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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1일 화요일

대북 확성기 방송, 정말 했을까?

 


[정조준75] 대북 확성기 방송, 정말 했을까?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6/11 [20:25]

북한이 8일 밤 대남 풍선을 살포하자 대통령실이 9일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즉각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군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방송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수상쩍은 대북 확성기 방송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일단 방송을 2시간만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합참은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있다”라면서 북한의 반응을 보고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정부는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조치에 착수하겠다. 확성기 재개를 배제하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가장 두려워한다며 무슨 ‘게임 체인저(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무기)’처럼 묘사했습니다. 전방의 북한군 장병들이 확성기 방송을 듣고 심리적 타격을 입고 고통에 빠져 사기가 떨어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2시간 방송만 하고 중단했다니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재개’를 한다고 하면 최소한 예전과 같은 방식과 수준으로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루 10~15시간씩 했다고 합니다. 확성기 방송을 2시간만 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고 정말 ‘기상천외한 방식’입니다. 

 


또 하나, 진짜 방송을 하기는 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언론은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무척 고통스러워한다면서 이게 무슨 필승 전략인 것처럼 소개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군에서 확성기 방송 장면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면서 우리 국민에게 “봐라, 우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제 다시는 오물 풍선이 안 날아 올 거다”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어디에서도 확성기 방송 영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저 군이 확성기 방송을 했다니 그랬나보다 하고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2016년 국군심리전단이 확성기 성능 기준을 정할 때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방송 내용을 명료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웅웅 울리는 소리만 들리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방송 효과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확성기 방송을 했는지, 확성기 방향을 남쪽으로 했는지, 북쪽으로 했는지 영상이라도 봐야 알 것 같은데 군에서는 훈련 영상만 공개하고 실제 방송한 영상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확성기 방송이 군사 기밀이라서, 예를 들어 확성기 위치가 드러날까 봐 방송 장면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영상 촬영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 문제는 영상 편집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군에서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서 언론사에 공개하면 됩니다. 그간 군은 필요할 때마다 군사훈련 장면 등을 언론사에 배포해 국민을 안심시키려 했는데 이번에는 이 중요한 사안을 왜 공개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이유가 오리무중입니다. 

 

왜 군을 믿지 않고 영상 공개를 요구하느냐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이번에 군이 사용한 확성기가 불량품이라서 과연 제대로 방송한 게 맞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10일 자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2018년 감사원 감사와 국방부 성능 재평가에서 대북 확성기의 가청거리가 최대 7킬로미터밖에 안 되며 군에 확성기를 납품한 제조업체 대표는 서류 조작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합참은 확성기가 국방부 성능 평가 19회 중 17회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불량품을 폐기하지 않고 군이 그대로 보관해 오다 이번에 그대로 재사용했다고 합니다. 대북 확성기에도 국방 비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한 다음날인 10일 오전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이 정례 언론브리핑을 하였습니다. 기자가 방송을 2시간 만에 중단한 이유를 묻자 이 실장은 “군은 전략적·작전적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작전을 시행하고 있다”라며 직답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확성기 방송 후 북한이 또 대남 풍선을 살포했는데 방송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로봇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군의 입장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뭔가 궁색합니다. 자기들도 납득이 안 되지만 상부의 명령에 따라 그냥 중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 웃기는 발언도 있습니다. “장비의 휴식 등도 고려해야 하고 또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필요한 시간만큼, 필요한 시간대에 작전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껏 하루 10~15시간씩 가동하던 확성기인데 몇 년 창고에 들어갔다 나오니 갑자기 성능이 떨어졌다는 건가요?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게 후퇴했다고 난리인데 혹시 군대와 장비들도 후퇴한 건가요?

 

또 기자들이 ‘오늘도 확성기 방송을 계획하고 있느냐’고 질문하자 “작전 시행 여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라며 “현장에서 작전을 시행하는 장병들의 안전과 관련이 있으므로 혹시 (시행 여부를) 알게 되더라도 보안을 유지해 주기 바란다”라고 답했습니다. 무척 긴장하고 조심스러운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동안 군이나 정부가 이야기한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간 군은 대북 확성기 시설이 다 은폐되어 있고 심지어 차량 이동식 확성기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한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또 만에 하나 북한이 대응 사격을 하더라도 원점을 타격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이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첫날 대북 확성기 방송은 NSC에서 사전에 공개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루 만에 장병 안전을 위해 공개를 안 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습니다. 

 

겁먹은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의문이 풀립니다.

 

2시간 방송 전법은 그동안 없었던 ‘기상천외한 방식’입니다. 방송 장면을 공개하지 않아서 소리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스피커 방향이 어디였는지도 모릅니다. 2시간 동안 살짝 방송하고 숨은 느낌입니다. 마치 겁먹은 개가 고개를 내밀고 ‘컹’ 한번 외치고 개집으로 다시 들어가 숨은 것 같은 ‘찌질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고서 이상한 답변만 반복합니다. 뭔가 속 시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상천외한 방식’은 국민에게 통쾌함을 주지 못하고 어이없음과 의아함만 안겨줬습니다.

 

원래 ‘기상천외한 방식’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위력을 보여주어 기선을 제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군의 ‘기상천외한 방식’은 모르긴 몰라도 북한에 비웃음만 샀을 것 같은 찝찝한 모습입니다.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졌나 봤더니 “장병들의 안전”이라는 말에 속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병들의 안전”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두렵다’는 것입니다. 뭔가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도 자신감과 보복 의지보다는 방송 재개에 뒤따를 북한의 보복이 두려운 게 더 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보복에 대한 대응책이 없어서 그게 두려운 것 아닌가요? 그래서 ‘찌질하게’ 대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튜브 방송에서도 극우 인사들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2시간만 한 것을 두고 분개하면서 대통령과 군 당국이 북한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한 직후인 9일 밤 11시 넘어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해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새로운 대응’이 기존보다 더 강력한 대응을 의미한다며 긴장했습니다. 

 

오물 풍선, 대남 확성기 방송, 조준 격파 사격 등은 기존에 북한이 했거나 언급한 대응입니다. 이와 다른 ‘새로운 대응’이 뭔지 군이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합참 공보실장은 “기존과 약간 수사적 위협의 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며 발언 수위의 문제로 진단했고 정부 소식통은 “담화의 톤은 그리 강하지 않다. 조준 타격 등 강한 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수위를 조절해서 발표한 느낌”이라며 안심하는 투의 발언을 했습니다.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이걸 심리적으로 보면 지나치게 겁에 질려서 얼어있는 것입니다. ‘타격’이라는 말이 나올까 봐 ‘쫄아’ 있는 심리상태가 엿보입니다.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병행’할 시 ‘새로운 대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군은 확성기 방송을 안 하면 ‘병행’이 아니니까 ‘새로운 대응’을 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 오히려 안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거 문재인 정부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설마’ 하면서 안일하게 생각하고 뭉개다가 끝내 경을 친 적이 있습니다.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바람에 국민 불안이 더 커졌습니다. 말로는 ‘압도적 대응’을 이야기하는데 행동으로는 북한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이건 국민을 속이는 것입니다.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것 아닙니까?

 

이에 비해 북한은 100배 응징을 하겠다고 했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대남 오물 풍선을 보니 정말 대북 전단의 100배는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야기한 ‘2~3배 대응’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2시간 방송이 어떻게 2~3배이며 그게 어떻게 ‘압도적 대응’인가요?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고서 결국 윤 대통령은 김건희 씨 손을 꼭 잡고 해외 순방을 나갔습니다.

 

▲ 10일 투르크메니스탄에 도착한 윤석열·김건희 부부.  © 대통령실


이렇게 이틀 동안 정부가 보여준 것이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윤 대통령 부부의 해외 순방이 상징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 한국에서 전쟁 일으키고 자기는 비행기 타고 날아가 버리는 것 아닐까 싶어 착잡합니다. ‘런승만’이란 별명이 붙은 이승만이 연상됩니다. 국민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전쟁 위기, 불안함 속에 살아야 하고 정부의 ‘찌질한’ 대응으로 수치, 모멸감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이렇게 만든 자들은 해외로 도피해 버립니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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