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 당장 <서울의소리> 압색 하지 않는 이유?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3.11.30. 08:57:09 최종수정 2023.11.30. 09:11:24
함정 취재는 취재윤리상 용납되기 어려운 행위다. 그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정당한 취재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윤리적 문제와 공익적 목적이 부딪힐 때, 우리 사회는 취재 결과물에 대해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2008년 MBC의 김세의 기자(현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버)가 육군본부가 있는 계룡대 내에 여성 접대부를 고용한 유흥주점의 실태를 보도하기 위해 지인의 출입증으로 초병을 속여 잠입한 바 있다. 그해 2월 6일 <뉴스데스크> '계룡대 접대부' 보도에서 김 기자는 '함정 취재'라는 걸 숨기지 않고 몰래 찍은 영상을 보도했다. 이 보도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계룡대는 룸살롱을 폐쇄했다.
그러나 취재 방식에서 드러난 위법 사항은 처벌을 받았다. 이듬해인 2009년 대법원은 김 기자에게 징역 1년 선고유예 2년을 확정했다. 무단 침입한 죄가 인정됐다. 대법원은 "비록 김세의 기자가 군부대 내의 유흥업소 운영의 실태를 취재하려는 목적이었다해도 허위의 출입증으로 초병을 속여 군부대의 초소를 침범한 것은 정당 행위의 요건을 갖춰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김 기자는 당연히 함정 수사라는 걸 밝혔기 때문에 처벌을 각오했을 것이다. 그래서 재판부에 '반성한다'는 입장을 전하면서도 자신의 취재 결과물 자체의 명분에 대한 공익성을 강조했다. 여성 접대부를 고용한 계룡대 룸살롱이란 수치스런 군문화가 폐지된 것은 이런 취재 덕분이다.
함정 취재에 대한 정의는 또렸하지 않다. 통상 위법을 동원한 취재, 신분을 속인 취재나, 기자 대리인을 통한 취재 등을 말한다. 이번 <서울의 소리> 보도는 오히려 수사 기법을 연상시킨다. 범죄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미성년자 성매매 범죄 혐의자를 검거할 때 '기회 제공형 함정 수사'를 벌이기도 한다. 미성년자를 동원해 범죄 혐의자의 범의를 일으키는 건 문제가 되니, 미성년자를 동원하지 않고 미성년자인 것 처럼 속여서 범죄 혐의자를 유인한 후 휴대폰 등 증거물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위법적인 함정 수사인 '범의 유발형', 즉 일부러 범죄를 유발하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서울의 소리>위 취재 방식이 어떤 유형에 해당할 지는 곰곰히 따져봐야 할 일이다.
<서울의 소리>는 사실 처벌을 각오한 것 같다. 그들은 '함정 취재'라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고 있으며, 명품백을 직접 사서 최 목사에게 제공했다는 등 취재 취지와 과정을 세세히 밝히고 있다. 거의 수사 기관용 '셀프 조서'를 작성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실이 영상이 공개된 27일 이후 줄곧 침묵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 등을 상대로 고발을 일삼아 온 친여(與) 단체 등도 너무 조용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가짜 뉴스' 수사에 언론사 압수수색을 밥 먹듯 하던 검찰 등 수사 기관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보수 단체에서 '함정수사'를 비판하는 몇 개의 성명이 나왔지만 그것이 위법이라면 고발이 마땅할 건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만약 <서울의 소리> 함정 취재가 '범의 유발형'이라고 한다면,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범의가 유발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피해자는 김건희 전 대표가 되겠지만, '명품백에 영부인의 범의가 유발됐다'는 여론이 퍼지는 건 아주 곤란하다. 실제로 여권에서는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다"(장예찬 최고위원)라고 주장한다. 영부인의 범행이 없는데 <서울의소리>가 '범의'를 유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서울의 소리> 취재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다고 하자.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몰래카메라 촬영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이 있을 수 있다. 경호처 직원을 피해 손목시계 카메라를 반입했다는 '업무방해' 혐의도 있겠다.
그런데 이 혐의를 입증하려면 <서울의 소리>를 압수수색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될수록 김건희 영부인의 '명품 수수' 의혹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증폭된다. 최소한 수사 과정에서 명품백을 받았는지, 받았다면 그 행방은 어떻게 됐는지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조사해 특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할수록 영부인의 행위는 부각된다. <서울의 소리> 취재진이 이런 부분을 염두에 뒀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서울의 소리>가 대통령실 경호처에 대한 업무 방해를 했다면, 경호처의 경호가 뚫린 것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한다. 명품을 대리 전달한 최 목사의 통일 운동 이력 때문에 '북한 연계설'도 제기되는 모양인데, 마찬가지로 북한이 연계됐는지, 북한이 연계됐는데도 경호처나 국정원은 왜 뚫렸는지, 북한이 연계된 불순한 행위가 어떻게 영부인 주변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사실 '함정 취재'를 두고 대통령실과 여권이 고약한 딜레마에 빠져 버린 셈이다. 입장을 낼 수도, 내지 않을 수도 없는, 그리고 수사 의뢰를 할 수도, 수사를 할 수도, 그렇다고 수사를 안 할 수도 없는 그런 아주 고약한 딜레마다. 확실한 건 여론은 '함정 수사'의 부도덕함이 입증되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김건희 영부인이 받은 명품백'의 행방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이다. '청탁의 대가'가 있었는지, 영부인이 국정에 실제로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궁금해 한다는 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