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18] 누가 피해를 볼까
수수께끼 건널목이 있다. 교차로도 아닌데 차 신호 빨간불 한참 뒤에 들어오는 보행 신호…. 까닭 모를 지체에 마음마저 급했던 날, 파란불인 양 건너자니 뒤통수가 서늘했다. 혹시 나무라는 사람한테 대체 누가 피해 보느냐 할 자신은 없었겠지. 피해 운운도 볼썽사납고, 준법정신이며 법체계를 엄연히 해치는 일 아닌가.
신문 기사에 이런 제목이 달렸다. ‘웨딩 바가지 개선한다.’ 걸핏하면 외국어 들이민다고 대중매체 흉보면, 피해자가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할지 모른다. 이러다 누구나 알아듣는 결혼, 특히 혼인(婚姻) 같은 말 다 잊게 생겼는데. ‘부추, 단무지, 김을 고명으로 얹은 ◯◯국수는… 화려한 토핑의 다른 국수와 견줄 바는 아니다.’ 기껏 ‘고명’이라 맛깔나게 써놓고 뒤에선 왜 ‘토핑(topping)’이라 했을까
‘글로벌(global)’은 이제 버젓이 우리말 행세를 한다. 글로벌 기업, 글로벌 인재, 글로벌 경쟁, 글로벌 기준…. ‘세계(적)’니 ‘국제(적)’니 모두 ‘글로벌 시대’에 뒤떨어져서 그럴까.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게 의아할 지경이다. ‘버블(bubble)’ 아니면 영 ‘거품’ 같지 않고 ‘뷰티(beauty)’ 대신 ‘미용’이라 하면 추레해 보이는가. ‘유명인’도 ‘악당’도 죽고 ‘셀럽(celeb)’이랑 ‘빌런(villain)’만 살아남은 세상이다. ‘오디션(audition)’ 대신 ‘심사’를 썼다간 웬 ‘레트로(retro·복고풍)’냐며 핀잔 들을 판이다.
언론만 문제인가. 국무총리가 그랬다.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험블(humble)한 데서 만난 건데….” ‘변변찮은’ ‘보잘것없는’ 같은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말이 변변찮아 그랬을까.
어느 국회의원 후보가 자식 이름으로 거짓 명목 대출을 받아, 집 사느라 진 빚을 갚았다. 사기 대출 소리를 듣자 누가 피해를 보았느냐 했다나. 이런 사람들이 며칠 있으면 법 만드는 자격증을 수두룩이 딸지 모른다. 국민한테 얼마나 해(害)를 끼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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