한국은 미국이 언제까지나 함께 하는 줄 알고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해야 한다며 지붕 위에 올라가서 고함을 쳤는데, 오히려 미국은 지붕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치워 버리고 옆 사람인 북한과 대화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외교나 안보 영역에서 자기 중심성이 없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막말로 미국은 언제든지 우리 몰래 바람을 피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면서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행보를 소개했다. 

정 전 장관은 "베트남전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쥐도 새도 모르게 북베트남과 판을 다 짜놓고 남베트남 정부에게 평화 협정에 서명하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베트남 정부는 키신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미국이 협상하는 동안에도 북베트남에 대대적인 폭격을 해줬기 때문"이라며 "남베트남은 그게 '성동격서' 전략인지 전혀 몰랐다. 결국 이렇게 미국은 뒤로 혹은 물밑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런걸 읽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 이후에 한국이 미국을 등에 업고 이른바 '끝장 제재'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좀 바뀐 것 같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23일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회담을 가지면서 제재는 대화를 위한 수단이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인데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핵화가 북한의 비핵화인지 한반도의 비핵화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미-일의 양자 제재로 북한을 끝장내겠다는 계획이 미중 간 외교장관 회담을 거치면서 유엔 안보리 제재로 이동하고 있고, 대화를 하겠다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에 한-미-일 3국은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안 도출을 위해 노력을 했는데, 지난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때까지도 중국과 접점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핵실험과 로켓 발사가 한 달 간격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제재 내용을 강하게 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한-미-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과거 대북 제재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여야 한다는 한-미-일의 요구에 대해 처음부터 선을 그었습니다. "제재가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민생까지 괴롭히는 제재에는 동참할 수 없다"라고 밝혔죠. 

결국 4차 핵실험이 두 달째로 접어드는 현시점에 비로소 접점을 만든 모양새는 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중국이 양보했다거나, 한-미-일의 끈질긴 요구에 중국이 마지 못해 "그래 그럼 대충 끝내자" 하는 식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제재를 위한 제재가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제재가 되어야 한다는, 그래서 대화 쪽으로 퇴로를 열어 놓아야 한다는 입장이 미-중 간의 '담판'을 통해 결론으로 도출된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지난 17일 왕이 외교부장이 비핵화와 평화 협정 체결의 병행 추진을 제안했고 미-중 외교 장관 회담이 열리는 와중에 한미 양국은 지난 23일 오전 11시에 사드 배치 관련 공동 실무단 구성을 위한 약정을 체결하려고 했지만, 이를 한 시간 앞두고 미국의 요청으로 연기됐습니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와 사드 배치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사실상 이는 연관돼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미중 간 외교 장관 회담을 거치면서 양국이 담판을 지었고 사드 문제는 뒤로 밀린 셈인데, 한국 정부는 이러한 과정에서 완전히 제외됐던 것처럼 보입니다. 

정세현 : 우선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2월 미-북 접촉을 즉시 알지 못했을 겁니다. 미국이 우리한테 알리지 않고 북한과 만났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미 관계가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자랑했는데, 대체 외교부는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만났다면 유엔 대표부에서 만났을 텐데, 한국의 유엔대표부랑 주미 한국 대사관은 뭐한 겁니까? 한미 관계가 '최상'이라면 하다못해 미국 국무부 실무자들로부터 귀띔이라도 들었어야 했던 것 아닙니까? 

이런 사안은 미리미리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 안보팀은 '임전무퇴' 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했습니다. 한국은 미국이 언제까지나 함께 하는 줄 알고 열심히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해야 한다며 지붕위에 올라가서 고함을 쳤는데, 오히려 미국은 지붕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치워 버리고 옆 사람인 북한과 대화하고 있었던 겁니다.

지난 1월 27일 케리 장관이 베이징(北京)에 갔을 때 왕이 부장과 했던 대화의 내용을 여기저기서 조합해보니, 이미 그 때 회담 내용이 이번 23일에 발표한 것과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이런 낌새를 박근혜 정부가 얼른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걸 못했기 때문에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 제재의 최전선에 서버린 것입니다. 

"지금 기미가 이상합니다. '강력한 대북 제재'에 너무 앞서 나가면 우리만 덩그러니 남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을 체크하고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대통령에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대체 관료들이 뭘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안에 있어서 한국이 고립됐다는 책임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린 겁니다.

▲ 존 케리(오른쪽) 미국 국무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국무부 청사에서 회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드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갑자기 약정 체결을 연기하겠다는 미국의 통보를 받아들였고, 이미 예정됐던 날짜에서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영원할 것 같은 한미 동맹만 믿으면서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가 중간에 뒤통수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지난해 말 미-북 간에 접촉이 있었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 이후 국무부의 존 커비 대변인은 북한이 먼저 평화 협정 논의를 제안했다면서 "우리는 제안을 신중히 검토(carefully considered)한 후 비핵화가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제안을 '신중히 검토'했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건 미국이 북한과 접점을 만들 각오를 하고 접촉에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부터 평화 협정 이야기를 계속 언급했습니다. 북한이 뉴욕 채널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냈을 텐데, 만약 미국이 이른바 '전략적 인내' 입장을 고수했다면 북한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입장을 고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만나서 북한의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이번 북-미 접촉이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북한과 미국이 접점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제3자가 조정하면 양측이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북한은 평화 협정 체결을 앞에 두고 비핵화 논의를 그다음에 하자고 했을 겁니다. 그동안 2005년 9.19 공동 성명, 2007년 2.13 합의 등 여러 합의가 있었지만, 비핵화를 위한 행동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미국이 뭔가 트집을 잡아서 뒤집어 버렸던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 협정과 비핵화를 묶어서 한다고 해도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북한입니다. 

9.19 공동 성명 5항을 보면 "6자는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것도 북한이 요구해서 집어넣은 겁니다. 결국 북한은 이번에도 미국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면 안되고, 동시에 할지언정 처음에는 미국의 행동을 먼저 보장받고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버텼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은 그렇다 치고 그동안 북한의 '선행동'을 강력하게 요구하던 미국이 평화 협정과 비핵화의 패키지로 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지난 2009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발상이자 9.19 공동 성명에 있었던 1항과 4항을 업그레이드 한 셈입니다. 미국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왕이 부장의 제안은 미-북 접촉 동향을 감지한 중국이 6자 회담 의장국으로써 이 문제를 치고 나가면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발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왕이가 이야기한 것은 9.19 공동 성명에 이미 있는 것이고 힐러리 전 장관이 2009년에 제안했던 것을 재활용하는 수준이지만, 지금 이 시기에 이 안을 던진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23일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을 자신의 안대로 움직이도록 설득한 겁니다. 대신 중국은 미국이 그동안 노래를 불렀던 '강력한 대북 제재'의 모양은 갖춰주겠다고 약속했을 겁니다.

미국의 목표는 비핵화? 핵 동결! 

프레시안 :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양자 제재에서 유엔 안보리에 의한 다자 제재와 협상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지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의 언론들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말을 쓰고 왕이는 '한반도 비핵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 1월 케리와 왕이가 만났을 때는 '북핵 동결'이라고 했구요. 용어를 한 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지점은 앞으로 6자 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 여부인데요. 가능성이 있다면 회담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미국과 중국이 담판을 했다고 보이는데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정세현 : 지난 연말에 미북 접촉 당시 미국이 썼던 용어는 북한 핵 '동결'이었습니다. 비핵화를 평화 협정의 테두리 속에서 다루되, 일차적으로 북한의 핵을 동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기 이전에 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그렇게 해서 평화 협정까지 가보자는 것이겠죠.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북한의 핵도 용납할 수 없지만, 주한 미군이 언제든지 끌고 들어올 수 있는 미국의 핵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주한 미군 핑계를 대고 미국이 한반도 해역 또는 영공에 핵무기를 전개하는 행위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과 같은 입장입니다. 북한은 1991년 미군의 전술핵이 한반도를 떠난 것을 두고, 자신들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남한 역시 고농축, 재처리 등 핵과 관련한 10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묶여버렸습니다. 이게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미국의 핵 전략 자산이 한반도에 드나들고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금지돼야 한다는 것이 북한 입장입니다. 

남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거론할 때 북한의 비핵화만 이야기합니다. 중국이나 북한과 다른 입장인 겁니다. 그런데 이게 미국과도 차이가 좀 있습니다.

미국은 핵 동결을 이야기합니다. 북한이 비핵화돼 버리면 한국의 무기 시장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설사 왕이가 비핵화와 평화 협정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해서 실제 협상이 시작된다고 해도 미국은 핵 동결부터 시작하자고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반대 급부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선언을 할 수 있겠죠. 

▲ 지난 25일(현지 시각) 미국 국무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가운데)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이러면서 미국은 북한의 핵을 관리하려 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이 없으면 남한이 무기를 사지 않습니다. 최대 무기 수입국인 한국이 날아가 버리는 것을 미국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 시장 유지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미국은 핵 동결 혹은 비확산 정도를 원할 겁니다. 물론 중국도 시작은 동결, 비확산 정도에서 마무리하자는 식으로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이 없어지는 것이 편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합의 가능한 목표는 아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국을 제외한 미국, 중국, 북한이 타협할 가능성에 대해 항상 열어둬야 합니다. 이를 전제로 우리의 북핵 정책 목표를 수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비핵화 문제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합니다. 중국이 비핵화에 동의했으면서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며 따지는데, 사실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전술핵도 한반도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비핵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비핵화를 요구하지만 미국은 분명 비확산에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북한 비핵화가 되면 미국의 핵우산도 접어야 하는데, 미국이 이런 선택을 쉽게 할 리가 없습니다. 또 북한의 비핵화만 요구하다 보면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대통령에게 이해시켜야 합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하려면 반대급부가 나간다고 입력을 시켜줘야죠. 대통령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으면 외교부라도 나서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줘야 합니다. 빨리 이해시킬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덜 소외되고 그나마 망신을 덜 당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서 미국과 중국이 접점을 찾으면서 주한 미군의 한반도 내 사드 배치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데요. 만약 6자 회담이 제대로 굴러간다면 사드 배치도 없던 일이 될까요?

정세현 : 미국이 동아시아 정책을 끌고 나가는 과정에서 사드 문제가 불거진 만큼, 일단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 때나 꺼낼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리라고 봅니다. 미국이 그나마 이렇게 해줘야 한국 정부도 덜 창피합니다. 만약에 미국이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는 완전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면 박근혜 정부가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바마 정부가 말년인 데다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패권 유지는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여전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면 미국 대 중국의 지분이 '100대 0'은 아닌 것 같다는, 즉 중국에 일정 부분 지분을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이 중국과 손을 잡고 일단 현재 상황을 넘기는데 속도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협상은 다음 정부에게 맡기는 것이죠. 

사실 오바마 정부가 '북핵 동결' 정도만 만들어서 다음 정권에 넘겨주는 것만 해도 큰 업적입니다. 취임 초에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외상으로 노벨 평화상을 가져간 오바마 입장에서는, 비록 북한의 비핵화는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핵 활동을 중지시키는 성과는 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오바마 대통령이 이 정도도 하지 않고 임기를 마친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능력을 키웠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북핵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아시아에서 중국에 밀렸다거나 '100대 0'을 고수하려다가 중국에 지분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북핵 동결이라도 만들어 놓고 가야 합니다.

또 5년 동안 북핵 문제를 방기했다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북핵 동결은 필요합니다. 케리 장관과 백악관에서 지난해 북핵 동결이라는 단어를 꺼냈다는 이야기는, 결국 이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전략 없이 움직인 박근혜 정부, 대가는? 

프레시안 :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부터 2월 7일 사드 배치까지 이어진 박근혜 정부의 일련의 행보를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로 기존 입장과 180도 뒤집힌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미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것은 없었을까요? 

정세현 : 위안부 합의의 경우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완전히 뒤바꿔버린 건데, 박 대통령이 본인이 어떤 말을 했는지 잊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내보내는 메시지가 상대방한테도 전달되기 때문에 사실 외교 문제에서 단어 하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용어를 잘 선택해서 퇴로가 있는 단어를 써야 하거든요. 미국에서 박 대통령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작정하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태입니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보면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 관계가 불편하면 안됩니다. 한미 관계를 잘 가져가려면 미국이 생각했을 때 한일 관계라는 '소의(小義)'에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미국은 한-미-일 3각 동맹이라는 '대의(大義)'에 의해 빨리 해결하고 넘어가자고 했을 것이고 박근혜 정부는 그 말에 토를 달지 못하고 끌려다녔을 겁니다.

▲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전두환 대통령 당시 아웅산에서 한국 외교관들이 희생당하는 테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북한에 대한 보복은 없었고, 이산가족 상봉까지 진행했습니다. 1988년에 개최될 서울 올림픽 때문이었습니다. 전략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춰서 일을 추진한 건데요. 박근혜 정부의 전략 목표는 대체 무엇이길래 이러한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북한 붕괴가 목표인 것처럼 보이는데, 전략 목표를 제대로 세운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정세현 : 미국은 중국 압박으로 전체 판을 짜고 있는데, 여기에 잘 편승하면 이번에 북한을 붕괴시켜서 자신의 임기 중에 통일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던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유엔 제재가 소위 '허당'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양자 제재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미국이 확실하게 밀어준다면 사드 배치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북한이 반발하면 미국이 대응해줄 테니 북한은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과 전쟁을 치를 수도 없고, 으르렁거리다가 결국 중국까지 경제 제재에 함께 들어가면 북한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이런 환상에 빠져서 그동안 이렇게 세게 나간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미-북 간에 접촉을 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고 할지라도 '별거 있겠냐'며 그냥 지나가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휴민트'를 동원에서 정보 수집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었을 수도 있죠. 

프레시안 : 중국의 한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이 핵 실험을 한 뒤에 외교관들이 아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핵실험 설명을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정세현 : 만약 북한의 핵실험이 자기들이 말하는 대로 '핵-경제 병진 노선' 추진의 일환이었다면 그렇게 설명하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즉,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적대시 정책만 거둬들인다면, 협상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북한은 "차후에 비핵화와 평화 협정 관련 협상을 할 때 카드를 갖기 위해 핵실험과 같은 것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보고 동북아 평화를 깬다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다음 단계의 동북아 평화로 넘어가기 위한 일종의 디딤돌로 생각해 달라"라고 설명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중국에게 "미국이나 일본, 한국이 우리를 목 졸라 죽이자는 제안을 해도 동조하지 말아달라.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제재를 위한 제재는 안 된다든지, 민생을 어렵게 하는 제재는 할 수 없다는 입장 등을 계속 지켜만 준다면, 우리로서는 때를 기다릴 수 있다. 중국이 다리만 놓아준다면 당신들 체면도 세워줄 수 있다"라는 설명도 함께했겠죠.

그런데 남한은 전략 목표도 없고 전술적 목표도 없어 보입니다. 그저 미국에 협조하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진 겁니다. 우리도 꾸준히 입장을 설명하면서 북한이 사고를 치지 않도록 만들든지, 아니면 제재 결의안이 하루속히 결론 나도록 움직이든지 했어야 했는데, 기본적으로 해야 할 역할도 제대로 못 한 셈입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북한만 때려잡으면 모든 일이 풀릴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국가 안보' 개념 자체가 잘못 정립돼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협의의 안보 개념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한 '피스 키핑(Peace Keeping)'이 안보의 전부인 줄 알고 있는데, 피스 키핑을 하면서도 여기에 들어가는 우리 국방비가 줄어들 수 있게 북한의 대남 위협을 감소시키는 이른바 '피스 메이킹(Peace Making)'을 하는 것이 진짜 안보입니다. 

미국 백악관의 안보 보좌관은 전 세계에서 군사와 외교 균형을 잡으면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해 나가는 전략을 짜는 사람입니다. 안보라고 해서 전투하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투가 아니라 전쟁, 전술이 아니라 전략, 군사가 아니라 외교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북한만 막으면 되고 미국만 등에 업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뒤통수를 맞는 겁니다. 

외교나 안보 영역에서 자기 중심성이 없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막말로 미국은 언제든지 우리 몰래 바람을 피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외교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나' 외에는 모두 '남'이라는 투철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자기 중심성의 바탕에서 냉철하게 국가이익을 판단해야죠.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은 모두 이런 원칙 아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군부나 외교 관료는 대미 의존이 너무도 심각합니다. 

베트남의 경우를 봅시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쥐도 새도 모르게 북베트남과 판을 다 짜놓고 남베트남 정부 보고 평화 협정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베트남 정부는 키신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협상하는 동안에도 북베트남에 대대적인 폭격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남베트남은 그게 '성동격서' 전략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죠. 미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협상을 끌고 가기 위해 한쪽에서 폭격을 벌인 겁니다. 결국 이렇게 미국은 뒤로 혹은 물밑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읽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정부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야당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면에서 대체 야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세현 : 지금 동북아 외교에서 박근혜 정부가 자기 역할도, 제대로 된 발언도 못하고 있듯이 남북 관계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험악해지고 있는데 야당은 전혀 감각이 없어 보입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북 관계가 이렇게 돌아가는 와중에 통일부가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상황에서 명색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이 개성공단 폐쇄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든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화와 협상은 설 땅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데 대화와 협상은 대북 정책의 기본입니다. 더욱이 민주 정부 10년 동안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은 함께 한다는 것이 기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에는 이러한 역사적 인식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한 감각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한반도 경제통일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런데 경제 통일의 출발점이 바로 개성공단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위원회에서 세미나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차라리 이럴거면 이름을 바꾸든지, 뭘 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 놓고 경제 통일하자고 하면 이게 제대로 굴러가겠습니까? 

김종인 대표가 북한 궤멸론에서 살짝 꼬리를 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던데,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햇볕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햇볕 정책 2.0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선도하겠다던 이른바 '끝장 제재'에 의한 북한 붕괴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 현재 외교 안보라인은 교체돼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됐으면 김종인 대표나 야당이 더 세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겁니다. 대통령을 이렇게 만든 사람을 데리고 어떻게 계속 일하겠느냐는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물론 김종인 대표가 경제를 전공했고 외교 안보 사안이 총선의 가장 큰 이슈는 아니지만, 더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외교 안보 문제입니다. 대선 때는 경제 못지않게 이 분야가 중요합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기선을 잡으려면 이때 세게 몰아쳐서 어떤 정책이 국가의 안보와 외교, 통일을 위해 올바른 방향인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국정원은 국민을 테러한 집단인데 테러집단이 테러집단을 막나?”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33]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단장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대한민국에서 안보는 늘 보수 아이템이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새누리당 정권은 간첩을 조작하거나 혹은 북한에 휴전선에서 총 쏴달라고 부탁하는 등 북풍을 선거에 활용하곤 한다. 즉 북한과 새누리당은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야권은 늘 북풍에 낙엽 떨어지듯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할 정도로 안보분야에 취약했다. 그런 와중에 진보진영에서 안보 전문가가 나타났다. 바로 김종대 전 <디펜스21> 편집장이다. 김 전 편집장이 지난해 9월 정의당에 입당해 국방개혁단장을 맡았다. 
마침 최근 북한의 핵 실험과 로켓 발사 등으로 안보 문제가 이슈로 떠올라 지난 23일 정의당 당사에서 만나 정계 입문 이야기와 함께 한반도 안보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단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단장 ⓒ 이영광 기자
- 정의당 입당이 지난해 8월이었잖아요. 6개월이 흘렀는데 어떠세요?
“정의당은 단합이 잘되는 화기애애한 정당이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주 즐겁고 보람 있었어요.” 
- 정치할 생각은 어떻게 했어요?
“항상 관심은 있었지만 제 직업 때문에 제약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언젠가 여의도로 다시 와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알던 분입니다만 심상정 대표가 찾아오셔서 정치하자고 제의하셔서 ‘심 대표 같은 분이 제안해 주시고 정의당이 앞으로 성장해야 할 당인데 제가 도움된다면 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오게 된 것이죠.” 
“외국은 진보좌파들이 국방 분야 굉장히 세다…한국 비정상”
- 정치 밖에 있을 때와 안으로 들어왔을 때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밖에 있을 때는 정치권에 가서 하고 싶은 대로 떠들고 일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기 오니 어떤 일이나 말을 한다 하더라도 모든 게 국회 내 권력관계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역시 소수당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절감했어요.
그리고 저는 안보, 국방 정책 분야에서 일합니다만, 말을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국회 권력관계에서 우리의 여론이 많이 왜곡되고 전달이 쉽지 않아요. 권력의 풍향계로 움직이는 언론과 소수당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가 당분간 겪어야 할 큰 어려움입니다.” 
- 입당 전에 정의당을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정의당은 생긴 지 이제 3년이 지난 정당이잖아요. 과거 통합 진보당 시절에 아픔이 많았잖아요. 분당하여 결국 진보가 분열된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어요. 그런 과정을 겪어서 우리가 정의당을 보기엔 뭔가 진보의 명맥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순간에 용케 잘 버텨냈어요.
  
▲ 정의당 김종대 국방개혁기획단장 <사진제공=뉴시스>
그리고 심상정, 노회찬으로 대표되는 혁신하는 진보, 또 성찰하고 반성하고 거듭 태어나려는 의지를 나름대로 갖추면서 그 위기의 순간에도 잘 버텨온 거죠. 그런 점에서 참 대견하고 장하고 제가 힘을 보탠다면 더 커질 수 있는 정당이죠. 올 총선에서 의미 있는 지지율만 받는다면 20대 국회 때는 굉장히 성장할 거예요. 이런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합니다.” 
- 정의당 입당과 관련해 “지난해 문재인 전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게 영입 제안이 있었지만 이미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낚인 상태였다”고 하셨는데 단지 시간차 때문에 정의당을 선택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시간으로 따지자면 문 대표가 먼저였어요. 항상 친하게 지냈고 만나자는 연락도 먼저 받았어요. 그럼에도 심 대표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봤던 것은 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굉장히 지리멸렬했고 비전이 없었어요. 물론 지금 조금 살아났긴 하지만 저는 20년 이상 민주당에 나름대로 봉사해왔는데 보람도 없고 이젠 새로움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야권 전체가 잘되려면 제3당이 필요하단 거였죠. 그래서 행동으로 바꾼 건데 여러 사람 예상이 빗나갔던 대목이죠. 사람들은 그 반대로 했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보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우선 가치와 신념이 뚜렷한 정당으로 가야 성장할 수가 있지 저렇게 좌충우돌하는 정당이 바람은 잘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체성이 일관되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정의당이 저에겐 더 새롭고 일관성이 있었죠.” 
- 국회에 들어가시면 뭘 가장 하고 싶으세요?
“일단 빨리 한반도의 전쟁위기, 남북한의 긴장 고조에 대해 대응 당론을 내야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평화예요. 누구도 이젠 평화를 얘기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어요. 그러나 저희마저 문을 닫아버리면 견제할 세력이 없거든요. 그래서 시급한 문제입니다.” 
- 기존 패러다임에서 안보나 국방 부분은 보수의 트레이드 마크예요. 그러나 김 단장은 줄곧 진보 측에서 활동하셨잖아요, 진보가 안보나 국방 부분이 취약한 이유 뭐로 보세요?
“이게 굉장히 가슴 아픈 부분인데 외국에 나가면 진보 좌파단체들이 국방 분야에 굉장히 세거든요. 진보가 안보 국방에 담을 쌓은 건 한국만 있는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진보가 국방, 안보에 취약한 결과 대가를 톡톡히 치렀어요. 역대 선거에서 북풍이 벌어지면 위축되잖아요. 그리고 자기 할 말 못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그동안에 국방, 안보에 준비를 안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외국 가면 1980년대 반핵운동, 또 독일통일에 이르는 동안에 진보가 예비역 장성들을 영입해서 자기편으로 삼았습니다. 많은 안보 쪽의 당사자를 시민단체가 확보하면서 반핵 운동이 있었고 미국에 가면 예비역 장교들이라든지 각종 군 출신 고위직들이 진보적인 활동을 많이 해요. 제3세계 국가도 마찬가지인데 한국만 유독 군인들이 하도 나쁜 짓 했다고 해서 그것이 싫어 국방, 안보에 취약하게 되는 이상한 수준까지 간 거죠. 잘못된 거예요.” 
“국정 책임진 새누리 항상 면책…8년‧15년전 정권이 아직도 심판받아”
  
▲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과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안보상황점검 긴급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멀리있는 왼쪽부터 김건 북핵외교기획단장, 임성남 외교부 차관, 한민구 국방부장관, 이남우 국방부기획관리관, 김진섭 국정원 1차장. <사진제공=뉴시스>
-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민주정부 10년에서 안보가 새누리 정권의 안보보다 나았던 것 같은데 국민 인식은 왜 안보는 보수라고 할까요?
“민주정부 10년 동안 제일 잘 돌아갔어요. 일단 대통령의 관심이 컸고 군의 사기가 높았고 복지가 많이 발전했고 국방 예산도 충분히 배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에 마치 이적행위를 한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새누리당이 안보를 정치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해서 자기 기득권화하면서 과거 정부의 성과나 정체성을 왜곡 날조를 한 것이죠. 오히려 이것이 안보 자체를 무너뜨리는 이적 행위를 새누리당이 하는 겁니다. 이런 점이 지금에 와서는 보수언론과 종편에 의해 진실하지 않은 잘못된 역사로 왜곡되어 버린 것인데 참으로 이런 게 국민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게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 먹혀드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은 야권이나 진보가 그동안 자신들이 만든 성과를 자신들의 성과라고 기억을 못 했어요. 무능했던 것이죠. 그래서 여당의 안보 공세를 차단하지도 못했고 거기에 맞는 자기의 대안도 없었습니다. 여당의 안보 공세에 우물쭈물하며 밀리니까 새누리당은 이때다 싶고 기가 살아서 안보 공세를 퍼붓다가 이제는 중독된 것이죠.
그런 점에서 이유는 국민이 잘못된 선동에서 나오는 논리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는 것, 보수언론이 이걸 반복적으로 이미지화하며 국민을 겁박했기 때문입니다. 때맞춰 북한이 가끔 뭘 한 방씩 터뜨려준 것도 보수 정치권력과 장단이 잘 맞았습니다.” 
  
▲ 중앙일보 19일자 1면 <“북한 테러·납치 대상자 명단에 김관진·윤병세·홍용표·한민구”> 보도 ⓒ <중앙> PDF2016-02-20
- 그럼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것은 지금부터라도 저희가 힘을 모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잖아요. 국민의 인식을 저희가 바꾼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 보수정권 10년을 경험해 보시면 ‘안보가 이렇게 무너지고 정치화되는구나’라는 걸 절감하리라고 봐요. 단지 그런 여론을 권력으로 찍어 누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만 제거된다면 자연스럽게 정상화 되죠.” 
- 그전에 새누리 정부를 겪지 않고 민주정부를 겪었다면 그 말이 맞는데 우리는 그전에 새누리 정부를 겪어보고 민주정부를 겪었어요, 그러면 야권이 더 안보에 강하다는 걸 깨달아야 할 텐데 다시 새누리 정부로 넘어갔잖아요. 그럼 단순히 새누리 정권을 10년 겪었다고 인식이 바뀌진 않을 것 같은데.
“역사적 평가를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민주정부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 또는 진보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올바른 정책이라면 너무 혼자 독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의 반감이 있었다고 봐요. 그리고 순식간에 보수정권으로 바뀌고 난 다음에 후회할 틈도 없이 지난 민주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밀려들었습니다.
지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새누리당은 항상 면책되고 이미 8년 전, 15년 전의 정권이 아직도 심판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죠. 이미 죽은 권력은 계속 심판받고, 정작 심판받아야 할 살아있는 권력은 심판받지 않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보다 야당에 대한 자격 심사로 흘러갈 공산이 큽니다. 제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햇볕정책, 정권교체 후 계승 못했는데 어떻게 성공하겠나”
- 햇볕정책 실패론이 나와요.
“햇볕정책은 독일에서도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긴장완화 정책과 신동방 정책을 68년부터 폈어요, 70년대 정권교체 됐는데 보수당인 기민당이 사민당의 정책을 원래 반대했어요. 그러나 막상 정권을 잡으니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는 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을 바꿨거든요. 그게 20년 후 독일 통일로 연결됐거든요. 그러나 우리 경우는 정권교체 후 계승을 안 해서 햇볕정책이 실패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계승이 안 됐는데 어떻게 성공해요?
그리고 햇볕정책 자체원인도 있어요. 뭐냐면 햇볕정책이 너무 당위론으로 연결되다가 정권 말에 성과를 내려다보니 잘못한 게 있었던 거죠. 그게 10·4선언이죠. 조금 더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대북정책을 편 것이 아니라 많은 바람을 탄 것이죠,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 자체 문제도 보완되었어야죠. 그러나 가고자 하는 방향은 옳았어요. 방법론에서는 시행착오가 많았어도 그마저도 새누리당이 뒤집어엎는 순간 실패한 정책이 된 것이죠.” 
- 더 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햇볕정책 수정론을 얘기하는데
“수정은 해야 해요. 과거는 핵이 없을 때지만 지금은 북한이 핵을 거의 가졌잖아요. 상황이 바뀐 건 고려해야 하거든요.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서 과거와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에요. 그러나 햇볕정책의 기본은 북한 핵을 불능화하고 흡수통일을 반대하면서 지원하자는 거잖아요. 그러나 일단 핵을 가졌으니까 당장 비핵화가 힘들다면 동결이라도 한다든지 목표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북한과 긴장 완화를 하겠다고 수정은 되어야겠죠. 이것마저 안 한다면 현실성이 없죠.” 
  
▲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가운데 김종인 더민주당 비대위원장등 지도부들이 9일 오전 경기도 파주 9사단 임진강대대를 찾아 현황을 청취했다. 임진강대대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부대이다. <사진제공=뉴시스>
- 그럼 김 대표 말에 공감하시는 건가요?
“아니죠. 김종인 위원장은 북한 체제 붕괴론을 얘기했잖아요.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말을 한 거죠. 그러나 북한 체제가 망하면 우리가 책임질 수 있냐고요. 콩고나 르완다 같은 무정부가 상태가 되면 그게 좋은 겁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담 후세인만 제거하면 3개월 이내에 안정될 것이라는 허황한 기대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방식을 우리가 답습해야 할까요? 그러면 한반도에 더 큰 비극이 올 수도 있죠, 이건 햇볕정책 수정론이 아니라 폐기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동의 못 합니다.” 
- 김 단장께서는 현 상황을 북풍 몰이로 규정하셨어요. 그러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북풍으로 활용하는 건지 아니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모정의 거래가 있었다고 보는 건가요?
“북한이 핵실험을 한 건 미국을 상대로 전략적인 판을 짠 건데 이걸 이용하는 건 남한 정부란 말입니다. 그게 북풍이죠. 모종의 거래는 없었지만, 북한은 항상 선거 때만 되면 위협적인 행동을 취해왔고 여당은 그걸 이용했어요. 말하자면 적대적 의존 관계죠. 선거가 끝나면 위기는 잦아들 것으로 봐요, 계속할 이유가 없잖아요.
지금 북한에 대한 극단적인 압박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확정되면 상당 부분 그 동력이 약화되어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안정되리라 봅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당장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너무 위기를 오래 끌어 우리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겁니다. 당장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이유 없이 치솟습니다. 아무 일을 안 해도 그렇습니다. 이걸 다 우려먹은 다음에 선거가 끝나면 안정기로 가는 패턴이 나올 겁니다. 혼자 과실을 따 먹는 것이지요.” 
“원유철 엉터리 안보론자…후보지로 평택 거론되자 사드 한마디도 못해”
-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샤드 배치 문제가 쟁점이에요. 김 단장께서는 샤드를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총선장사’라고 규정하셨더라고요. 그럼 정부는 샤드 배치 생각은 없다고 보세요?
“샤드 배치 생각은 있죠. 강정마을하고 똑같아요, 이명박 정부는 강정마을에 관심 없었어요, 근데 선거 때 갑자기 강정마을 공사를 진행한 거잖아요. 그걸 반대하는 야당을 색깔론으로 몰고 간 거예요. 그럼 그 이후는 어떻게 했냐면 선거 때 그렇게 해버렸기 때문에 공사는 진행되는 겁니다. 샤드도 선거용으로 썼지만, 그것을 배치하는 것으로 정책 결정을 하면 선거 이후엔 그대로 가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건 선거용으로 제기됐다고 해서 선거가 끝나면 전혀 없었던 일은 아니고 어느 정도 배치가 기정사실로 되는데 금방 배치는 못 해요. 준비가 안 됐거든요. 부지가 결정되고 시설을 지어야 하는 걸 따지게 되면 금방 배치될 무기는 아니에요. 그러면 선거 끝나고 해도 안 늦는데 전에 하려는 거잖아요. 그게 선거용이란 거죠.” 
- 샤드가 필요하긴 한가요?
“어떤 무기도 없는 것보단 나아요, 돌멩이나 막대기도 무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반도 안보에 큰 영향이 없다는 거죠. 북한은 미사일이 많아서 샤드로 막을 성격은 아니에요.” 
  
▲ 사드 레이더 위험반경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핵무장론을 주장하는데.
“한번 해 보라고 하십시오. 원유철 대표로 말하자면 샤드를 배치하는 데 앞장선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샤드 배치 후보지로 자신의 지역구인 평택이 거론되자 그 이후로 지역 내려가선 샤드 이야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신념이 엉터리 안보론자입니다. 핵 무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한복판에서 집권당 원내 대표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핵 무장하겠다”고 한 번 외쳐보라고 하죠. 절대 못 합니다. 단지 국내 보수언론과 종편의 카메라 앞에서만 합니다. 그러고 찌그러들 건데 저런 엉터리 논리에 우리가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지,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선거때 국정원 한 짓, 테러집단과 똑같아…주모자부터 솎아내야”
- 현재 국회는 북한 인권법이 추진되는데 우리 법이 북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2004년에 통과됐는데 그 후 북한 인권이 개선됐느냐면 더 악화됐습니다 그럼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다르냐면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우린 결과로 봐야죠, 인권이라는 건 우리가 얘기해서 북한 인권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인권이 개선되도록 조건을 만들고 설득을 해야 하는 겁니다. 결과에서 실패하면 인권에 관한 문제기 때문에 아무리 과정을 얘기해봤자 소용없어요. 그런 점에서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법이고 북한의 인권을 콕 집어서 얘기하는 정치 공세입니다.” 
- 대북 확성기는 어떻게 보세요?
“확성기는 북한엔 찰과상은 됩니다. 그러나 체제를 붕괴시킬 중상은 못 입혀요. 그리고 전방의 군부대에서 사정이 나아질 때 확성기 방송은 별 영향이 없는 데 사정이 나빠지면 영향을 받아요.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탈북이나 귀순 행렬로 이어진다는 건 한마디로 개소리입니다. 설령 몇 명 있다 쳐도 그거 하려고 많은 자원을 쓰나요?” 
  
▲ 박근혜 대통령(좌)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우) <사진제공=뉴시스>
- 테러방지법은 어떻게 보세요?
“박 대통령 표현대로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걸 아이스(IS)도 다 알고 있다’고 하는데 왜 국제사회에 광고하나요? 테러하라는 얘기와 같지 않습니까? 테러 예방에 대해서 국가테러대책위원회라는 게 총리실에 있어서 그걸 내실 있게 운영하면 됩니다. 이건 테러방지법을 위한 테러방지법이에요.
1997년에 북한 보고 선거 직전에 휴전선에서 총 몇 방 쏴달라고 부탁하던 안기부 핵심부서의 장이 지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습니다. 정말 테러방지가 중요하다면 간첩 증거를 조작하고 선거 때 인터넷에 댓글을 달던 못 된 습관과 북풍 공작의 주모자부터 말끔히 청소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테러방지입니다. 이건 너무 불안합니다. 선거 때 국정원이 한 짓을 보면 테러집단이나 하는 짓이 똑같습니다. 좌익효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정부에 비판적인 망치 부인의 딸을 강간하겠다고 한 놈입니다. 국민에겐 국정원이 테러집단인데 무슨 테러집단이 테러집단을 막아요?” 
- 마지막으로 <GO발뉴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일단 여러 가지로 정치가 어렵고 야권이 분리해요. 시민은 북한 뉴스에 압도되어 민생얘기를 할 틈도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는데 그렇다고 실망하지 마시고 날만 풀리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자가당착이 드러날 쯤이면 야권이 충분히 약진할 수 있고 민생과 민권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어요.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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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충격적 투신자살, 그가 '동포에게 드리는 글'


16.02.26 18:20l최종 업데이트 16.02.26 18:20l





나는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서 33년째 살고 있습니다. 1982년 9월, 서른 살 때 한국을 떠났는데,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강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생이었던 1980년 5월 15일, 전 서울역 '10만 전두환 타도' 학생시위대 속에 있었습니다. 5월 18일 새벽, 형사들에 의해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10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풀려나 집으로 가니 어머니께서 '사흘 전(5월 25일)에 후배가 널 찾아왔는데 네가 그리됐다 하니 여기서 쓴 편지를 봉투 안에 넣어 놓고 갔다'고 했습니다. 봉투 뒷면에 '김의기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봉투 속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들어 있어 사진부터 꺼내 보았습니다. 군인 세 명이 쓰러진 사람을 곤봉으로 때리는 장면, 피흘리며 쓰러진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군인, 얼굴에서 피흘리는 남자 목덜미를 군화발로 밟는 군인, 서너 명의 시체 주변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대여섯 명의 군인들, 한 청년의 가슴에 총검을 찌른 군인. 

서너 장의 사진이 더 있었으나 보지 않고 '도대체 이게 뭔가' 생각하며 편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다음은 그의 편지 내용입니다.

후배가 남긴 편지와 사진, 5.18의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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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의기 열사.
ⓒ 김의기열사추모사업회
"형, 오랜만이야.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려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 KUSA(한국유네스코학생회) 이번 여름 농촌활동 토의 전국 지역 간부모임 차 광주에 갔다가 우연히 5월 18일부터 23일까지 내가 광주의 참상(慘狀)을 목격하고 직접 찍은 사진들의 일부야. 그 군인들은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남녀노소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때리고 차고 찌르고.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어. 마치 정신병자들 같았어.

급기야 21일에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기 난사를 자행했어. 눈물 때문에 사진 못찍고 사진기 옆에 놓고 펑펑 울었어. 거리는 피바다, 비명과 아수리장. 난 지금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형이 그 장면을 목격했더라면 아마 기절했을 거야. 난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 언론 매체는 한 군데도 없어. '북의 지령을 받아 시위를 하는 거고 죽어가는 자들이 다 폭도며 남파 공작원들'이라 떠들고 있어... 

나라도 서울 시민들에게 알려야 것 같아서, 24일 서울로 올라와서 사진 현상하고 전단지 초고를 만들자마자 형에게 달려 온 거야. 형의 조언 듣고 수정하고 많은 얘기 나누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형과 나를 연결한 연극이 고맙고, 형이 연극할 때 만나 나눈 우리들의 시간이 그래도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어떤 누구도 형만큼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준 사람은 없었어... 형을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5월 25일, 형과 이 나라 걱정하는 의기가." 

또 한 장의 종이는 그가 쓴 전단지 초고였습니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고 하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 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 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공기가 유신 잔당들의 악랄한 언론 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년 동안 살벌한 총검 아래 갖은 압제와 만행을 자행하던 박 유신 정권은 그 수괴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으나, 그 잔당들에 의해 더욱 가혹한 탄압과 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년동안 허위적 통계 숫자와 사이비 경제 이론으로 민중의 생활을 도탄에 몰아 넣은 결과를,우리는 지금 일부 돈 가진 자와 권력 가진 자를 제외한 온 민중이 받는 생존권의 위협이라는 것으로 똑똑히 보고있다.

유신 잔당들은 이제 그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자유 시민으로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살 것인가? 또다시 치욕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상이 될것인가?

동포여, 일어나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라! 우리의 힘을 모아 싸워 역사를 정방향에 서게 하자.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동포여, 일어나라! 유신 잔당의 마지막 숨통에 결정적 철퇴를 가하자. 

일어나라! 동포여!

매일 정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바쳐 싸우라! 동포여!"

눈에 눈물이 고이고 숨이 막혔습니다. 이건 초고가 아니라 '완벽한 글'이었습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사진과 편지, 전단지 초고를 다시 봉투에 넣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와 뒷 동네 약간 언덕 진공터로 올라가 나무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생각해 봤습니다. 4년 전 내가 복학하고 연극반 반장이 된 뒤 연출한 연극(셰익스피어의 <실수 연발>)에 비중이 작은 역에 출연했던 무역학과 1학년생 의기. 그는 그 후 연극반이 아닌 한국유네스코학생회(KUSA)에 들어가 활동했습니다.

의기는 내가 연출하거나 출연한 연극엔 빠짐없이 찾아와 관람한 후 그날 본 연극 비판은 물론이고 그가 속한 유네스코 학생회의 활동을 열렬히 피력하였습니다. 활동 중 그가 가장 좋아한 건 농촌 활동이라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전 숀 오케이시(Seán O'Casey)의 <쥬노와 공작> 공연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그에게서 학생 운동에 더욱 깊이 참여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3년 전의 의기가 아니라, 마치 이 나라의 병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의사 같았습니다.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을 하겠다'던 나였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연극을 생활비 마련의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나에 비해, 그의 사회 인식은 깊고 넓었습니다. 하고자 하는 목표(졸업 후 농사를 지으며 유신 독재 체제의 고도의 산업화 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받은 농민들의 권리를 찾는 농민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도 뚜렷하여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끝내 사망한 후배, 난 한국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난 그가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지만, 그가 지금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 보아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녔다는 형제 교회를 수소문해서 찾아보았으나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걷다가 철학도인 대학 친구를 찾아가 사진과 전단지를 보여줬습니다. 

세 번째 사진부턴 그의 얼굴이 심각해졌습니다. 사진을 다 보고 전단지를 읽고 난 뒤 한숨을 크게 쉬더니 소주병 마개를 돌려 열고 소주를 자기 잔, 내 잔에 따르고 자기 잔을 들이키고 그 잔에 소주를 따라 또 마셨습니다. 그러더니 말을 꺼냈습니다.

"전두환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고, 그 후배가 그사이에 전단 복사해서 이미 살포했다면 그도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건데. 그 둘의 차이는 이거야. 전두환은 살고, 네 후배는 죽는다는 거야." 

나도 술을 들이켜고 말했습니다.

"살포하기 전에 막아야 되는데, 이 편지 쓴 지가 사흘이 지났으니 벌써 일을 끝내고 잡혀간 건 아닐까?"
"잡혔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지."
"잘 되다니?"
"죽음은 유보됐으니까. 그렇지 않고 도망을 쳤다면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죽거나 둘 중의 하나야."
"자살? 절대 그 친군 자살할 친구가 아니야. 삶의 목표가 뚜렷한 친구거든."
"그 친구는 쫓기다 절벽에 도달하면 그대로 뛰어내릴 거야. 내 보아하니 붙잡혀 구차하게 살아갈 친구가 아닌 것 같아."

그의 말이 맞지 않기를 난 바랐다. 내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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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5월 19일 금남로에서 진압 군인이 시민을 진압봉으로 폭행하는 모습.
ⓒ 연합뉴스

"난 그의 사진 뒷면의 날짜를 보고 생각했어. 5월 18일 사진을 보면 계엄군에게 맞고 칼에 찔리는 사람들은 학생 시위대가 아닌 일반 행인들이야. 그럼 이게 뭘 뜻하는 걸까?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자극해 급기야 광주 시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도록 한 거야. 5월 21일자 사진을 봐. 총 맞아 쓰러진 사람들과 그 뒤에 엄청난 수의 시위대를. 그들은그냥 평범한 광주시민들이야.

총을 쏴 그들이 무기를 들도록 자극한 거야. 전두환은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고. 그들의 감정을 자극해 폭도로 만든 거지. 전두환은 12.12부터 시작된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학생들을 끌어들인 거야. 

전두환과 그의 추종세력은 돈으로 매수한 논객들로 하여금 마치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전국의 학생 시위가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그 학생 지도부와 수많은 민주 인사가 북한의 사주를 받았고 이는 실로 '북한에 남침의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 안보가 심히 위태로운 비상사태로 치닫고 있다고 신문 사설에 매일같이 쓰게 하고. 순진한 국민은 또 그 글을 믿고. 마침내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선포한 거야. 이젠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박통 시대로 돌아가는 건가?"

그가 답했습니다.

"네 가지 경우가 있겠지. 첫째, 입 닥치고 아무 일 없는 듯이 옛날처럼 노예임을 자각 못 하고 산다. 둘째, 세력 가진 자와 금력 있는 자와 그들에 붙은 기생자는 배를 두드리며 무지한 국민을 지배하며 산다. 셋째, 이 나라를 떠난다. 넷째, 자네 후배처럼 운동하다 산화한다. 난 셋째 경우를 택하겠어. 너는?"

내가 답했습니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우린 그 뒤에도 많은 얘기를 한 것 같았습니다. 술이 약한 난 그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의 표현을 빌리면 '어느 순간 갑자기 기절했다' 합니다. 다음날 간신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술탓인지 모르겠지만 온 몸이 아파 이틀을 드러누웠습니다. 31일 아침 어머니가 날 깨우시며 '여기 왔던 후배가 자살했다'며 신문을 보라 말하셨습니다.

신문기사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모학교 대학생 김의기씨가 5월 30일 오후 5시경 종로 5가 기독회관 6층에서 현 시국 비판 전단지를 살포하고 투신 자살하였는데 살포된 전단지는 계엄군이 모두 회수하여 전단지의 내용은 알 수가 없다"고. 

내 친구의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자살이 아니라 사실상 죽임을 당한 셈입니다. 나는 그날 한국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고 2년 후에 정말 한국을 떠났습니다. 김의기는 후에 '열사'로 추대되어 광주 5.18묘지에 안장됐습니다.

역사 퇴행 막으려면 '국정원 강화법'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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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6.2.24
ⓒ 연합뉴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는가 하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킬지도 모를 '테러방지법'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국정원에 의해 어쩌면 또 다른 김의기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온 국민이 일어나 이름만 '테러방지법'일뿐 실제로는 '국정원 강화법'인 법안 통과를 막아야 합니다. 야당(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이 필리버스터로 입법을 지연시키고 있긴 하지만 약간의 절충으로 테러방지법은 국회에서 통과될 것처럼 보입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으로 하여금 모든 비판세력의 입을 틀어 막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것은 아닐까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55년 전으로 돌아가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김의기 열사의 <동포에게 드리는 글>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나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