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남의 갑을,병정]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위험천만한 우크라이나 전쟁 참관단 파견 논의
24.11.05 06:59ㅣ최종 업데이트 24.11.05 06:59
지난 10월 30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미국 워싱턴 D.C.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과 한미안보협의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에 관하여 "(한국군) 파병은 전혀 고려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면서 "파병 외에 모니터링단이나 전황분석단 등은 군 또는 정부가 앞으로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몇몇 기자가 모니터링단 등을 파견하는 것도 국회 동의가 필요한 파병에 속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법에 보면 소규모로 인원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장관이 판단하게 돼 있다"고 답했다.
김용현 장관이 말한 '법'은 법률이 아니라 '국군의 해외파병업무 훈령'이다. 우리 헌법은 국군을 외국에 파견할 때에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게 되어있다. 이러한 헌법 조문에 기초한 해외파병 관련 법률은 유엔 평화유지군(PKO)에 참여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해 둔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참여에 관한 법률'이 유일하다. 물론 이 법에서도 헌법에 따라 파병 시에는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만든 훈령에는 헌법과 상위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파병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국방부는 파병을 '부대단위 해외파병'과 '개인단위 해외파병'으로 임의 구분한 뒤, 부대단위 해외파병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개인단위 해외파병은 국회의 동의가 없어도 국방부 장관의 정책 결정만 있으면 된다고 규정해 두었다.
훈령상 개인 파병은 국방부가 국제연합(UN), 지역안보기구, 우방국 등으로부터 군 감시단, 참모장교, 연락장교, 훈련교관 등의 파병을 요청받거나, 자체적으로 파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이를 검토해 결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처럼 파병의 전제조건으로 국회 동의를 못 박아 둔 헌법에도 불구하고 장관이 제·개정할 수 있는 중앙부처 훈령에 근거하여 국방부 장관이 스스로에게 임의 파병 권한을 부여하는 건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그 때문에 이 훈령에 따라 장관의 판단으로 소규모 파병을 할 수 있다는 김용현 장관의 발상 역시 위헌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 장관은 소규모 병력을 보내는 일을 파병이 아니라고 했지만, 훈령상 용어에 따르면 이는 명백한 '파병'에 속한다.
우방국의 외교적 협상 카드 무력화시키려는 북한 전략
우리 정부는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관여 정도와 러시아의 반대급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단계적 대응을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소규모 파병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에 군대를 보내는 목적은 김정은 정권의 체제 보장이다. 우크라이나전의 결과와 무관하게 자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체제 보장을 위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지금 북한의 체제 보장 전술은 중국, 러시아와 북-중-러 삼각 구도를 공고하게 형성하는 것이다. 지금껏 러시아와 중국은 전통적 우방 관계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일정하게 거리를 둬왔다. 북한이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을 높이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썩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과 대립하면서도 한편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깨기엔 아직 힘도 충분하지 않았고, 잃을 것도 많았기 때문에 역내 균형을 위해 북한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지 않을 정도의 우방 관계만 유지해 왔다.
북한 체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대북 제재다. 중국과 러시아가 죽지 않을 만큼만 도와주는 상황에서 북한은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시도했고 그 결과 북미대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북미대화가 실패한 후 대외적으로 북한이 확보할 수 있는 외교적 선택지는 전무해지다시피 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본격적으로 이탈하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교착상태가 지속되면서 러시아가 난처한 상황이 되길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 6월 북러동맹(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회복해 느슨했던 북-러 관계를 강화하고, 파병으로 전쟁 국면을 새롭게 만들면서 러시아와 채무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 북한의 전략은 우방국의 외교적 협상 카드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있다. 자기가 낼 카드가 없으니 남의 카드를 없애버리기로 한 셈이다. 북한이 파병으로 러시아에 확실한 채무를 안겨주는 방식으로 북-중-러 블록화의 1단계 스텝을 밟음에 따라 러시아의 외교적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장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블록화가 완성될 수 없다. 아직 중국이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러의 밀착화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실질적으로는 러시아가 전쟁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제 제재를 우회해 핵심기술, 부품 등을 지원하고 사실상의 무역 중개로 외화벌이 창구를 열어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지만 대외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물밑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비견될 새로운 안보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논의를 주고받고 있음에도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애매한 입장만 표하고 있다. 미국과 전면적 대결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아직 대내외적 한계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블록화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아쉬운 게 많은 러시아부터 끌어들이고, 계속해서 중국을 견인할 유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심할 것이나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위헌적 국방부 훈령부터 뜯어고쳐야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소규모 파병을 감행하는 것은 북한의 블록화 전략에 말려드는 일이나 다름없다.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일은 물자지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규모와 관계없이 공개적으로 '한국군 참관단'의 명목을 달고 타국 간의 전쟁에서 한 쪽으로 군대를 파견한다는 것은 우리가 러시아와 적대 국가라는 걸 공식 선포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러시아가 우리 국익에 반하는 북러동맹을 강화하고 북한과 군사적 밀착을 높여나가는 것과, 그로 인해 한국과 러시아와 공식적으로 적대국가가 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북한의 파병 속내에는 러시아가 한국과 완전히 손절하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길 바라는 바람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야 러시아를 확실한 아군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아직 강가에서 강을 건널지 말지 고민하는 모양새다. 대외적으로 북한 파병 문제를 부인하는 태도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반응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까닭일 것이다. 보이는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는 건 그러한 북한의 의도에 따라 러시아의 선택지를 줄여주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역내 긴장 관계를 높여 중국에 대한 북한의 협상력을 키워주는 효과도 낳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이 한 명이 가든 두 명이 가든 파병은 그 자체로 장래의 국가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소규모 파병은 북러의 채무 관계를 한국이 고착화해주고, 북한의 살길을 터주며, 나아가 더 위험한 도발을 감행할 배짱과 뒷배를 키워주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끈끈한 블록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스스로 이들이 밀착할 명분을 만들어 줄 까닭이 없다. 한미일-북중러의 블록화와 충돌을 기정사실로 예정하고,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미래로 전망하는 게 아니라면 윤석열 정부의 소규모 파병 가능성 언급은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로 남아야 한다.
타국에 군대를 파견하는 건 파견 규모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고도의 외교, 정치적인 행위다. 그곳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파병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건 타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 낳는 결과가 전 국민의 운명과 미래가 걸린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일을 5년 임기의 정부와 장관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게 만들어 둔 위헌적인 국방부 훈령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헌법이 정한 원칙에 맞게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파병이 국회 비준의 영역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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