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2-11-24 22:50
수정 :2022-11-24 22:52“농장에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 아이들을 불러주세요.”
올봄 겨우내 굳었던 땅들이 봄비에 부드러워져 한참 흙을 만지며 봄내음을 즐기고 있는데 초등학교 1,2학년을 가르치는 조단 선생님이 지나가시면서 한마디 하십니다. 저희 공동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 이외에도 청소나, 동물 농장 돌보기, 계란 모으기, 채소 수확하기 등 아이들 수준에 맞는 활동들을 하면서 어려서부터 이웃들을 섬기는 일을 배우게 합니다. 꼬마들이 도우면 얼마나 도우려나 싶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그러면 배나무에 거름 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서는 음식물 쓰레기와 낙엽 등을 모아서 천연 거름을 만드는데 얼마 전 거름을 밭에 뿌리기 위해 저희 집 옆에 쌓아 놓았습니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손수레와 삽을 들고서는 거름을 열심히 파서 나르는 모습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재잘거리며 열심히 거름을 나르는 모습이 정말 이쁘기만 합니다. 저 혼자 하면 한참 동안 해야 할 일을 아이들이 한두번 나르니 벌써 끝나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이쁘고 고마워 가을에 배가 열리면 꼭 배 맛을 보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봄이 되면서 배나무에 예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솎아주고 배가 무럭무럭 자라는 걸 지켜보며 즙이 줄줄 흐르고 달고 아삭한 배맛을 보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4년 전 배나무에 한국 배나무 가지를 접붙여 처음으로 열매를 맺는 거라 여간 기대가 큰 게 아닙니다. 드디어 가을이 되자 배가 노랗게 익었습니다. 배 수확을 시작하면서 봄에 거름을 열심히 날라준 고마운 꼬마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너무나 흥분해서 조단 선생님과 함께 달려옵니다. 아이들이 직접 배를 따서 먹게 했더니 아이들이 행복해하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보는 저도 덩달아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나머지 배를 수확하여 평소 가깝게 지내던 다른 공동체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선물로 드렸습니다. 윌마 할머니는 한국 배가 너무 맛있어 찬장에 넣어두시고 문을 닫아 놓아 다른 이웃이 못보게 하며 몰래 드신다고 합니다. 한국 배 앞에선 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수잔 할머니는 감사의 편지를 보내시면서 옆에 사는 손주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식사에 오는데 하는 말이 “할머니, 내가 올 때만 한국 배를 드세요”라고 하며 신신당부하더랍니다. 이놈의 한국 배 인기는 식을 줄 모르네요.
저희 공동체 형제들도 언제쯤 한국 배 파티를 할 거냐며 배가 익기 전부터 얼마나 제 옆구리를 찔러대는지…. 원, 그러던 차에 얼마 전 토요일 만찬 디저트 포트락이 있어 제 아내는 파이를 만드는 대신 맛보기로 한국 배를 내기로 했습니다. 자매들이 열심히 베이킹을 해 만들어 온 디저트를 보니 보는 것 만으로도 군침이 돌며 어떤 디저트를 먹을지 찜해놓습니다. 디저트 시간이 되자 찜해놓은 호박 파이와, 당근 케이크 등을 가져다 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네요. 다음날 집에 가는데 초등학교 1학년 올리비아가 “한국 배 아주 맛있게 먹었다”며 고맙다고 하면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라고 합니다. 어린 꼬마가 이렇게 말하니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뻐서 아내가 배 몇개를 챙겨서 올리비아에게 주니 너무 행복해합니다. 함께 일하는 스텔라도 제 아내에게 오더니 중학생인 자기 아들 대니얼도 한국 배를 무척 좋아하는데 엄마가 한국 배가 디저트로 나왔다고 하자 바로 갔는데 벌써 다 떨어지고 2조각밖에 안 남았다며 툴툴거리며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곳 자매들의 훌륭한 디저트 사이에도 한국 배가 꿀리지 않네요. 대니얼 갖다주라며 스텔라에게도 배 한봉지를 주었더니 대니얼은 배를 보는 즉시 2개를 먹어버렸답니다.
형제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드디어 저녁에 한국의 밤을 열어 몇가지 한국 음식과 함께 한국 배를 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한국에 새로 생긴 영월 브루더호프 공동체 리모델링을 돕기 위해 몇주 전에 한국에 다녀온 마틴이 한국 공동체 슬라이드쇼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산이 겹겹으로 쌓인 영월 풍경을 보니 마음은 한국에 가 있는 듯합니다. 한국에서 땀흘리며 힘차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형제들에게 많은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의 밤이 끝나자 이안 할아버지는 자기는 일년 내내 이날만 손꼽아 기다리신다고 하십니다. 이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형제자매들이 제게 와서는 한국 음식과 한국 슬라이드쇼가 너무 좋았다며 감사의 뜻을 전해와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마틴은 허드슨 강가에 있는 마운트 공동체에서 작년에 이곳 메이플릿지로 이사 왔습니다. 마틴이 하는 말이 마운트 공동체 학교에서는 매년 이맘때 아빠들과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연어 낚시를 간다고 합니다. 연어 낚시라니…. 제 귀가 쫑긋합니다. 그동안 봄에 대서양에서 산란하러 오는 스트라이퍼는 잡아봤어도 연어 낚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입니다. 말인즉슨 이곳에서 4시간 떨어진 미국의 5대호 중의 하나인 온타리오 호수에서 가을이면 연어들이 강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밴쿠버나 알라스카에나 가야 연어 낚시를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연어 낚시를 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이런 귀한 정보를 얻었으니 가만 있을 수 있나요, 저희 공동체를 책임지는 형제에게 허락을 받아 그동안 미션에 쓰이던 캠핑카를 빌려 낚시 장비를 챙겨 유빈이와 이곳 청년 두명과 함께 연어가 올라온다는 강으로 드디어 출발합니다. 마틴이 소개해준 장소에 도착하니 연어 낚시 명소답게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모두들 가슴까지 올라오는 웨이더를 입고 열심히 낚싯대를 던집니다.
저희도 낚싯대에 가짜 연어알 미끼를 끼워 던집니다. 그런데 연어가 미끼를 물어도 옆의 사람과 너무 가깝게 있어 낚싯줄이 엉켜 끌어 올리기가 쉽지 않고 자기 낚싯줄을 건드리지 말라며 고함치는 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한마리도 못잡고 해가 지자 내일을 기약하며 낚싯대를 접어 캠핑카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낚시하느라 먹지도 못해서 배가 엄청 고팠는데 프라이팬에 소고기를 구워 한국식으로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 먹게 했더니 같이 간 청년들이 너무 맛있다며 즐거워합니다.
다음날 함께 낚시 온 청년 한명이 강 상류로 올라갔다 오더니 좋은 장소가 있다며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 청년은 밴쿠버에 몇년간 살아 연어 낚시 경험이 있을 뿐 아니라 어디에 고기가 있고 어떻게 해야 고기가 낚일지 너무 잘 아는 공동체에서 몇 안되는 낚시 전문가 중 한명입니다. 안내한 곳으로 가보니 사람들도 거의 없고 한적한 것이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연상됩니다. 멀찌감치 플라이 낚시 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다시 낚싯대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던지자 마자 연어가 미끼를 물었네요. 사람이 거의 없어 낚싯줄이 엉킬 염려가 없어 너무 좋습니다. 낚싯줄을 감아 올리는데 힘이 얼마나 센지 손맛이 장난이 아닙니다. 스트라이퍼 잡을 때도 힘이 엄청난데 연어에 비할 것이 못됩니다. 연어가 바로 눈앞에서 강물 위로 펄쩍펄쩍 뛰는 것이 보이는데도 쉽게 끌려오지 않고 저만치 달아나고 다시 당기기를 계속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뜰채를 가지고 강속으로 들어가도 다시 저만치 도망가기가 일쑤여서 뜰채를 푸다가 미끄러운 바위에 넘어져 옷이 다 젖기도 하고 결코 쉬운 놈이 아닙니다. 한 이삼십분쯤 사투를 벌이니 마침내 강가로 끌어올려 연어를 건졌습니다. ‘킹살몬’이란 이름답게 정말 큰 연어입니다. 제가 4마리 정도 잡는 동안 유빈이는 힘이 넘쳐 10마리 넘게 잡습니다. 같이 온 다른 청년들도 유빈이 못지 않게 끊임없이 잡아 올리네요. 연어 잡는 마리수가 제한되어 있어 나머지는 잡는 즉시 다시 강물에 놓아주지만 연어와 밀당하는 재미에 힘든지도 모르고 계속 낚싯대를 던지게 됩니다.
낚시가 끝나니 몸이 쑤시고 아프지만 강산에님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면서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아이스박스 가득 연어를 집으로 가져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니 모두들 너무 맛있게 드시며 좋아하시니 저도 흐뭇합니다.
올 한해도 밭에서, 강에서 풍성하게 거두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행복한 추수감사절 되세요.
글 박성훈(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 메이플리치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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