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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5일 월요일

교수를 ‘씨’로 부르면 그토록 불편한가?

 교수를 ‘씨’로 부르면 그토록 불편한가?

  •  김병희
  •  승인 2024.03.2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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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은퇴하신 교수님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듣는 말이 있다. 호칭에 관한 문제다. 평생을 아무개 교수님이란 호칭을 듣다가, 어떤 자리에서 ‘아무개 씨’로 불렸을 때 그 호칭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는 것. 씨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자신이 진짜로 은퇴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말씀도 있었지만, 심한 경우에는 당혹감을 느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 모든 말은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전해지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호칭 하나에 뭘 당혹감까지 느끼느냐며 그분의 인품이 좁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크게 탓할 일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교수들 모두가 언젠가는 은퇴할 텐데, 은퇴 후에 누군가 아무개 씨라고 불러도 낯설게 느끼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다. 당혹감을 느낄 필요는 더더욱 없다. 교수에 존대격의 파생 접사 ‘님’ 자를 붙여 교수님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의 호칭이다. 교수 입장에서 보면 임용된 이후 평생 동안 어느 자리에서나 교수님이란 호칭을 들어왔을 테니까, 씨라는 호칭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나아가 ‘님’ 자도 빠져있으니 자신을 낮춰 부른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사람이 사람에 대해 씨로 부르는 것이 크게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목욕탕에서 옷을 벗으면 모두가 똑 같은 사람이다. 이런 이치를 생각하면 교수를 아무개 씨로 부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떤 경로를 거쳤든 간에 교수들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으며 교육과 연구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첫 직장부터 대학교수로 일한 사람도 있고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중간에 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 교수가 된 경로에 따라 교수의 종류를 공무원의 별칭에 비유해 둘로 나눌 수 있겠다.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해 처음부터 공무원이 된 사람을 늘 공무원으로 일한 사람이라고 해서 ‘늘공’이라 칭하고, 개방형이나 임기제 공무원처럼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을 ‘어공’이라 칭한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교수였던 사람을 ‘늘교’라 칭하고, 중간에 어쩌다 교수가 된 사람을 ‘어교’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절친으로 지내는 교수 친구의 사례도 있다. 한 친구는 금수저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유학을 떠나 아이비리그의 명문 사립대에서 박사를 받고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다 돌아와 한국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이 친구의 말이 걸작이다. “내가 금수저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나? 내 뜻과 무관하게 금수저 물고 태어났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반면에 한 친구는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의 집에서 태어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주경야독해 뒤늦게 교수가 됐다. 교수 채용 때도 12번 떨어지고 13번 만에 채용됐다. 두 친구의 공부 과정이 어쨌거나 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교수님 호칭을 들으며 사회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늘교’나 ‘어교’가 되지 못한 연구자도 있고, 불철주야 논문 쓰며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교수가 되지 못한 금수저 출신의 재야 학자도 있고 흙수저나 무수저 출신의 연구자도 있다. 세상은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기에 이런 저런 상흔(傷痕)을 남기는 듯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이러할진대 교수로 임용돼 한 시절 잘 보내온 교수들이 아무개 씨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토록 상심할 일은 아닌 듯하다.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해 연봉이 너무 낮다고 하소연할 필요도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교수는 회사원보다 연봉이 낮더라도 시간 부자로 살았으며 방학을 비롯한 소소한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던가?

호칭이란 이름과는 달리 살아가면서 얻는 개인에 대한 칭호이다. 상대의 나이나 사회적 직위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기도 한다. 사회적 직위 중에서 최적의 호칭을 불러주는 것이 호명하는 사람의 예의이겠지만, 전직 교수가 씨로 호명 받았다고 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낮춰 부른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씨(氏)를 성이나 이름 뒤에 붙여 그 사람을 대접해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씨라는 말에는 상대방을 높인다는 의미가 이미 담겨있는 셈이다. 그러니 정년 후에는 아무개 씨로 불리든 아무개 교수로 불리든 상관하지 말고 호칭에 둔감해지는 게 좋겠다. 과거의 교수 직함에서 언제까지나 헤어나지 못한다면, 자신이 ‘라떼’ 타령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봐야 한다.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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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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