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35) 트럼프 리스크?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4.11.08. 05:02:31
지구촌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공화당은 정권교체뿐만 아니라 상하원도 석권했다. '트럼피즘'의 위세가 맹위를 떨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북미정상회담 재개 여부로 쏠린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내내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7월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나는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며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제 북한은 다시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며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나는 그들과 잘 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대선 후보 당시에도 김정은과의 만남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었다. 이를 두고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측에서 '친북주의자'로 몰아붙여도 트럼프는 소신을 꺾지 않았었다. 그리고 숱한 화재와 논란 속에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김정은과 세 차례나 만났었다.
이쯤 되면 북미정상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 의지는 트럼프의 소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의 측근들도 취임 직후부터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는 임기 초반부터 북미정상회담을 향한 수준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단단히 토라진 김정은 정권이 이에 호응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이 또 하나의 카드를 쥐게 될 공산은 커졌다. 2019년부터 '남방외교'의 문을 굳게 닫고 '북방외교'로 방향을 튼 조선(북한)은 북중 혈맹관계의 회복을 거쳐 현재에는 조정기에 들어갔다. 또 러시아와는 전략적 동맹 관계 수립을 향해 치달아왔다.
이를 지렛대로 삼아 조선은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도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북중 관계의 냉기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브 레터"를 주고받았던 트럼프의 복귀는 김정은 정권이 전략적 그림을 다시 그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트럼프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묵인 받으면 핵보유국 지위를 굳힐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정강정책에서 비핵화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트럼프가 대선 기간 내내 "핵보유국 지도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한 것도 조선의 기대치를 높이는 배경이 될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정상회담을 타진해오면 김정은 정권은 '비핵화 요구 제외'를 정상회담 성사의 핵심적인 조건으로 제시할 것이다. 이에 트럼프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한 등 북핵 동결을 대가로 이를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군비통제가 북미관계의 핵심 의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의 귀환으로 가장 난처한 입장에 몰릴 쪽은 윤석열 정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 정부는 김정은을 '악마화'하는 데에 여념이 없으나 정작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한다. 윤 정부는 김정은 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트럼프는 '잘 지내야할 상대'로 본다.
또 윤 정부는 '가치 동맹'을 역설해왔지만 트럼프는 '돈벌이'를 중시한다. 윤 정부는 한미(일)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를 성과로 내세워왔지만, 트럼프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윤 정부는 '수출'에 더더욱 의존하려고 하는데 트럼프는 '관세 폭탄'을 예고하고 있기에 경제적 불안도 커질 것이다. 윤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승전'을 돕겠다고 하는데 트럼프는 '종전'을 도모하겠다고 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차이점이다.
과거에도 한미간에 대북 인식 및 정책을 두고 엇박자는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번처럼 극심하고도 뒤바뀐 엇박자를 예고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특히 트럼프의 기질과 '충성파'로 채워질 그의 참모진으로 고려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윤 정부의 입장을 존중할 것 같지도 않다.
이에 따라 남북미 삼각관계는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남북관계 최악-한미관계 결속-북미관계 와해'로 규정할 수 있는 현재의 국면이 조정기에 접어들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북일정상회담을 꾸준히 타진해온 일본이 트럼프의 재집권을 계기로 이에 탄력을 붙일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정부 내내 추구해온 대북 강경 기조의 한미일 결속이 '맏형'에 해당하는 미국의 정권교체로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낡은 구호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재정정책을 통한 내수 진작에 힘 써야 한다. 역효과가 입증된 대북 전단 살포 방조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면서 조선의 호응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쌍중단'은 남북관계의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 트럼프 2기를 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나 파병 검토를 중단하고 국제사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휴전·종전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은 모두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또 국익과 민생, 그리고 국민 안전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