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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2일 수요일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걸 왜 숨겼나

 

[정조준76]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걸 왜 숨겼나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6/13 [07:53]

지난 8일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부양한 다음 날,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준비하던 그 시각 북한군 수십 명이 중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11일 브리핑에서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북한군의 “단순 침범”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이 “경고 방송 및 경고 사격 이후 북상했다”라고 하였습니다. 

 

▲ 군사분계선.  © 국방부


합참 발표에서 특이한 건 이번 사건을 두고 ‘단순 실수’임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근거로 비무장지대에 수풀이 우거져 있어 군사분계선 표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 경고 사격 후 북한군이 즉시 북상한 점, 대부분 도끼와 곡괭이 등 작업 도구를 들고 있었던 점을 들었습니다.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이 실수인지, 의도적인지는 쉽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경고 사격 후 북상했다고 해서 실수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군의 대응을 보기 위해 일부러 넘어왔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북한군이 우리 군 동향을 파악하려고 일부러 군사분계선 근처를 돌아다니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작업 도구를 들고 온 점도 실수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사건 당시에 주된 무기는 도끼였습니다. 또 무장병력도 일부 섞여 있었다고 했으니 도끼와 곡괭이는 위장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의 교전수칙도 북한군의 행동이 실수냐, 의도적이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합참은 북한의 침범을 ‘실수’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을 변호(?)하는 걸까요? 합참이 북한 대변인인가요?

 

나경원 등 국힘당 인사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북한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공격합니다. 이번에 문 전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 회고록을 펴내자 “지금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진심이라고 믿나”라며 또 ‘북한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만약 문 전 대통령이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고 전쟁 의지만 있다’고 했다면 이런 공격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국힘당이나 우리 군은 ‘북한은 호전세력이고 악의 세력이다.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고 있다. 우리를 기만한다’라고 하는데 이런 주장과 의견이 같으면 공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등 국힘당이나 군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대뜸 ‘북한의 위장 선전에 넘어갔다’라고 공격합니다. 

 

그런데 지금 합참이 북한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북한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문 전 대통령과 같은 행태 아닌가요? 언론도 이상한지 “긴장감을 높이려는 의도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합참과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성준 실장 브리핑 때 기자들이 ‘하필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던 9일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단순 침범으로 보기 어렵지 않냐’고 지적하자 “공개한 것 외에 다른 정보들이 있다”라며 더 질문을 못 하게 막은 것도 이상합니다. 

 

이 밖에도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이 합참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한군 규모를 보도하는데 ‘10여 명보다는 많은 숫자’, ‘10여 명’, ‘십수 명’, ‘수십 명’, ‘20~30명’ 등 중구난방입니다. 대체 합참 관계자가 여러 명이었던 건지, 아니면 기자마다 다르게 알아들은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시 북한군이 몇 명이나 침범했는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수십 명의 무장 군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면 이건 비상사건입니다. 

 

군은 보통 서해에서 사격훈련을 할 때도 몇 발 쐈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는데 왜 사람 수를 정확히 말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리고 10여 명과 20~30명은 한눈에 봐도 다를 텐데 이걸 헷갈릴 수가 있나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북한군이 침범한 사진이나 CCTV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또 이 사건을 왜 이틀이 지나서 공개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사건 전후 일들을 다시 정리해 봅시다. 

 

● 6~7일 탈북자 단체가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바다를 통해서도 페트병을 북으로 보냄. 

● 8일 밤 9시경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살포. 

● 9일 오전 대통령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당일 실시하기로 결정. 

● 9일 오후 12시 30분쯤 북한 병사 ‘남침’. 

● 9일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대북 확성기 방송.

● 9일 밤 9시 46분경 대남 오물 풍선 살포. 

● 9일 밤 11시 넘어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담화.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

● 10일 오전 합참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겠다고 발표.

● 11일 합참이 북한 병사 ‘남침’ 공개하면서 북한을 옹호하는 해설.

 

만약 용와대와 합참이 자신감에 넘쳤다면 원래 하던 말대로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압도적 대응’을 했을 것이고 북한이 대북 확성기에 사격이라도 했다면 ‘원점 타격’, ‘2~3배 대응’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이런 모든 게 철저히 준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9일 오전에 NSC 열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기로 결정한 직후에 북한 병사가 ‘남침’을 해서 경고 사격으로 대응했다면 당연히 곧바로 발표했어야 합니다. ‘북한이 무장 병력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침했지만 경고 사격으로 격퇴했다’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틀이나 묵혀놓고 뒤늦게 발표한 걸 보면 용와대와 합참이 엄청나게 ‘쫄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론도 이틀이나 지나서 공개한 걸 두고 “긴장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필요성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남북 사이에 너무 긴장이 고조되어 윤석열 정부가 감당을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죠. 

 

군이 ‘쫄았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습니다. 국방부가 8일 토요일 자정 무렵 긴급 지시를 통해 국방부 본부와 모든 부대 장병 및 군무원에게 일요일 정상 근무를 명령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군은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통보를 늦게 확인해 지각한 사람, 어린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 데리고 출근한 간부는 물론이고 직업군인 부부 결혼식에 하객으로 와야 할 군인, 군무원들이 몽땅 빠지면서 하객이 없어서 결혼식을 망친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고작 풍선 때문에 일요일 정상 근무를 시키는 게 말이 되냐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휴일에 전 군을 비상 소집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2시간만 진행한 것도 군 지휘부가 북한군 수십 명이 ‘남침’한 것을 전쟁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이라면 2시간 방송도 사실 합참이 목숨을 걸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진이나 영상이 없으니 정말 방송을 하기는 했는지도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워낙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것에 진심인 윤석열 정부인데 대북 확성기 방송처럼 문재인 정부가 못한 것을 자신이 한다면 더 떠들썩하게 홍보했을 텐데 이상합니다. 

 

대북 확성기가 최소 10킬로미터까지 들려야 하는데 불량품이라 7킬로미터까지 들린다고 하니 방송을 했어도 북한에서 제대로 들을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혹시 출력을 일부러 낮춰서 방송했는지, 아니면 확성기 방향을 남쪽으로 하고서 방송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국가안보실 제1차장에 김태효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태효는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대외전략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남북 비밀 접촉 자리에 나갔습니다. 여기서 그는 북한 측에 돈봉투를 건네며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이걸 보면 이번에도 남측에서 보면 ‘대북 확성기 방송’이지만 북측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런 건 김태효, 이명박 시절부터의 전통입니다. 

 

한편 통일부는 최근 대북 전단 관련 탈북자 단체와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대북 전단에 관한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으며 이번 간담회에서 살포 자제 요청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입장 변화가 없는데 굳이 간담회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막았다며 공격했기에 이제 와서 자기들도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명분이 없으니 대놓고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 상황을 이야기하며 간접적으로 대북 전단을 날리지 말라는 암시를 하겠다는 것이겠지요. 

 

지난 11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대사가 대북 전단 살포를 두고 “우리는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아니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이해한다”라고 하면서 “그 측면에 대해 약간의 주의를 하기를 희망한다”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게 미국의 지침이겠지요. 통일부가 탈북자 단체를 만나서도 같은 얘기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모호하고 수세적인 대응입니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의문입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11일 “대북 전단 살포 예상 지역에 즉시 특별사법경찰관들을 출동시켜 순찰하고 감시를 강화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는데 용와대나 국힘당이 대대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것도 이상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북한에 동조하는 건데 왜 비판하지 않는 걸까요?

 

애초 윤석열 정부는 ‘선제타격’, ‘2~3배 대응’, ‘압도적 대응’, ‘즉·강·끝’, ‘감내하기 힘든 조치’ 같은 대북 기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주장대로 북한을 힘으로 압도해서 이겨야 국민도 승리감을 가지고 안도하며 장병도 다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거꾸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남침’을 해도 실수라고 변호해 주고, 대북 확성기 방송도 2시간만 하고 공개도 하지 않고, 재개도 하지 않습니다. 합참은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보도하지 말아 달라는 얘기까지 합니다. 김여정 부부장 담화를 두고도 ‘타격’이라는 표현이 없으니 수위가 낮다고 평가를 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조와 완전히 다릅니다. 북한과의 대결에서 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쫄아’ 있는 건가요?

 

종합해 봅시다. 

 

윤석열 정부는 입으로 별의별 ‘뻥’을 다 칩니다. 자신감은 영화 속 마동석 같습니다. 아주 자신만만합니다. 그런데 실제 행동은 물에 빠진 쥐, 겁에 질린 쥐새끼 같습니다. 이런 정부를 두고 국민은 ‘나라가 망해도 이렇게 망하나’ 하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이러다 진짜 전쟁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습니다. 지진 때문에 재난 문자가 날아와도 가장 먼저 ‘전쟁 났나?’ 하고 놀랍니다. 폭죽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일상을 벌벌 떨면서 사는 비참한 상황입니다.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대통령은 외유나 다닙니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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