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봄을 상징하는 절기인 우수(雨水)와 경칩(驚蟄)이 지났지만, 바람이 차갑다. 해마다 이맘때면 때아닌 한파가 불어닥쳐 사람들의 코끝을 시큰거리게 한다.
우리나라에 봄이 온다는 것은 한반도 북쪽의 찬 공기가 물러가고 남쪽의 따뜻한 공기가 올라온다는 의미다. 이때 두 공기층이 단번에 바뀌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밀고 당기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 때문에 날씨가 따뜻해졌다가 다시 추워지기를 반복한다. 한반도의 오래된 기후 특색이다.
우리 옛말에도 이를 보여주는 표현들이 많다. “2월 바람에 김칫독이 깨진다”는 속담도 그중 하나다. 시기적으로는 음력 1월부터 봄이 시작되지만 2월 바람이 칼날처럼 차갑다는 뜻인데, 지금이 딱 음력으로 2월 초입이다. 또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는 말도 있다. 보온성이 뛰어난 털을 가진 여우마저 눈물짓게 할 정도로 한반도의 봄바람은 매섭다.
이런 날씨를 두고 흔히 쓰는 말이 ‘꽃샘추위’다. ‘꽃+샘+추위’의 구조 속에는 “봄을 맞아 꽃이 피어날 즈음에 그 꽃들을 시샘하듯 일시적으로 불어닥친 추위”라는 의미기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무렵에 우리 주변에서는 꽃을 볼 수 없다. 샘을 부릴 꽃이 없으므로 꽃샘추위라는 말이 좀 생뚱맞다.
사실 요즘의 추위는 ‘꽃샘추위’보다 ‘잎샘추위’라는 말이 더 걸맞다. 잎샘추위란 말 그대로 “봄에 잎이 나올 무렵에 갑자기 추워지는 일”이다. 꽃을 샘하면 꽃샘이고, 잎을 샘하면 잎샘이다. 다만 보통은 꽃보다 잎이 먼저 나오므로 잎샘추위가 꽃샘추위보다 조금 더 이른 때의 추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꽃샘추위는 아주 익숙한 반면 잎샘추위는 낯설다. 그동안 신문과 방송에서 꽃샘추위라는 말을 주로 쓰고, 잎샘추위는 별로 쓰지 않은 탓이다. 이로 인해 대중도 잎샘추위는 모른 채 꽃샘추위라는 말만 쓴다. 그러나 없던 말도 아니고 품격이 떨어지는 말도 아닌 ‘잎샘추위’를 쓰지 않을 까닭이 없다. 시기상으로도 요즘의 추위를 가리킬 때는 꽃샘추위보다 잎샘추위가 더 바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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