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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2일 화요일

[우리말로 깨닫다] 기쁘고 즐겁게 사세요

 [우리말로 깨닫다] 기쁘고 즐겁게 사세요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깨달음을 주는 말도 많습니다. 우리말에서 아주 기분이 좋을 때 쓰는 말은 기쁘다와 즐겁다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네 인생이 늘 기쁘고 즐거우면 좋겠습니다. 모두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범사에 기뻐하라는 말은 평범한 일에도 기뻐하라는 뜻이고 결과적으로 모든 일에 기뻐해야 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늘 기쁜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쁘다와 즐겁다의 의미 차이를 저에게 묻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다른 질문과 달리 이 질문을 제게 하는 사람은 대부분 답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답을 안다는 점을 내세우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 실력을 시험해 보려고 하는 듯도 합니다. 아무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둘 다 좋은 감정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 표현하는 말이기는 한데 어딘가 차이가 있습니다. 잘 살피면 범위를 달리하는 부분이 보입니다. 이런 유의어는 많은 경우에 동의어와 차이 없이 쓰입니다. 정확한 용어로 보면 동의어는 엄밀히 말해서 없습니다. 완전히 같은 말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동의어라는 용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의어는 사실 모두 유의어인 셈입니다. 동의어 중에는 부분 동의라는 말도 있는데 유의어가 바로 부분 동의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유의어는 같은 말이 아니라 비슷한 말이고, 비슷한 말은 사실상 다른 말입니다. 따라서 유의어를 논할 때는 공통점 못지않게 차이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기쁘다와 즐겁다는 같은 상황에서 쓸 수 있지만 분명한 차이도 있습니다.

기쁘다와 즐겁다를 구별하는 가장 명확한 문장은 논어의 첫구절의 예입니다. 우리가 보통 학이편(學而編)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 기쁠 열이 나옵니다. 그리고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 自遠訪來 不亦樂乎)’에 즐거울 락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기쁜 것은 배우는 것이고, 즐거운 것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즉 기쁜 것은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입니다. 배우는 것은 기쁨입니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때로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좋은 스승에게 배울 때 우리는 참을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희열(喜悅)은 기쁨의 뜻이 반복된 말입니다. 기쁘고 또 기쁜 일입니다.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속에서 익을 때 더 기쁜 것입니다.

즐겁다는 기본적으로 혼자만의 감정이 아닙니다. 더불어 함께의 감정입니다. 논어에서는 붕우를 이야기했습니다. 벗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한자를 좋아합니다. 월(月)은 여기에서 육(肉)을 의미합니다. 몸은 곧 나입니다. 내 몸이 하나 더 있는 것이 바로 벗입니다. 벗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슷한 또래일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 함께 있고 싶은 사람,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은 모두 벗입니다. 그 사람이 멀리에 있었다면 무척 그리웠겠지요. 물론 만나지 않아도 늘 마음으로 함께하는 존재이지만 만나면 몸과 몸이 가까이 있기에 더 좋습니다. 그때의 감정이 즐거움입니다. 저는 이 감정을 관계와 사회성의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는 느끼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그런데 종종 이 두 감정이 섞입니다. 그래서 두 감정의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누구와 함께 있어서 생긴 감정은 즐거움이지만 그 때 내 속에도 기쁨이 넘치니 즐거움과 기쁨은 통합니다. 나는 혼자 있으니 기쁜 감정일 테지만 마치 누구와 함께하는 느낌이라면 즐거움이 됩니다. 노래를 듣고, 책을 읽을 때도, 사랑하는 이를 생각할 때도 즐겁습니다. 

기쁨이 곧 즐거움입니다. 저는 우리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기 바랍니다. 혼자서도 기쁜 하루하루가 되고, 이왕이면 함께하는 즐거운 나날도 되기 바랍니다. 배워서 기쁘고, 함께하여서 즐겁다는 그 말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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