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글의 국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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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부 동의학원 이사장
한글은 1443년 세종 25년에 창제돼 1446년 9월 30일 반포되었다. 하지만 최만리 등의 반대 외에도 많은 시련을 겪었다. 선비들은 한글을 무시했고, 연산군은 자신을 비방하는 글이 한글로 나돌자 이를 탄압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박지원도 한글을 반대해 한문으로만 책을 썼고, 정약용은 가족과의 편지도 한문으로만 썼다고 한다.
세상의 문자는 알파벳 계열을 빼면 17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창제자가 알려진 것은 한글뿐이다. 그동안 한글의 창제 원리와 기원에 대해서도 수많은 학설이 난무하였으나 훈민정음해례본의 출현으로, 조음기관상형설이 제자원리(制字原理)였음이 밝혀졌다. 한글의 우수성, 독창성을 올바로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큰집 열 채 값의 거금을 주고 이를 사들인 간송의 덕분이었다.
훈민정음은 정음이라고도 불렸지만, 이후 언문, 언서, 반절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암클(여자의 글), 중글(중의 글), 상말글(상놈의 글)이라며 천대받기도 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국문이라 불리다가, 배달말이라는 말도 잠깐 사용되었으나 한말, 한글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9년 처음으로 한글이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언어를 표기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2012년에는 솔로몬제도의 토착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교육 활동이 시작되면서, 제도 전역으로의 확대도 기대되고 있다. 이처럼 한글의 우수성은 지난해 제2회 세계 문자올림픽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것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 이는 2009년에 이은 두 번째 금메달이다.
최근에는 한류 드라마와 K팝도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아이돌 가수의 노래와 춤을 배우기 위해, 로마자로 우리말을 따라 적는 ‘돌민정음’이 세계적인 유행이며, 사랑, 오빠 등 느낌이 좋다는 발음을 따라 하면서, 이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직접 한글을 배우고 있다. 이를 주도해 온 아미(BTS 팬클럽)가 따라 부르는 BTS 노래 속의 한글을 ‘아민정음’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이처럼 한글을 사용하는 외국인이 늘면서 자음 14개, 모음 10개로 축소됐던 한글 자모를 늘리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박재갑 서울의대 명예교수 등이 다양한 외국어 표현을 위해 개발한 ‘한글재민체’가 대표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필요한 자모의 수도 늘여야 한다. 그리하여 국제화 시대에 맞게 Passion과 Fashion의 P와 F를 구분하고, Baby와 Victory의 B와 V를 구분하여 발음할 수 있도록, 현대에 와서 없어진 ‘ㅍ’과 ‘ㅂ’ 밑에 ‘ㅇ’을 더 하는 순경음을 복원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Lady와 Radio의 L과 R의 발음도 구분을 할 수 있도록 ‘ㄹㄹ’(쌍리을)도 써야 한다. 그렇게 해야 외국인들도 한글 발음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재민체의 새 버전은 자음 94개와 모음 30개, 우리말에 없는 성조(聲調)를 표현하는 기호 등을 합해 기본 134자라고 한다. 현재 중국어로 410개, 일본어로 300개의 음을 발음을 할 수 있는 데 비해, 한글은 1만 1172개의 발음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 언어의 발음 기호로 써도 괜찮을 정도의 한글인 만큼 순경음 두 자와 쌍리을만이라도 인정된다면, 한글의 국제화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오래전 일인데, 소르본느의 도서관에서 책에 대해 사서에게 물었더니 “· · · Livre(책)냐? Liber(자유)냐?”라고 되물어 온 적이 있었다. V와 B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한국 사람에게 되묻는 농담조의 질문이었지만 순간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그 이후 발음에 더욱 조심하고 있다. 글이 없으면 발음도 없다. 훈민정음에는 그것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그런 점에서도 미래를 보는 현군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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