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아리아 포뮬러’ 회의가 열렸습니다.
‘아리아 포뮬러’ 회의는 안보리 이사국의 요청으로 열리는 비공식 회의로 안보리 공식 의제로 채택되지 않은 주제를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회의는 사이버 안보, 특히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을 주제로 한·미·일이 공동 주최했습니다.
한·미·일은 3월 28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위원회 임기 연장이 무산되자 어떻게든 대북 압박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회의에서 미국과 한국 대표는 북한이 사이버 불법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의 사이버 불법 활동에 관한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고 같이 참석한 중국과 러시아 대표들도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회의에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기술을 해킹하려 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나왔습니다.
황준국 유엔 주재 한국 대사는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해커들은 유럽의 항공우주 회사부터 러시아의 위성통신 회사까지 해킹해 대량파괴무기 및 미사일의 설계도와 청사진을 포함한 민감한 정보를 입수하려고 시도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2023년 8월 7일 로이터통신은 북한 해커 집단이 러시아 주요 미사일 개발업체의 방화벽을 비밀리에 뚫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사이버 보안 기업 센티넬원은 북한 연계 해커 집단이 2021년 말부터 5개월 이상 러시아의 NPO 마쉬노스트로예니야(NPO 마쉬) 산하 로켓 설계 부서에 침투했다고 밝혔습니다.
NPO 마쉬는 각종 미사일 개발에 관여했으며 현재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2023년 10월 5일 발표한 디지털 방어 연례보고서에서 북한 해킹 집단이 핵과 미사일 분야 고급 정보를 수집하려고 러시아의 관련 기관을 해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을 깎아내리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만 역으로 북한의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북한의 기술이 뛰어나지 않다면 기술 출처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한미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북한 미사일을 종이로 만들었다면 누가 기술 출처를 궁금해할까요?
실제로 2012년 4월 15일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두고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 데이비드 라이트는 “종이를 여러 겹 발라 만든 것처럼 보인다”라고 진지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진짜 미사일임을 보여주자 이번에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증명되지 않았다’라며 위협이 아니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무기 기술이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미국의 주장대로면 해킹을 통해 기술을 입수했는지 여부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외부에서 더 이상 덮고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앞선 무기 기술을 계속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은 미국도 개발하지 못한 극초음속 미사일을 벌써 3종이나 공개했으며 러시아만 보유했다던 핵 무인 수중 공격정도 벌써 여러 종류를 공개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는 없는 초대형 방사포(다연장로켓), 세계 최대 차량 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도 실전배치를 끝냈습니다.
무기 선진국에만 있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액체 연료 앰풀 미사일, 차세대 전차, 무인기 등도 속속 공개했습니다.
이렇게 나날이 발전하는 북한의 무기 기술을 더는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술 출처에 관해서도 관심을 두게 된 것입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어디서 왔을까?
또, 북한이 해킹했다는 주장은 누구도 북한에 핵과 미사일 기술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한미의 주장은 북한의 해킹 범죄를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강조하면 할수록 다른 나라가 북한에 기술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부각됩니다.
만약 다른 나라가 기술을 주었다면 북한이 굳이 해킹으로 기술을 탈취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동안 한미는 러시아가 북한에 미사일 기술을 주었다고 추정했는데 그렇다면 굳이 북한이 러시아의 NPO 마쉬를 해킹할 필요가 있을까요?
핵과 미사일은 전략 무기이기 때문에 원래 세계 어느 나라도 그에 관한 기술을 다른 나라에 주지 않습니다.
영국이 핵개발을 할 때 미국은 애초에 도와주겠다던 약속을 깨고 오히려 방해했습니다.
이후 프랑스가 핵개발을 할 때는 미국과 영국이 국제사회를 동원해서 프랑스를 방해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념이나 체제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중국이 핵개발을 할 때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할 때 한·미·일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반대하고 대북 규탄과 제재에 동참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종이로 만들었다고 깎아내리고, 해킹으로 핵·미사일 기술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미국과 서방 세계는 자기들만이 핵·미사일 원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술은 곧 돈입니다.
돈이 있어야 기술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돈이 없기 때문에 핵과 미사일을 스스로 개발할 수 없다는 게 미국과 서방 세계의 생각인가 봅니다.
반면 북한은 무기를 돈이 아니라 정신력과 창의력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만주에서 일본과 싸우던 시절에 무기를 제작할 공장도, 자금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는 자체 힘으로 무기를 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때 스스로 만들어낸 폭탄 중 하나가 ‘연길 폭탄’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연길 폭탄을 자력갱생의 상징으로 강조합니다.
또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공습을 피해 평안남도 숙천군 군자리 지하갱도에서 손으로 기계를 돌려가며 무기와 탄약을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당시 나타난 자력갱생의 정신을 ‘군자리 혁명 정신’ 혹은 ‘군자리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북한은 모든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는 자력갱생, 기술 국산화가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현재도 북한은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곳으로 배치한다고 합니다.
2017년 12월 23일 조선일보는 북한 전역에 있는 영재교육기관인 ‘제1중학교’에서부터 핵·미사일을 개발할 학생들을 양성한다면서 이들은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전국에서 오로지 실력으로만 선발하며, 이들이 있어서 고강도 대북 제재 속에서도 핵·미사일 기술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어떻게 그 상상을 초월하는,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했던 제재와 봉쇄 속에서 핵과 미사일을 만들었을까요?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을 잘 풀어야 북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대북 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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