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 승인 2024.02.22 06:52
- 호수 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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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관련 자료를 읽다 보면 이소사라는 여성을 마주칠 때가 있다.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장흥 지역에서 말을 타고 다니며 동학군을 지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가 하면 이소사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처형당한 여성 순교자의 이름에서도 보인다. 그밖에도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에 이르는 역사 기록에 최소사나 김소사처럼 ‘소사(召史)’라고 기록된 여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소사(召史): (흔히 성(姓)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쓰여)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인데,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이전에, 성(姓)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그러한 성을 가진 과부를 점잖게 이르던 말.’이라고 해 놓았다. 둘 다 제대로 된 풀이는 아니지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이 과부로 한정한 건 실제 용례와 맞지 않는다.
소사(召史)는 고려 때 기록부터 나오며, ‘조이’를 이두식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召史’라 쓰고 ‘조이’라 읽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자 표기대로 ‘소사’라 읽는 경우가 많아졌다. 옛날에는 여자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딸을 낳으면 그냥 조이라 불렀다. 딸이 둘이면 첫째 조이, 둘째 조이 하는 식으로.
13세기 말에 작성된 정인경(鄭仁卿)의 호적에 ‘一男信忠, 一女召史, 二女召史’라고 기록한 게 보인다. 첫째는 아들이라 신충(信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두 딸은 이름 없이 ‘召史’라고만 기록했다. 그러므로 ‘召史’는 아내나 과부가 아니라 아이와 성인을 포함하는 여자 일반을 통칭하는 호칭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召史’는 조선왕조실록에도 꽤 많이 등장하며, ‘小斤召史’로 표기된 것도 있다. 우리말로 풀면 ‘작은조이’, 즉 작은딸이라는 뜻이다. 역사 기록물에 여자 어린이가 기록될 일이 거의 없으므로 주로 성인 여성을 등장시킬 때 이름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아 ‘召史’라는 표기를 썼고, 그런 까닭에 국어사전 편찬자들이 낱말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위와 같이 풀이했을 것이다. ‘召史’가 ‘조이’의 이두식 표기였다는 걸 모르니 ‘조이’를 표제어에 올릴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고.
앞에서 소개한 정인경의 호적에는 ‘二男巴只改名信英, 三男巴只改名信和’라는 식으로 기록된 내용도 나온다. 둘째아들 파지를 신영으로, 셋째아들 파지를 신화로 고쳐서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파지(巴只)는 또 무얼까?
파지(巴只): <역사> 예전에, 궁중에서 서울 관청의 노비 중, 청소하는 일을 맡아보는 남자아이를 이르던 말. 처음에는 궁중에 출입하며 청소를 하였으나 1411(태종 11)년부터는 출입을 금하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나오는 풀이를 가져왔다. 역시 제대로 된 풀이가 아니다. 위 호적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 파지(巴只)는 어린 남자아이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양반가에서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파지라고 하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정식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양인이나 천민 집안에서는 이름 없이 그냥 파지라고만 불렀을 것이다. 궁중에서 청소를 맡아보던 남자아이들은 대개 노비 출신이었을 테고, 그러니 따로 이름 같은 게 있을 리 없어 ‘巴只’로 기록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걸 마치 궁중에서 사용하던 용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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