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왕과 새마을금고] 지검장, 윤핵관, 그리고… '사채왕 파일' 속 수상한 이름들
조아영·김보경·김연정·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 기사입력 2024.05.01. 05:01:09 최종수정 2024.05.01. 08:08:17
"그놈을 20(억 원)을 들여서 국회의원 만들면, 지가 100억 원어치 가져와. 이권으로 줘." -김상욱 통화녹음 중
'사채왕' 김상욱(1972년생)은 공범과 통화하면서 자신의 정·관계 인맥을 자랑스럽게 늘어놨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 '윤핵관'으로 불린 현직 국회의원, 한 정당의 지역조직 실세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의 문을 닫게 만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그 배후에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1500억 원대 불법대출 사건이 있었다. (☞ 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전 상무와 무궁화신탁 김재민 전 대리 등 수많은 공범들이 사채왕 김상욱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김상욱은 "내가 밀어주는 정치인만 해도 한 30명 된다"며, 자신이 정·관계 인맥을 '꽉 잡고 있다'는 말로 공범들을 포섭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의 통화녹음 파일 약 900건을 입수했다. 녹음파일 속에는 그저 허세로만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구체적인 증언들도 다수 들어 있었다. 아래에 인용한 대화는 모두 김상욱-김재민 통화녹음 파일에서 확인한 것들이다.
"(전직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A, 내일 만나서 점심 먹는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는 무서운 곳이야. 깡패 두목들도 거기서 오줌 싸고…." -김상욱, 2023년 6월 22일 오후 4시 38분
지난해 6월 23일 김상욱은 검사 A와의 점심식사 자리에 공범 김재민을 데리고 간 것으로 보인다. 평소 김상욱은 김재민을 '조카'라 부르며 특별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검사 A는 ○○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거쳐 ○○지검 지검장까지 지냈다. 이후 검사 옷을 벗고 지난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그 새끼(A 지칭) 국회의원 (선거) 나가려고 회장님(김상욱 본인)을 만나는 거야. 이번 일 잘 해결하면 ‘스폰’ 해준다고 했어. 나 만나고 싶어서 환장한 놈인데 (그동안) 안 만나줬거든. 그런 놈들 알아두면 좋아. 웬만하면 다 봐주니까." -김상욱, 2023년 6월 22일 오후 10시 19분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은 지난해 6월 23일 전후로 검사 A와의 식사 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6월 22일 밤, 김상욱은 서울 역삼동 ○○호텔 뒤편에 있는 고급 일식집에서 A와 만나기로 했다며 김재민에게 식당 주소를 전달했다.
김상욱 : "지금 (문자메시지로) 주소 갔을 것이다. 호텔 뒤편에 ○○일식이라고 있다고 하대. 거기서 맛있는 거 먹자."
김재민 : "시간은 그럼 언제쯤 만나시는 거예요?"
김상욱 : "12시야."
김재민 : "12시요? 제가 12시까지 갈게요."
-김상욱·김재민, 2023년 6월 22일 오후 10시 19분
점심식사 약속 당일, 김재민은 ○○일식에 먼저 도착해 김상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상욱은 "최고의 검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지켜야 할 것을 김재민에게 미리 당부하기도 했다.
"대단한 애들이니까. 검사만 돼도 대단하다고 하잖아. 그중에서 최고의 검사를 만나니까 싸가지가 없지. 오늘 싸가지 없으면 회장님(김상욱 본인)이 욕해버릴 거고, (…) 중요한 얘기할 때는 알아서 조카(김재민)가 (자리를) 비켜주고." -김상욱, 2023년 6월 23일 오전 11시 58분
6월 23일 이후 통화에도, 그날의 만남이 실제로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나흘 뒤인 6월 27일, 김상욱은 김재민에게, 다른 금융기관 직원을 포섭하는 데 자신과 A와의 관계를 이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대목에서 "한 번 봤으니까"라는 언급이 나온다.
"A 이름은 얘기하지 말고, '반부패·강력부장 만날 때 옆에 같이 나온 사람은 밥도 못 먹더라, 그 사람들도 회장님(김상욱 본인)에게 고개 숙이더라'고 얘기해라. (…) 겁주면서 회장님 능력을 말로 보여줘. (너는 A를) 한 번 봤으니까." -김상욱, 2023년 6월 27일 오후 9시 57분
김상욱은 검사 A와의 인연이 상당히 깊고 오래된 것처럼 김재민에게 말했다. 심지어 A가 검찰 내부의 특정 수사 관련 자료를 자신에게 넘겼다는 발언도 있었다.
"검찰이 (그 사건을) 내사 진행한 지가 5년이 됐어. 그 자료가 나한테 싹 넘어왔어." -김상욱
사채왕 김상욱의 전직 검사 인맥은 A 하나만이 아니다. 그는 검사 출신 변호사를 자신의 고문변호사로 두고 있었다.
"내 고문변호사 쓰라고 해. 검사장 출신인데 기가 막혀부러." -김상욱
"작은아빠(김상욱 본인)가 (김재민) 참고인 조사 받으러 갈 때 우리 고문변호사랑 ○○경찰서에다 전화해놓을라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고." -김상욱
김상욱은 검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줄'이 있다고 자랑했다. 김상욱은 이른바 '윤핵관'으로 통하는 국회의원 B와 친분이 있으며, 심지어 그의 돈을 본인이 '세탁'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표를 쓰면 추적돼. 근데 네 삼촌(김상욱 본인)은 외국으로 보내버리거든. 스포츠 도박 하는 애들이 가져가, 그럼. 외국 은행에 돌리면 한국에 3일 만에 현금으로 들어오거든. 그럼 돈세탁이야. 뒤 봐주려면 돈이 필요할 거야." -김상욱
김상욱은 국회의원 B와 또 다른 정치인 C 사이에서, '밀당'이라도 하는 듯 말했다. C는 A와 같은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B하고 친하거든, 내가. B가 (정권) 실세잖아. 근데 이번 (22대 총선에서) 공천 못 받을 거야. 자기(B)는 그걸 몰라. 그래서 회장님(김상욱 본인)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 작은아버지(김상욱 본인)가 더 이상 개입하게 되면 완전히 내가 C를 등지고 해야 되거든." -김상욱
지난해 8월 13일 통화 중에 나온 이야기. 실제로 B는 22대 총선에서 정당 공천을 받지 못햇다. 김상욱은 C를 성 없이 이름만 부르거나, 혹은 성만으로 "미스터 ○"이라 부르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C가 자신을 "형님"이라 부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C가 안 그래도 회장님(김상욱 본인)한테 '형님 진짜 자기가 부탁하는데 총리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 자기 형님이 움직이면 자살한다'고 했어. 그 정도로 회장님이 참 요주의 인물인가봐. 우리나라 경제를 흔들 정도로. 내가 (돈을) 잘못 줘버리면…. '미스터 ○'(C를 지칭)은 버리지 못하거든. 그놈 대통령 만들려고 내가 지금 이 XX을 떨고…." -김상욱
정치자금 제공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정황이 들어 있는 발언도 있다. 한 정당의 지역조직에서 활동하는 D. 과거 지방선거 출마 경험이 있는 그는, 22대 총선에서 한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지원했으나 낙마하고, 비례대표 위성정당의 지역 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원했다.
특이하게도, 김상욱은 그에게 '후불제'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한 프로축구단의 이사를 맡고 있는 D가 선수단에게 먼저 쓴 금액을 사후에 보전해주는 방식이었다.
"(D에게) 내가 돈 20억 원 줬는데, 국회의원 하나 키우기 진짜 힘들어. 이번에 ○○FC(프로축구단) 우승했다더라.(실제로는 리그 도중 1위에 오른 것. 기자 주.) 그래서 밥을 사야 한대. 하… 이 새끼(D를 지칭) 1000만 원 후원한 거(청구서) 보내놨네." -김상욱
김상욱과 김재민의 통화녹음 파일에는 김상욱이 정치자금을 건넨 여러 정치인들의 실명이 언급된다. 하지만 김상욱은 모든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를 "세우고",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로비를 진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도 있다.
"그놈(D)하고 A하고, 앞에 누굴 세워놨지. 청구서 들어오면 돈 다 해줘." -김상욱
지난 5일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의 통화에서 만남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검사 출신 정치인 A를 찾아갔다. 당시 A는 국회의원 후보였다.
기자 : "작년 6월에 김상욱 한번 만난 적 있으시죠? 서울 역삼동에 있는 ○○일식에서 한번 만났죠?"
A : "예예? 잘 기억이 안 나요."
기자 : "김상욱 회장 모르세요?"
A :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요. 한 번인가 본 것 같기도 하고 딱 그 정도인데…."
기자가 직접 녹음 파일을 들려주며 질문했지만, A는 "한 번 본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을 바꿨고 이내 "저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간 게 아니"라며 혼란스러운 답변을 반복했다. 김상욱에게 정치자금을 받은 적 있냐고 묻자, A는 "이 얘긴 그만 합시다"라며 자리를 떠났다.
그 뒤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A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악의적 보도를 하면 강력한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경고였다. 총선이 지나고 다시 A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김상욱은 지난 16일 <셜록>과 한 전화 통화에서 "나도 피해자다, 불법대출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여러 번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후 기자가 문자메시지로 재차 취재 협조를 요청하자 김상욱은 "본인도 관련자들의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그리고 만약 취재진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내온 바 있다.
한편, 사채왕 김상욱(1972년생)은 지난 23일 구속됐다. <셜록>이 보도를 시작한 지 6일 만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전 상무도 그와 함께 구속됐다. (☞관련기사 : 조폭 출신 사채업자이자 불법대출 주범 '사채왕' 김상욱 전격 구속)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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