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 전수평가’라 깨운 일제고사 트라우마…‘서열화’ 회귀 조짐들
- 조한무 기자 chm@vop.co.kr
- 발행 2022-11-16 16:30:15
- 수정 2022-11-16 16:33:48
1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 장관은 MB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내며 일제고사 도입을 주도한 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 현장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윤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이 장관은 MB 정부 시절 시행한 일제고사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전철을 밟으려는 조짐을 보인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장관은 과거 일제고사에 대해 “그 형태가 지필고사 형태였고 일시에 실시하기에 경쟁 압력이 있던 점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문제의 발언이 뒤따랐다. 이 장관은 “10여년 전에 시도한 학업성취도 평가는 지필고사라는 한계가 있었다”며 “컴퓨터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평가는 맞춤형 평가라는 장점이 있고 많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일제고사가 경쟁체제를 유발한 이유로 지필고사를 댄 것이다. 시험을 종이로 치면 경쟁이고,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고 문제를 풀면 경쟁이 아니라는 다소 황당한 해명이다.
이 장관 인사청문회는 일제고사 부활 논란이 불거진 와중에 진행됐다. 논란은 윤 대통령이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꺼내면서 촉발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학업성취도와 격차 파악을 위해 주기적 전수 학력 검증 조사를 실시하겠다”면서, 초·중·고교 전수 학력평가 시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윤 대통령의 학업성취도 전수평가 발언을 두고, 정부가 궁극적으로는 전수평가로의 회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 발언이 있던 날 교육부는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 발표 브리핑을 열었다. 기초학력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덮였다. 관심은 학업성취도 전수평가에 집중됐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일각에서는 일제고사의 부활 아니냐는 주장이 있는데, 참여를 원하는 학교에 한정해 확대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대통령이 언급한 ‘전수(全數)’와 ‘원하는’ 간 형용모순 탓이다.
장 차관은 ‘정말 학교별 자율성을 존중할지, 아니면 전수평가라는 가이드라인을 세운 건지 분명하게 해달라’는 질문에 “대통령 말씀이나 종합계획에서 마련한 거나 일제고사 또는 전수평가를 부활하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라며 “다만, 전수평가 앞에 지난 정부에서 폐지했다는 걸 강조하시면서 전수평가라는 용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업성취도 평가를 시행하는 데 있어 원하는 학교를 기반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MB 정부에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일제고사가 윤 정부 들어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게 현재의 논란이다.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올해 하반기 처음 시행됐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오는 2024년까지 평가 대상을 초3∼고2로 확대할 계획이다. 결과는 학교, 학부모, 학생에게 공개된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현재 중3과 고2의 3%를 표집해 실시한다. 개인에 대한 진단을 목적으로 하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와 달리, 국가 전반의 교육 수준을 파악하고 정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한 평가다. 개인의 학업성취도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만큼, 평가를 치른 학생에게도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
일제고사는 MB 정부에서 시행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이른다. 당초 표집 방식이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2008년 전수평가로 전환됐다. 평가 대상 학년은 전국의 모든 학생이 한날한시에 동일한 시험지로 일제히 문제를 풀었다. MB 정부 때는 초등학교 6학년도 시험을 치렀으나, 일률적인 전수평가에 따른 폐해로 비판이 일자, 박근혜 정부에서 제외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표집평가로 바꾸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아동학대·인권침해로 치달은 일제고사 폐해
일제고사 시행으로 전국에서 비교육적인 행태가 난무했다. 전교조는 일제고사 파행 사례집을 내기도 했다. 2011년 자료를 보면, 그 수준이 아동학대와 인권침해에 이르렀다.
경기도 수원시 한 초등학교는 0교시를 진행하고 문제풀이 수업을 했다. 이천시에는 일제고사 대비 7교시 수업을 진행한 초등학교도 있었다. 안산시 한 초등학교는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 문제집을 제작해 정규수업 시간에 교과서 진도를 중단하고 문제풀이만 시켰다. 고양시 한 초등학교도 우열반을 편성해, 아침과 방과 후에 부진아반을 운영했다. 특히 부진아반 운영은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제고사 파행은 수도권 일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경남 지역은 도내 88개 초등학교 중 25개교가 0교시를 시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상당수 초등학교가 부진아반을 운영해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충북 지역에서는 격주 토요휴업제가 시행 중이던 당시 ‘놀토’에도 학생들을 불러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를 시킨 초등학교도 있었다. 학교 차원에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라 금품을 제공하는 행태도 횡행했다. 충남 지역 한 학교는 학업성취도 평가 우수자와 학급에 수십만원을 시상하고 교사에게도 상품권 등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무분별한 보상으로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학습동기를 저해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교육청 차원에서 학교별 학업성취도 평가 대비를 관리하기도 했다. 수원시교육청은 학력 향상 지원 계획을 수립해 관내 모든 초등·중학교가 시행하도록 했다. 이 계획에는 교사가 전년도 기출 문제를 분석해 학생을 지도하고 모의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우수 학교와 학생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시됐다. 경북교육청도 교사를 대상으로 교육감 표창과 해외 연수 우선 선발 등을 내걸고, 일제고사 대비를 유도했다. 일제고사 성적으로 승진 가산점과 성과급을 지급하는 사례도 있었다.
안상태 전교조 강원지부 정책실장은 “강원도 양구에서는 학생들에게 자정까지 문제풀이를 시키는 학교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교사가 슬쩍 답을 알려준 사례도 있다”며 “다른 지역에서는 전 과목 만점을 받은 학생이 있었는데, 성적 조작이었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부 학교는 평균 성적을 올리겠다며 학습이 더딘 학생과 운동부 학생을 시험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안 정책실장은 “평가 시험을 보는 날에는 경계성 학생과 특수교육 대상 학생에게 체험 학습을 시켜 못 오게 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성적 관리 과정에서 인권침해까지 자행된 것이다.
당시 정부 주도의 줄 세우기는 노골적이었다. 교과부는 2010년 학교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보통’ 이상인 비율을 학교알리미에 공시했고, 2011년에는 공시 범위를 전년 대비 향상도로 넓혔다.
정부는 돈줄로 교육청에 일제고사 대비를 압박했다. 교과부는 2010년부터 일제고사 성적을 시도교육청 평가 지표에 포함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배분 기준에 반영했다. 일제고사 성적은 시도교육청 평가 항목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안전한 학교 환경 조성’과 ‘유치원·초등 돌봄 지원’ 항목보다 배점이 높았다. 정부의 압박은 교육청-학교-교사-학생으로 전이됐다.
정부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와 일제고사는 다르다고 하지만,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참여를 원하는 학교로 한정한다’는 정부 해명과 달리, 교육 현장에서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가 전수평가로 확대되고 있다. 개별 학교 의사와 무관하게 시도교육청이 관내 모든 학교가 시험을 치르도록 강제하는 상황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최근 관내 학교에 공문을 보내, 올해 시행되는 두 차례 평가 중 반드시 한 번은 참여하라고 안내했다. 올해 평가는 1차가 9월 13일~10월 28일, 2차가 12월 1일~내년 3월 31일이다. 원하는 학교만 참여해 전수조사가 아니라는 정부 설명에 어긋난다.
평가 참여 강제는 법정 분쟁으로 번졌다. 전교조 부산지부는 지난달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을 직권 남용으로 고발했다. 초중등교육법상 학업성취도 평가는 교육감이 시행하는 자치사무가 아닌 교육부의 국가 사무인데, 교육감이 전수실시를 강제하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 교육감은 2008년 MB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보수교육감을 중심으로 부산시와 같이 교육감이 나서,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평가 화하는 사례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
학부모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 수 있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시행하지 않는 데 대해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이같은 불안은 학교 측에 평가 시행을 건의하는 등 압박으로 이어진다. 정소영 전교조 대변인은 “‘옆 학교는 하는데 우리는 왜 안 하느냐’는 학부모도 생기게 된다”며 “평가 시행을 교육청이나 학교 자율에 맡겨도 학부모는 자녀 교육에 대해 압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자율은 허울 좋은 말뿐이고, 평가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학교가 성적을 자체 취합해 학생을 줄 세우고, 나아가 학교 간 비교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어느 학교 성적이 높은지 소문이 나고, 학생도 친구들과 비교하며 순위를 매기게 된다. 정 대변인 의원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성적이 공개될지 모른다”며 “가령 국회의원이 자료를 요구해서 공개될 수도 있고, 정부가 입장을 선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학교, 학부모, 학생에게 당사자의 성적만 제공해, 다른 학교나 학생과 성적을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 현장에는 MB 정부 일제고사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안상태 실장은 “우리는 아직 일제고사 망령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과거에 경험이 있는 만큼 당연히 우려를 제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 교육감이 학력 향상을 유인하는 수단으로 시험을 활용하겠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학교가 시험에 참여할 동기 부여를 강화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진다”며 “일제고사 부활은 권력자가 내리는 순간의 판단에 달린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리 경고음을 낼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과 교육감 말만 믿고서, 결과를 공개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정부는 학업성취도 평가 참여 확대를 위해 강제로 전수조사를 시행하거나 예산을 활용하는 등 노골적인 방법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 직간접적인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안 실장은 “학교 시스템은 수직적·관료적이다. 꼭 예산이 아니더라도 유인·강제할 방법은 많다”며 “교육청 회의에서 교육감이 학교별 결과를 두고 학교장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질책하면, 그 여파가 교사들을 거쳐 아이들에게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주호 장관이 일제고사 도입을 주도하는 등 MB 정부 교육정책을 총괄한 인물이라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MB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합류한 그는 대통령실 교육과학문화 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더니,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을 거쳐 이듬해부터 3년간 장관을 지냈다.
교육 현장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서울은빛초등학교 박세영 교사는 “자율이라는 말로 포장을 하려는 것 같다”며 “표집방식을 버렸다는 것이 이미 우려할 점”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현재의 표집방식으로도 충분하고, 전수조사의 폐해가 이미 밝혀졌는데도,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며 “자율적으로 학급별로 응시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나 교육청 단위의 압력이 들어올 때, 교사가 자율성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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