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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5일 화요일

빼앗긴 뉴욕의 들에도 봄이 오길……


2020-05-06 08:56수정 :2020-05-06 09:54



이른 아침 우리강아지 샤샤와 공동체숲길을 산책하는데 조그마한 아이들 몇명이서 열심히 무언가 나르는 것이 보입니다. “여기서 뭐하니?” “Eater Garden(부활의정원)을 만드는거예요.”
가만히보니 아이들 아빠도 저만치 떨어져 아이들과 함께 돌을 나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바위로 돌무덤도 만들고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옆에 꽂고 무덤 주위에 수선화꽃도 심고 자갈로 예쁜길도 만들었습니다. 돌무덤옆에 흐르는 시냇물주위엔 벚꽃과 개나리가지를 꽂았습니다. 우리도 하빈이, 유빈이 어릴때 함께 숲에서 만들었던것을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숲속으로 계속 걷다보니 여기저기 또다른 부활의 정원이 보입니다. 어떤곳은 나무를 잘라 돌무덤입구에 덮기도하고, 또어떤곳은 돌무덤길에 나뭇가지로 일일이 난간까지 엮어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은 학교에서 주로 부활의 정원을 만들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학교도 문을 닫자 공동체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나가 만들고있습니다. 조그마한 고사리손으로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정원을 보면서 마음에 잔잔한 기쁨이 몰려옵니다. 코로나로 밖에도 못나가고 집에만 있어야만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때 이 안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3월초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되면서 온세상이 정지된 것 같고, 전쟁을 안겪은 우리 세대들이 마치 전쟁을 겪는 것 같습니다. 2차대전을 지나온 나이드신 할아버지들께서는 그래도 그때는 밖에 마음대로 돌아다녔다며 혀를 차십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싶더니 얼었던 대지에서 여기저기 푸른잎을 내며 크로커스로 시작해 이제는 목련, 벚꽃, 복숭아꽃으로 주변을 환하게 만들고 나무들도싱그러운 연두빛으로 색을 입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듯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지난달초만하더라도 한국에 급속하게 코로나바이러스확진자가 늘어나자 많은 형제자매들이 한국을 걱정하며 저희에게 가족들은 괜찮은지 한국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격려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한국에 있는 많은 분들이 뉴욕을 생각하며 우리에게 격려의 말을 전해옵니다.

한달전 공동체풍경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공동체온식구가 함께하던 식사도 없어져 각자 집에서 먹고, 매일 저녁에 모이던 예배도 멈추어 전화 컨퍼런스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곳에 들어오면 무엇보다도 나이드신 분들께 치명타라 그분들을 한 건물에 따로 모시어 돌보는 자매들과 함께 거주하게 하고 밖에 산책하러 나가시는것 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접촉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고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공동체내에서는 확진자가 없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식사를 만드는 것과, 세탁실을 운영하는 것, 외부사람과 접촉하는 것 등은 젊은 청년들이 도맡아 공동체 가족 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운영하던 마운트고등학교도 문을 닫았습니다. 하빈이는 2년전 한국을 방문시 사촌형이 다니는 회사에서 로봇 만든 것을 동영상으로 본뒤 영향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 작년부터 마운트고등학교에서 공동체컴퓨터를 총괄하는형제와 함께 로보틱클럽을 만들어 벡스(VEX) 로보틱스경연대회를 참가해왔습니다. 하빈이는 코딩을 스스로 공부해 로봇을 만들고, 다른 친구들은 리모컨을 작동해 로봇을 움직이는걸 해왔는데 하빈이도 친구들도 생전 처음해보는 것이라 리모컨작동도 제대로 못해 지난해 대회에 나갔을때 끝에서 두번째가 되는 영광(?)을 차지 하더니 여러 노력 끝에 결국은 지역예선을 통과해 뉴욕주 챔피언십에 나가는 좋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올해는 이스라엘에서 교환학생으로온 클럽후배 마리완에게 코딩도 열심히 가르치고, 더욱 분발하더니 지역예선은 물론 뉴욕주챔피언쉽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4월말 켄터키주에서 열리는 VEX 로봇월드챔피언십의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VEX 대회는 나사, MIT, 노스롭, 그룸맨등 쟁쟁한 대학, 기업에서 후원을 하고있습니다. 하빈이는 올해 고등학교졸업반으로 켄터키로 가는 VEX 로봇월드챔피언십을꿈꾸며 한창 좋아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대회가 취소되면서 정말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메이플릿지 학교도 문을 닫아 아이들은 집에서 오전에는 홈스쿨링으로 숙제를 하고 오후에는부모들과 밖으로 나가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합니다. 우리와 한집에 사는 피터네 가족은 열심히 거름을 계속 날라 스티브할아버지가 가꾸는 라즈베리와 블루베리 밭에 뿌려줍니다. 내 친구 어니네 가족은 아들셋을 데리고 공동체 여기저기를 다니며 열심히 잔디를 깎습니다. 오늘은 내가 가꾸는 배나무밭 주변을 아주 깔끔하게 잔디를 깎아주어 가을에 배가 열리면 하나씩 주겠다고하니 아주 좋아라합니다. 마우네 가족은 길가에 나 있는 잡초를 열심히 뽑아 길이 아주 반듯하고 깔끔해졌습니다. 한쪽에선 통나무를 쌓아 놓아 아이들이 시간이 날때마다 열심히 장작을 팹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여기저기서 텃밭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우리집 아래층에 사는유빈이보다 한살어린 루우벤은 아침에 눈만뜨면 밭에나가 땅을 일구고, 거름을 나르고, 밭주변을 나무판자로 박아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벌써 상추며, 딸기, 루밥, 라즈베리등을 심고 토마토심을 땅도 만들어놨습니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텃밭근처를 왔다갔다하며 물도주고 열심히 일하는루우벤을 보니 입이 딱 벌어지며 기특하기만해 “루우벤좀봐라! 정말 ‘Amazing’ 하지않니?” 유빈이에게 물으니 “루우벤은 같이 놀 형제가 없어 심심해서 그래요. 같이 놀 형제가 있으면 절대 안할걸.”하며 놀리듯 답합니다. 사실 루우벤은 5명의 자매를 가진 외아들입니다. 그래도 내가보기엔 정말 밭일을 즐기는 것 같은데……

우리 가족도 텃밭에 무와 배추씨를 심었습니다. 유빈이는 어릴 때는 김치에 손도 안되더니 요즈음엔 아삭거리며 맛있다고 식탁에 올려놓기 무섭게 하빈이와 함께 다 먹어버려 김치가 동이 난지오래입니다. 고춧가루도 다 떨어져 고추 모종도 내고있습니다.

하루는 오후에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토끼가 아기토끼를 등에 업고 있는 그림이 우리의 이름과 함께 식탁에 놓여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캐서린이 갖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격려하기위해 하루종일 열심히 색칠했을 어린캐서린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왔습니다. 아내가 작은초콜릿과함께 고맙다는인사카드를 캐서린 메일함에 넣었더니 지나가면서 고맙다고합니다. 나도고맙다고하니 싱긋이 웃고가는 것이 참 귀엽습니다.

유빈이는 저와 함께 낚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하루는 마을 연못에서 송어를 잡았습니다. 잡은송어의 내장을 빼고, 랜디할아버지에게 갖다드리면서 송어속에 로즈마리, 타임, 마늘, 레몬주스, 소금, 후추를 뿌리고, 올리브오일을 발라 높은 온도에서 오븐에 구우라고 하빈이가 요리비 법을귀띔해 줍니다. 송어를 요리한 자매가 이틀 후면 할아버지 생신이라며 아주 맛있게 잘드셨다고해서 유빈이도, 하빈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랜디할아버지는 하빈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여러문제와 갈등 속에 있자, 따뜻하고 깊은 마음으로 하빈이를 이해하시며 많 은대화로 하빈이를 격려하시고, 우리부부에게도 자신의 아들은 하빈이보다 더했다며 늘 격려해주시던 분이라 마음 속에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빈이는 몇해전에 아내와 함께 도자기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정원안에 파란 유리 구슬을넣어 가마에 구우니 한쪽에 파란물이 고여 있는 것 같은 작은 연못이생겼습니다. 토끼와, 오리, 병아리와 작은 꽃을 꽂을 수있는 나무트렁크도 만들어구었습니다. 아내는 숲에서 이끼와, 작은소나무, 제비꽃 등을 캐와 유빈이가 만든 도자기 정원에 작은 이끼정원을 만들어 몸이 아파서 밖으로 자주 못나오시는 린다할머니에게 작은격려카드와 함께 할머니 집문 앞에 놓고 오니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하십니다.


해마다 부활절 아침이면 브라스밴드 나팔소리를 들으며 식당에 가로비에 청년들이 만든 부활의정원에 모여서로 인사하며 모두 다같이 식당안으로 들어가면 각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멋진테이블이 있었는데 올해는코로나바이러스로 공동체 온식구가 함께하는부활절 아침식사가없고 각자집에서 식탁을 차리고 전화로 예배를 드리며 식사를 하기에 뭔가 아쉬움만이 남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많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엄마토끼, 아빠토끼, 소년토끼, 소녀토끼, 아기토끼등이 그려져있는 이름카드를 만들기 시작해 한가족, 한가족에게 보내다보니, 이가족도 필요할것같고, 저가족도 필요할것같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격려가 필요하니 봄꽃으로 장식된 이름카드도 만들어보내고…… 그러다보니 공동체전체가 이름카드를 갖게 되었네요. 많은 분들이 부활절 아침식사에 이름카드를 사용하면서 너무나도 좋아하니 저도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우리가족에게 도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사용해오던 피크닉 장소가 옆집과 너무도 가까워서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숲에 가서 사용하자니 여름 땡볕에 숲까지가는 것이 귀찮아 질 것 같고, 집에서 먹자니 후덥지근하고 답답할 것 같고, 새로 만들자니 엄두가 안나 몇주간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빈이는 새로 만드는 것이 힘든 일인지 아는지라 그냥집에서 먹자고 하고 만들기 싫어하더니 옆집에 피크닉 장소에 친구랑 앉아 이야기하다 그집 아빠한테 사회적거리두기 차원에서 다시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는 우리도 새로 만들자고합니다.

복분자를 심어놓은 우리 텃밭 옆에 만들기로 했는데 장소가 기울어 아이들이 숲에서 바위들을 주워다 담을 쌓고 그속에 바위와 자갈들로 채워 평평하게 터를 닦았습니다. 유빈이는 작은 트랙터모는 재미로 열심히 날라다줍니다. 한 형제가 켜놓은 소나무 재목들을 실어다 땅을 파 기둥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기둥이 너무 무거워 감당이 안돼 작은 사이즈로 하려하니 하빈이가 이왕하는거니 튼튼해야한다며 가로세로 5인치 되는무거운 기둥으로 세우는데 판 구멍이 작아 무거운기 둥을 다시 꺼내파는 등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골격을 만들었습니다. 다음날 소나무판자로 지붕을 덮으니 제법그 럴싸하게 됐네요. 아이들은 만드는 동안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나중에는 자기들이 만든 것이 자랑스러운지 뿌듯 해 하며 함께 사이좋게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소시지를 구워먹는 동안 나는 몸이 여기저기욱신거리며 너무 아파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쉽게 뚝딱뚝딱 잘도만드는 것 같던데 참 쉽지 않네요.

다음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만끽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잘 안보이도록 화살촉 나무를 옮겨심어 경계를 삼고, 옆에는 나팔꽃씨를 뿌려 나팔꽃이 실을 타고 올라가 햇빛을 가려 그늘을 만들도록했습니다. 정면으로는 한국에 있는 아내의 친정식구들이 보내 주신 대나무발을 걸어 햇빛을 막으면서도 산이 보이는 전망이 가리지않도록하고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꽃을 심을 화단도 만들어놓아 어느정도 피크닉장소가 완성이 되었네요. 지나가던 형제들이 보면서 멋있다고 한마디씩합니다. 스티브할아버지는 “이게 박가족만 위한 것이냐, 다른 사람도 사용가능하냐”고 짓궂게 묻자, 하빈이가 “사회적거리만 지킨다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어요.”하며 재치있게 대답하자할아버지가 그거 정말 중요하다며 껄껄껄웃으십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여러많은것을바꾸어놓았지만무엇보다아쉬운것은형제들과의교제입니다. 매일밤낮으로함께일하며, 웃고, 울며마음을나누고한목소리로찬양하던것이한없이그리워집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인한 격리생활이 시작되기 전 내친구 데릭과 같이 먹으려 삼겹살을 어렵게 구해놨는데(데릭은한국삼겹살의‘왕팬’입니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어 하빈이 생일날 우리가족만 먹으면서 데릭에게 문자를 보내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나면 한달내내 함께 삼겹살 먹자고 했더니 “아멘”하며 답이왔습니다. 그래도 데릭은 내가 보고 싶으면 한살 반된 딸케이틀린을 왜건에 태워우리집 주위를 산책하며 얼굴이라도보고 싶다며 부릅니다. 내가 달려가면(물론사회적거리를유지합니다.) 케이틀린은 방긋방긋 웃으며 한국말로 “아빠친구! 아빠친구!”합니다. 그동안 열심히한국말 가르친 보람이 있네요.

세탁소를 지나 식당으로가다보면 신나는 음악소리가 몇초간 흘러나오는데 밖에 못나오시는 발러리 할머니께서 창가로 지나가는 형제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공동체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허드슨강가집에 건강상 격리되어 계신 이안 할아버지는수시로 내게 전화해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지, 아이들은 괜찮은지 소식을 물으면서 저를 격려하십니다. 오히려 할아버지께서 많은 격려가 필요할 것 같은 데말입니다. 지난주일에는 특별히 우리가족을 강가로 초대해주셔서 서로 멀찌감치 띄어앉아 할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브라우니 케잌도 함께맛있게 먹고 두분과 함께 따뜻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할아버지는 허드슨 강가 주변 잔나뭇가지들을 주워 태우고 청소하면서 주변을 아주 깨끗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강가에서의 생활이 나쁘지는 않지만 형제자매들이 그립고,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그립다고 하시네요.

할아버지와 대화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생각해봅니다. 사랑과정성으로 만들어진밥상에 모여앉아 함께 먹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아이들자라는이야기,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서로알아가고, 저녁이면 마을가족들이 모여 마음을 다해노래도 부르고, 형제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같이 길을 찾아가고, 모임이 끝나면서로 눈을보고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던 시간들이 한없이 그리워집니다.

한달전 공동체에서 운영하던 가구공장도 문을 닫으면서, 이곳에 있는 많은 형제, 자매들도 우리가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중 저희 공동체에서는 얼마전부터 마스크와의료보호캡, 의료용침대프레임, 관을 만들어 지역사회에 보내고있습니다. 제 아내는 오전에는 아이들과 집에 있고, 오후에는 마스크를 만듭니다. 하빈이도 친구들과 함께 자매들이 만든마스크를 살균기에 넣어 소독하고 포장 해 배송하는 일을 돕고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에서는 이곳 청년 둘을 사마리탄퍼스국제구호기구에 보내 맨해튼 근처에 임시병동 짓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벌써 뉴욕주만 확진자수가 27만명을 넘었습니다. 젊은 자매 몇몇도 지역병원과, 노인요양소에 파견 해 돕고 있는데 한 자매가 돕고있는 요양소에서는 하루에도 몇십명씩 돌아가십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하시는 노인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기도하고 노래를 불러드리니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전에 그 자매의 손을 꽉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찡해 오면서아파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계란으로 거대한 바위를 치듯 작은 일들이지만 어떤사람에게는 희망이기를 바라며 코로나로 빼앗긴 뉴욕의 들에도 봄이 오길 소원해봅니다.

미국 브루더호프공동체의 박성훈님의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943751.html#csidxfd08a194fce6d41afda46430ee9db01 

2020년 5월 4일 월요일

이 재미있는 지옥에서 사는 재미가 어떤교


등록 :2020-05-05 09:15수정 :2020-05-05 09:25


“형제들이 적어도 셋은 되어야 해.” 생전에 아버지는 늘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둘이 싸울 때 가운데서 말리고 화해시킬 또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아버지는 지론대로 나와 여동생, 남동생 셋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세 형제가 서로 존중하며 잘 지내라는 당신 뜻과는 달리 ‘잘난’ 맏이의 압도적인 독재로 다른 두 동생은 언감생심 형에게 달려들 생각을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나도 가끔 아쉬울 때가 있어서 막내에게 여동생과의 중재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총선이 끝났습니다. 의원정수 총 300석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 미래통합당이 103석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정의당, 무소속등 겨우 17석뿐이어서, 둘이 싸울 때 가운데서 말리고 타협안을 낼만한 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덩치 큰 두 당이 죽어라 싸우면 국민들도 둘로 갈려 죽자사자 싸우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됩니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자 투표만을 기준으로 보면 전체 유권자의 50퍼센트가 민주당을, 40퍼센트가 통합당을, 10퍼센트가 정의당을 지지했습니다. 이런 유권자들 뜻을 제대로 국정에 반영하려면 민주당이 150석, 통합당이 120석, 정의당이 30석쯤 가져갔어야 합니다. 그리되었더라면 아버지 말씀마따나 삼형제가 잘 지냈으려나? 그런데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도로 수도권에서 통합당을 지지한 표들이나 영남지역 민주당 표들은 모두 죽은 표가 된 거죠. 그래서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도가 민주주의의 핵심인데도 이를 죽어라 반대만 한 정당은 제 발등 제가 찍은 겁니다.

엊그제 도봉산을 오르는데 코로나 덕에 대기가 맑아 하늘은 그지없이 푸르고, 드문드문 하얀 흰 구름 흘러가고, 건너편 능선이며 계곡을 가득 덮은 연두빛 나뭇잎 물결이 바람 따라 흔들리며 군무를 추더군요. 하늘, 산, 구름, 연두빛 물결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나’. 그 순간 그저 모두가 한 몸이었더랬습니다.

절 초입 돌기둥에 새긴 글귀 그대로였습니다. “천지동근(天地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라. 하늘과 땅이 한 뿌리에서 났고 만물이 한 덩이라. 불교 화엄사상인데 ‘우리 모두 하느님 내신 한 형제’라는 예수님 가르침과 똑같지요.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한 뿌리이긴 하겠으나, 이 세상에 제각각 다른 몸으로 나오면서 얼굴도, 생각도, 성격도 다 달라지니 여기서부터 ‘재밌는 지옥’이 시작되는 거지요. 요즘 마당에 한창 노란 꽃대가 올라오는 보리뺑이들을 두고 노모와 나는 전쟁을 벌입니다. 노모는 잡초들이 너무 기승이라고 꽃대를 댕강댕강 자르고 나는 왜 보기 좋은데 그냥 좀 놔 두시라 다툽니다. 제일 가까운 모자지간이 이럴진댄 ‘수구보수’ 와 ‘진보좌빨’들이 서로 벌이는 전투의 처참함이야 말해 무삼하겠나요. 오늘 아침 서초동 법원 앞을 지나는데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더군요. “나 민주당 안 찍었다. 경제 망치면 너 네들이 책임져라” 저 소리없는 아우성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얼마나 속상하면 저럴까’ 그 속내는 이해가 갔습니다. 정말 이 세상은 얼마나 재밌는 지옥인가요.

우리 모두 한 뿌리 한 몸이라 가르치는, 으뜸(宗) 가르침(敎)이라는 종교도 그랬지요. 깨침이 단박에 오는 것인지, 아니면 꾸준히 수행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지를 두고 최고 선사(禪師)인 당나라 혜능스님부터 우리 성철스님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우리 마음 본바탕은 본래 여러 분별에 휘둘리지 않고 청정한 데 이걸 알아보는 게 깨침입니다. 그런데 분별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을 깨달아 아는 방법을 둘러싸고 다시 깨쳤느니, 못 깨쳤느니 분별하며 목숨 걸고 싸운 겁니다. 단박에 깨침을 주장했던 혜능은 꾸준한 수행을 주창한 신수스님 제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할까 보아 한 밤중에 나룻배 타고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이런 혜능을 내세워 성철스님은 우리나라 선(禪)의 시조격인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돈오점수를 가르쳤다며 힐난하고 그 책을 일체 못 보게 했더군요.

기독교는 불교보다 몇 갑절 더했지요. 2천년 역사에 교리 다툼이나 전쟁으로 죽고 감옥 간 사람들이 도대체 그 얼마던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한 형제입니다. 하지만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이 ‘제각각’들의 ‘이익’과 ‘생각’을 합리적으로 잘 조정해 내는 게 바로 정치입니다. 그리고 이 제각각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흑백 딱 둘로 나누어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을 기준으로 우리 편의 ‘이익’과 ‘생각’을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좀 거창한 표현으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왔습니다.

부디 이번 선거에서 배가 부른 맏이는 아량을 베풀어서 동생들 말도 좀 들어주고 틀린 소리해도 잘 도닥이며 감싸 안고 갈지어다.

<공동선 2020. 5. 6월호>에도 실린 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의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943646.html#csidx15167d7c7f7a1e7b2c2de4ae25ae954 

2020년 5월 3일 일요일

99% 사망했다는 ‘김정은’ 살아 돌아오니, 오히려 정부 탓하는 ‘통합당’

여전히 검증 없는 언론의 북한 뉴스
임병도 | 2020-05-04 09:02:44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99% 사망했다는 김정은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5월 1일 탈북자 출신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99% 확신한다”고 주장했습니다.
4월 28일 태영호 통합당 당선인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며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5월 2일 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은 위원장의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영상을 공개하면서 가짜뉴스로 드러났습니다.
‘김정은이 99% 사망했다’고 주장했던 지성호 당선인은 김 위원장이 건재한 영상까지 나왔지만 “아직은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 당선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켜보시면 될 것 같다. 진실이 가려질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라며 여전히 자신이 주장했던 ‘99% 김정은 사망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통합당, 정부가 오히려 잘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나오자 통합당은 오히려 정부를 질타하는 논평을 냈다 ⓒ통합당 홈페이지 화면 캡처
5월 2일 김성원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오히려 정부를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김 대변인은 “그동안 국내외에서 제기된 다양한 분석과 추측, 그리고 증시하락 등 경제에 미친 영향은 우리가 얼마나 북한리스크에 취약한지를 방증했다”라며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들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며, 반복되는 북한리스크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도 나서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 ‘99% 사망설’을 제기한 사람들은 모두 탈북자 출신 통합당 인사들입니다. 21대 총선에서 태영호는 ‘미래통합당’ 지역구 후보로 지성호는 통합당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당선됐습니다. 이들이 국회의원 당선인이라는 신분으로 말했던 발언들은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 둔갑해 언론과 극우 유튜브 채널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습니다.
청와대는 4월 21일 “북한에 특이동향은 없었다”라며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부인해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극우 유튜브채널 등은 오히려 정부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탈북자 출신 정치인들이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언론이 받아쓰기를 하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통합당 대변인은 가짜뉴스를 주장했던 당사자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진실을 말했던 정부를 질타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전히 검증 없는 언론의 북한 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모습을 보였지만, 언론은 ‘건강 이상설’을 계속 제기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5월 4일 NK뉴스를 인용해 “김정은 오른 손목의 점, 심장 시술·검진 흔적일 수도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NK뉴스가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이 이상하다고 보도한 근거는 영상에 나온 작은 점입니다.
이 점이 심장 관련 시술이나 검진 과정에서 나온 흔적인지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아무런 검증 없이 당당히 보도합니다. 김정은 사망설 보도처럼 ‘아니면 말고식 보도’ 행태입니다. (관련기사: “김정은 위원장 위독설의 근거는 한국언론? 쏟아지는 북한 오보들”)
태영호, 지성호 당선인들은 앞으로 4년 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언론이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기보다는 철저히 검증을 하고 보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33 

한국 언론이 '美 코로나 위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세 가지

[기고] 코로나 위기 속 질문은 '누가 왜 더 죽는가?'가 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COVID-19)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에서 확산된 이 감염병은 중동 유럽과 미주를 거쳐 이제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그 세를 뻗치고 있다.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우리네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팬데믹(pandemic)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국의 상황은 신문 방송을 비롯한 국내 주요매체에 매일 빠짐없이 소개되고 분석되고 있다. 그 덕에 한국의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걱정스러운 안부를 물어오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보도의 한계로 인해 오해가 생기거나 잘못된 우려, 또는 역으로 잘못된 기대가 일어난다. 무엇보다 엄중한 위기를 겪으며 고민해봐야 할 주제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세 가지를 짚어보고 싶다. 
 
 
▲ 코로나19 위기 속에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이 뉴욕 의회 인근 식품유통센터에 줄 서 있다. ⓒAFP=연합

트럼프가 다가 아니다

 
미국의 대응에 관해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다수의 매체가 지적하듯이 트럼프 행정부의 실기와 오판이 이번 재난 대응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 것은 분명하다. <워싱턴 포스트> 등의 취재에 따르면 이미 월에 백악관과 행정부 내에서 여러 차례 경고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3월 중순에서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했지만, 이후에도 연방정부가 전국적 수준의 방역전략을 이끈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기조는 단계적 제한완화 조치를 발표한 월 중순에 이르러서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대(對) 언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그의 실수는 두드러졌다. 

일례로 코로나바이러스 태스크포스 팀의 전문가들이 통상 배석하는 백악관 브리핑에서 대통령과 전문가 간 불협화음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는 지난달 23일 브리핑에서 불거진 이른바 '살균제 체내 주입' 논란으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원인을 온전히 트럼프 일인에게 돌린다면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을 간과하게 된다. 코로나19는 계절성 독감에 비해 기초감염재생산지수(Ro)가 높고 무증상 감염까지 있어 어느 정부든 결코 다루기 쉽지 않다. 이러한 감염병에 대처하려면 정부가 취하는 전략이 두 가지 차원에서 모두 원활히 작동해야 한다. 첫째는 방역이다 이를 위해 국경 관리 사회적 거리두기 자택대피령이 내려지고 대규모 검사, 접촉자 동선 추적 및 확진자 격리와 같은 광범위한 역학적 조처가 요구된다. 둘째, 진료체계의 수립이다. 필요한 의료 인력과 자원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일이 그 핵심 과제다. 물론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초기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국가라도 의료체계 역량이 초과하는 사태를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선진국들이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그 증거다. 

먼저 미국이 연방제 국가라는 점을 충분히 환기해 두자. 이를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 -이 마저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각 주는 고유한 정치적 배경과 제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국 공통으로 적용되는 연방제도조차 각자의 사정에 맞게 변용할 수도 있다. 이는 보건의료체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말하자면 미국에는 '50개의 서로 다른 공중보건체계'가 존재한다.(Pacewicz 2020; Shana 2013) 연방주의가 코로나19의 대응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그러나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볼 때 1차 의료(primary care) 인프라에 대한 저투자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Jabbarpour et al. 2019) '방역의 최전선'으로서 1차 의료는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기초적인 의료 상담과 진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Blumenthal and Seervai 2020) 이러한 문지기(gatekeeper) 역할이 잘 수행된다면 초기 대응에 크게 기여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무작정 병원으로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짧은 시간에 보건의료체계의 역량이 초과하는 사태를 방지할 뿐 아니라 추가적인 집단 감염을 막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취약한 미국의 1차 의료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그런 문지기가 되지 못했다.

미국 보건의료체계의 고유한 특성 역시 재난에 대응하는 데 많은 난점을 야기한다. 진료체계의 관점에서 두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 미국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운영하고 공급하는 과정에서 민간 부문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와 민간 부문이 협력해 의료자원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혹자는 관내의 모든 의료기관 (공공과 민간 병원의) 운영을 통합·일원화해서 
사태에 대처하고 있는 뉴욕 주의 상황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는 오히려 위기가 강제한 예외로 3월 말이 되어서야 계획이 발표됐다.

(New York State 2020a; 2020b; Scott 2020) 둘째, 미국은 서구 선진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보편적 건강보장(UHC) 제도가 없는 나라다.1) 이른바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ACA)가 시행된 이후에도 여전히 약 3000만 명이 어떤 형태의 건강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비보험자로 남아있다. 이들은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없다. 또한 보험이 있더라도 보장 범위가 취약해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계층(under-insured)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구호법(CARES Act)이 지난 3월 말에 발효됐지만, 구체적인 각론에 관해서는 여러 모순과 제약이 발견되고 있다.(Abrams 2020; Rodriguez 2020) 요컨대 이른바 '트럼프 요인'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미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다.

뉴욕이 다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국내 언론의 관심은 어느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지에 쏠렸다. 뉴욕 주, 그 가운데서도 뉴욕시(NYC)의 상황이 연일 크게 보도됐다 물론 피해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조명하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추가적인 보도를 통해 일종의 선택편향(selection bias)을 보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을 과도하게 해석하게 되고 결국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미 전역의 코로나19 추이는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주마다 대응 전략이나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연방주의의 효과를 생각해보자.) 사태의 초기조건 - 예컨대 확진자가 최초에 언제 얼마나 발생했는지 여부- 이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다. 그러니 뉴욕이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뉴스를 듣고서, 다른 지역도, 또는 미국 전체도, 그러리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일 주 정부가 확진자 수 데이터를 연방정부에 보고한다.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이를 취합해 업데이트된 미국 전체 데이터를 발표한다. 하지만 전국 수준에서 데이터를 표준화하는 기준이나 지표가 수립되어 있지 않아서 데이터의 질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Karaca-Mandic, Georgiou, and Sen 2020) 예컨대 뉴욕 주는 매일 확진자와 음성판정자에 관한 자세한 보고서를 내고 있는 반면, 캘리포니아 주의 음성판정자 데이터는 그만큼 엄밀하지 않다. 실제로 4월 21일 캘리포니아 주가 보고한 수는 7000명인데 반해 다음날인 22일에는 16만 명을 넘었다. 지나친 증가 폭인 데다 현재의 일일 검사역량을 감안하면,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수치다. 데이터사이언티스트인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몇 가지 통계적 처리를 통해 이를 보정하고 50개 주 전체의 확진자 비율을 추정했다. 그리고 총 다섯 번의 시점 3월 25일, 4월 1일, 4월 8일, 4월 15일, 4월 22일을 비교해 주별로 감염의 전파 추이가 정점 (peak)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난 3주간 확진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거나 적어도 전 주에 비해 하락세를 보인 지역은 정점에 도달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Silver 2020)

 
그의 분석에 따르면, 뉴욕, 뉴저지, 루이지애나, 미시건 주를 비롯한 20개 주가 4월 22일을 기준으로 전주에 비해 확진자 비율이 떨어졌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6개 주는 4월 1일 이래로 3주째 하락세를 유지했다. 따라서 초기에 큰 피해를 입은 몇몇 지역들은 이제 진정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점을 지났을 것으로 분류한 지역에서조차 상당수 주들은 사실 등락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최근 부분적 제한완화 조치를 취한 조지아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해 인디애나 위스콘신 아이다호주 등이 포함된다. 역으로 워싱턴 DC를 포함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주에서는 여전히 감염병 전파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아이오와 오하이오 네브래스카 주는 한 주(4월 15~22일)만에 10% 안팎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적어도 두 가지 함의를 끌어낼 수 있겠다. 하나, 뉴욕시의 상황이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서 미국 전체 상황이 나아졌다고 예단하는 건 무리다. 상당수 지역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둘,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택 대피령 같은 전면적 조치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언론에서도 빈번히 원용되는 도식(하단 <그림1> 참조)에 의존해 말한다면, 미국은 곡선을 구부리는 데 일정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를 장기간 시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효과 자체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체계 자체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노력, 다시금 아래 도식을 빌린다면 Y축 위로 직선을 더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병상, 중환자실(ICU), 인공호흡기, 에크모(ECMO), 개인보호장비(PPE)와 같은 자원을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대규모의 검사 역량을 갖추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방역과 감염병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듯이 이것이야말로 "미국을 다시 개방하기(Opening Up America Again)"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확진자 사망자 수가 다가 아니다

 
사실 코로나19를 다루는 언론 보도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건 이런 이야기들이 아니다. 가장 귀에 박히는 소식은 확진자 수, 그리고 무엇보다 사망자 수다. 4월 29일 현재 미국의 전체 확진자 수는 100만 명을 넘었으며 사망자 수는 6만 명에 육박한다.(확진자 101만5289명, 사망자 5만8529명) 이 막대한 희생에 대해서는 애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매일 늘어나는 숫자에 감각이 무뎌지면 정작 이를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도 종종 흐려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공할 만한 위기는 사회가 가진 기존의 모순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증폭된 형태로- 계기가 되어왔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지 '얼마나 죽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왜 더 죽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건강불평등(health inequality)이라는 주제로 나아가야 한다.

 
21세기를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이 마침내 모든 사회과학의 핵심 주제가 된 시기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더불어 가장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각종 지표를 통해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과 눈에 띄는 차별점이 있다면 미국 사회에서 인종주의가 갖는 중요성이다. 남북전쟁(노예제 철폐)를 거쳐 민권운동(선거권과 시민권 쟁취)에 이르는 정치적 경험 그리고 원주민과 다양한 이주민 투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종(race and ethnicity)이라는 범주는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도 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아메리칸 인디언과 알래스카 원주민- 은 백인에 비해 확진자 비율과 치명률이 크게 높았다. 예컨대 흑인은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지만, 전체 확진자는 그 세 배에 가까운 34%에 달했다.(Artiga et al. 2020; Zephyrin et al. 2020) 물론 흑인이 이른바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의 비율이 높을 뿐 아니라 저소득층이자 비보험자일 확률 역시 더 높다는 점에서, 이 통계적 사실은 슬프지만 놀랍지 않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자원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면, 사정은 그리 간단치 한다. 의료접근성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달 테네시 주 내슈빌에는 세 곳의 드라이브스루 검사소가 설치됐지만, 검사에 필요한 진단기기와 개인보호장비를 구하지 못해 검사소는 몇 주간 사실상 공회전했다. 그중 한 곳은 유서 깊은 흑인 고등교육기관인 머해리 의과대학 (Meharry Medical College) 내에 위치해 있다. 대신 이 기젹의 상당수 검사는 벨 미드(Belle Meade)와 브렌트우드(Brentwood) 소재의 선별진료소(walk-in clinics)에서 이뤄졌다. 모두 전통적인 백인 거주지인 곳이다. 오늘날에도 인종주의는 이렇게 끈질기게 작동 건강불평등으로 나아간다.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 위스콘신 주의 주지사 토니 이버스(Tony Evers)의 말을 빌린다면, 이는 실로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의 위기(a crisis within a crisis)"다.(Farmer 2020)

 
인종주의와 건강불평등의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지점에서 작동하는 이 논리를 데이터 수집의 정치학이라 불러도 좋겠다. 감염병의 기초적 대응은 해당 데이터의 철저한 수집과 분석을 통해 진전된다. 따라서 연령 성별 인종 지역별 인구학 데이터 중 어느 하나라도 충분히 검토되지 않으면 방역과 진료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오랫동안 인종별 확진자 수를 파악하지 않다가 지난 4월 17일이 되어서야 이를 발표하고 있다. 그마저도 전체의 60%에 가까운 사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거나 미분류인 상태여서 데이터 자체의 한계가 크다. 메릴랜드 주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래 주 하원의원인 닉 모스비(Nick Mosby)의 주도로 인종별 데이터를 수집해 공개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있었고, 4월 9일 래리 호건(Larry Hogan) 주지사는 최초로 주 보건부가 향후 이 데이터를 계속 관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취약계층의 거주지는 그들의 건강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정치인들은 우편번호(zip-code)를 활용한 거주지별 데이터 역시 사태에 대응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그 결과 메릴랜드 주는 뉴욕 주와 함께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베이스의 운영에 있어 전국에서 가장 앞서 있는 지역이 되었다.(Cohn, Ruiz and Wood 2020) 이는 취약계층의 건강이 어떻게 정치와 직결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사회과학에서 건강(health) 연구는 오랫동안 보건의료(health care)에 대한 연구와 등치되어 왔다. 물론 이는 그 자체로 중요한 분야지만, 또한 많은 것을 누락시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창한 이른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개념은 이러한 연구지평을 크게 확대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결정요인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소 생활하는 -따라서 일하고 나이 들어가는- 조건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교육, 직업, 소득과 같은 통상적인 사회경제적 지위(SES)뿐 아니라 거주, 주거지역, 식량, 교통 등이 포함된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드러난 미국 사회의 모순은 그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한다. 동시에,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 건강의 '정치적' 결정요인 (political determinants of health)을 말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e.g. Dawes 2020) 이미 2008년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위원회 보고서에서 권고사항의 두 번째 원리로 논의된 바 있었던 이 개념은, 건강불평등의 사회적 원인을 규명할 뿐 아니라 이 원인이 형성되고 강화되는 데 기여하는 제도적·정치적 동력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이는 기존 정치체계에 내재한 제도적 배열(institutional arrangements)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말하자면, 이 제도를 드라이브스루 검사소의 위치에도, 인구학 데이터의 수집 과정에도 작동한다.

코로나19를 둘러싼 갖가지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 시기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보건의료(체계), 건강, 건강불평등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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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antha Artiga, Kendal Orgera, Olivia Pham, and Bradley Corallo. “Growing Data Underscore that Communities of Color are Being Harder Hit by COVID-19.” Disparities Policy - Kaiser Family Foundation (April 21, 2020) 
- David Blumenthal and Shanoor Seervai. “Coronavirus Is Exposing Deficiencies in U.S. Health Care.” To the Point - The Commonwealth Fund (March 10, 2020) 
- Meredith Cohn, Nathan Ruiz and Pamela Wood. “Black Marylanders make up largest group of coronavirus cases as state releases racial breakdown for first time.” Baltimore Sun (April 9, 2020)
- Daniel E. Dawes. 2020. The Political Determinants of Health.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 Blake Farmer. “Long-Standing Racial And Income Disparities Seen Creeping Into COVID-19 Care.” Kaiser Health News (April 7, 2020) 
- Yalda Jabbarpour, Ann Greiner, Anuradha Jetty, Megan Coffman, Charles Jose, Stephen Petterson, Karen Pivaral, Robert Phillips, Andrew Bazemore, and Alyssa Neumann Kane. 2019. Investing in Primary Care: A State-Level Analysis. Patient-Centered Primary Care Collaborative and the Robert Graham Center.
- Pinar Karaca-Mandic, Archelle Georgiou, and Soumya Sen. “Calling All States To Report Standardized Information On COVID-19 Hospitalizations.” Health Affairs Blog (April 7, 2020) 
- New York State. “Amid Ongoing COVID-19 Pandemic, Governor Cuomo Announces Statewide Public-private Hospital Plan to Fight COVID-19” (March 30, 2020) 
- New York State. “Amid Ongoing COVID-19 Pandemic, Governor Cuomo Announces New Hospital N'etwork Central Coordinating Team” (March 31, 2020) 
- Josh Pacewicz. “States lead the fight against covid-19. That means we all depend on Medicaid now.” The Monkey Cage- Washington Post (April 8, 2020) 
- Carmen Heredia Rodriguez. “COVID Tests Are Free, Except When They’re Not.” Kaiser Health News (April 29, 2020) 
- Shanna Rose. 2013. Financing Medicaid: Federalism and the Growth of America’s Health Care Safety Net. Ann Arbor, Michiga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 Scott, Dylan. “New York is merging all its hospitals to battle the coronavirus.” Vox (April 3, 2020)
- Nate Silver. “Coronavirus Cases Are Still Growing In Many U.S. States.” FiveThirtyEight (April 23, 2020)
- Laurie Zephyrin, David C. Radley, Yaphet Getachew, Jesse C. Baumgartner, and Eric C. Schneider. “COVID-19 More Prevalent, Deadlier in U.S. Counties with Higher Black Populations.” To the Point - The Commonwealth Fund (April 23, 2020)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0318465769649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