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노동자들이 운전대를 내려놓고 총파업에 나섰다.
지난 6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전품목 확대’를 위해 총파업했던 화물노동자들은 24일 0시를 기해 다시 총파업 대오로 모였다.
지난 6개월. 무슨 일이 있었길래 화물노동자들이 다시 총파업을 결단했을까?
2020년 1월1일부터 시행된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 종사자의 근로 여건 개선 및 화물차 안전 확보를 위해 화물차주와 운수 사업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유가 인상 시, 유가에 연동해 운송료를 조정하는 제도인 안전운임제에 따라 화주는 화물 차주에게 안전운송운임 이상의 운임을 지급해야 한다. 폭등하는 기름값으로 인해 ‘달릴수록 적자’인 화물노동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제라 할 수 있다. 화물노동자들은 유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운임의 변동이 없어 목숨 걸고 장시간·과속·과적 운전을 하거나, 운송을 아예 포기하는 처지에 놓여 왔다.
안전운임제는 ‘2022년 12월31일까지 효력을 가진다’는 유효기간 조항(3년 일몰제)으로 올해 말 자동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 적용대상도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 한해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해 왔다. 이는 전체 사업용 화물차 중 6.2%에 불과하다. 전체 42만 화물노동자 중 약 2만 6천여 명만 해당된다.
지난 6월 7일, 8일간의 총파업 이후 6월 14일 국토교통부와의 교섭을 통해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안전운임 품목 확대 논의를 합의하며 화물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복귀했다. 국토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이를 발표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국토부
6월 합의 당시 국토부는 주무 부처로서 안전운임제가 일몰 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고, 품목확대의 경우 국회에서 법 개정안을 다루되, 국토부는 화물연대(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와 함께 품목 확대 방안을 논의해 가며 국회 논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종료된 직후부터 6월 합의를 파기하는 발언을 지속해 왔다. 특히 화물노동자에 대한 적정운임을 통해 과로‧과적‧과속을 줄이고 도로안전을 증진시킨다는 ‘안전운임제’ 제도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_원희룡 국토부 장관 “(안전운임의 문제들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일몰을 폐지하고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게 국토교통부의 일관된 입장”(6월16일)
_어명소 2차관 “안전운임제의 일몰제 폐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 (6월15일)
“안전운임제는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법.. 검토 필요”(9월29일)
합의 이틀 만에 국토부 수장이 화물연대와의 합의를 말 한마디로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노정합의 무시, 장관이 앞장서다
원희룡 장관은 화물노동자 총파업을 하루 앞둔 시점까지 문제 해결에 나서기는커녕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안전운임 품목 확대 합의를 한낱 종잇장 취급하고 있다. 원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제가 화물연대와의 대화를 통해 안전운임제 연장은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구화나 품목의 확대는 불가능하다, 안전운임제 연장을 위해 협의를 지속해나가자는 합의를 했다”고 합의 내용에 대해 발뺌했다.
그러나 6월 합의 즉시 국토부는 설명 자료(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고, 이는 현재도 국토부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번에 화물연대본부가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함에 따라 그간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국토교통부는 국회 원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를 국회에 보고할 것이며, 현재 운영 중인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컨테이너, 시멘트)를 연장 등 지속 추진하고, 안전운임제의 품목확대 등과 관련해서 논의할 계획입니다.”
원 장관은 또, “안전운임제는 국회에서 입법으로 정할 사항이다”, “제도 연장은 가능하지만 품목확대는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강조했다. 안전운임제에 대해 “국회에서 입법으로 정할 사항”이라며 정부 책임을 회피하다가, 곧바로 “제도 연장은 가능하지만 품목확대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빠져나가다가, 정작 국회에서 논의할라 치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형국이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와 35회에 걸친 협의, 단독으로 14차례 대화를 해왔는데, (노조가) ‘대화를 안 한다’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운송거부(파업)의 명분을 만들고 있다”고 여론몰이도 했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6월 합의 이후 제도 지속 추진과 품목확대 논의를 약속했지만, 5개월간 어떤 논의도 진전되지 않았다”고 했다. 화물연대 총파업을 열흘 남기고 진행된 화물연대-국토부 교섭 자리에서도 국토부는 “품목확대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국토부 내부에서 결정된 방침”이라며 논의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입장만을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화주’편 들고 ‘화주 책임’ 면해주고…
국토부의 입장에 맞장구를 치듯 정부여당은 안전운임제 개악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는 ▲운송운임을 삭제해 화주의 책임을 없애고 ▲과태료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운송운임과 과태료 조항이 삭제되면 안전운임제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사실상 안전운임제를 무력화하려는 개악안이라 할 수 있다.
앞서 9월 29일, 국회 민생경제특별위원회 안전운임 관련 보고에서 국토부는 ▲화주 책임 삭제 ▲처벌조항(과태료 등) 완화 등 그간 대기업 화주가 요구해 온 개선사항을 반영한 제도 개악안을 제시했다. 이것이 김정재 의원 개악안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법안이 개정돼 안전운송운임이 삭제되면, 공급사슬의 정점에 있는 화주의 지불 책임이 사라진다. 운수사의 최소 수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화물노동자가 받는 안전위탁운임도 지켜지기 어려워지고, 이렇게 되면 화물노동자들의 생계는 불을 보듯 뻔하다.
화주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모두 화주라 볼 수 있다. 상품을 생산해서 수출입 하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는 기업들이다. 화물노동자의 진짜 사장이 화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물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데, 이들의 실질적인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주체는 화주다.
안전운임제가 3년 일몰로 도입되면서 한계가 존재했다. ‘어차피 곧 사라질 제도’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제도 준수율을 낮추게 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 미만의 운임을 지급하는 등 제도위반 사례가 빈번했고, 3년 시범 운영을 악용한 화주들은 운영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일단 버티는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2년간 5천 건이 넘는 위반 신고가 있었으나 실제 과태료 부과까지 완료된 것은 91건(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운임 품목확대’ 대해서도 민생경제특별위원회 보고서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담아 노골적으로 품목확대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국토부는 국회에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가 불가능한 이유를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회 논의가 시작되기 직전에 국토부의 반대입장이 공표되면서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더욱 어려워졌다.
누가 국민의 안전을 해치는가
안전운임제가 3년 후 사라지는 일몰제로 도입된 데에 국민의힘이 역할을 했다. 2018년 제도 도입을 위한 국회 법안논의 당시 이헌승·박맹우 등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화주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간다”,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해친다”며 반대했다. 이로 인해 최초 발의된 법안에는 없었던 일몰제 규정이 삽입됐다. 화물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정당이지만 이제 발 빼기에 급급한 국민의힘이다.
지난 5월, 한국교통연구원이 주최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성과 평가 토론회’에선 제도 시행 이후 ▲화물노동자의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과적이 감소하였다는 공통된 결론이 도출된 바 있다. 연구원은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 제도가 지속 시행되어야 함”을 밝혔다.
또,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의 연구에서는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과로‧과적‧과속의 감소에 따라 전반적인 노동위험수준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게 42만 화물노동자의 생존권, 나아가 도로 위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안전운임제’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국토부와 여당은 책임회피로 일관 중이다.
현재 안전운임제 관련 5개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3년 일몰로 도입된 안전운임제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 안전운임제는 사라진다. 직접 합의하고 보도자료까지 내놨던 것을 스스로 뒤집으며 안전운임제를 폐지하려는 국토부. 여기에 앵무새처럼 힘을 보태는 국민의힘. 누가 끝까지 국민의 안전과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총파업을 앞둔 22일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국회 법안 통과에 총력을 다할 것이며, 정부-여당의 기조를 바꿀 때까지, 완벽하게 약속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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