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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5일 수요일
강남 구치소 빈땅과 아파트…욕망에 흔들리는 정치
[2022 더 왼쪽으로] 토지임대부주택 확대를
옛 성동구치소 이전 두고 타오르는 욕망
토지임대부 반대 주민 민주당 부화뇌동
2030청년·무주택자는 어떤 아파트 더 원할까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2021-12-15 17:02:15 수정2021-12-15 17:43:47
대통령선거가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돼야 한다’는 이유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유독 넘쳐나는 요즘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등으로 평가절하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중의소리는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22 더 왼쪽으로’는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진보적 대안을 조명해보는 기획이다. 연말까지 몇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할 의제와 주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세번째 기획으로 ‘토지임대부주택’ 시리즈를 2개의 기사로 보도한다.
① 강남 구치소 빈땅과 아파트…욕망에 흔들리는 정치
② 구치소 빈땅에서 꾸는 뉴욕 ‘배터리파크시티’ 드림
지난 3일 오후, 송파구 가락동 옛 성동구치소 부지 인근에 주민들이 걸어둔 플랑카드에 서울시와 SH공사를 규탄하는 글이 적혀 있다.ⓒ민중의소리
‘거짓말 하는 서울시, 이곳에서 함께 죽자’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송파경찰서 사거리. 혈서를 연상케 하는 글씨체로 인쇄된 플랑카드가 곳곳에 걸렸다. 주민들은 오세훈 시장을 향해 ‘이곳에서 함께 죽자’고 한다.
‘옛 성동구치소 개발계획, 원안대로 이행하라’
‘함께 죽자’고 적힌 플랑카드 맞은편 문구다. 오 시장이 옛 성동구치소 부지 개발계획을 바꾸려 하자 주민들은 반대한다. 주민이 원하는 원안이 무엇이고 오 시장 수정안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구치소 부지가 10억원 훌쩍 넘는 금싸라기 아파트 단지가 될지, 3억원짜리 주거복지형 토지임대부주택이 될지, 기로에 놓였다. 둘 사이엔 한국 부동산 정책을 ‘더 왼쪽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옛 성동구치소 부지, 어떤땅?
옛 성동구치소는 지하철 3호선 오금역 3번 출구에서 직선거리로 123m 떨어져 있다. 처음 구치소가 들어섰던 1977년에는 논밭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 동네였지만, 44년이 지난 지금은 3호선과 5호선을 끼고 있는 초역세권 아파트 부지다.
2005년, 서울시는 성동구치소 이전을 결정했다. 구치소에서 4km 정도 떨어진 문정동 당시 ‘비닐하우스촌’에 법조타운을 만들고 구치소를 이전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비닐하우스를 법조타운으로 만드는 데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땅을 수용하고, 보상을 마치고, 부지를 조성한 뒤, 구치소를 건축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실제 구치소 이전 완료는 계획 수립 12년 뒤인 2017년에야 끝났다. 이전한 성동구치소는 서울동부구치소로 이름을 바꿨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독방에 머물며 ‘황제 수감’ 논란을 빚었던 바로 그곳이다.
2017년, 구치소가 빠져나가면서 축구장 11개 크기 부지(2만3,800평, 78,758㎡)가 빈땅이 됐다. 개발을 어떻게 하는게 최선인지 백가쟁명식 의견이 나왔다. 워낙 입지가 좋은 탓에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부지 전체에 아파트를 지으면 2,500세대 이상 대단지를 공급할 수 있었다.
2018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타협안을 제시했다. 부지 일부에 주민체육시설, 청년 창업타운, 구치소 역사성을 감안해 감시탑 같은 구조물 보존구역을 조성한 뒤, 남은 땅에 아파트를 짓자는 안이었다. 박 전 시장 안에 따르면 아파트 지을 땅은 ,축구장 5개 정도(1만3,241평, 43,697㎡)로 줄어든다. 2,500세대가 1,300세대로 축소된다. 박 전 시장은 이 부지를 민간 건설사에 매각해 힐스테이트나 푸르지오, 래미안 같은 민간 아파트 1,300여 세대를 짓자는 구상을 검토했다.
국토교통부 생각은 달랐다. 박 전 시장 의견대로 주민체육시설 등은 만들되, 축구장 5개 넓이 아파트 부지 일부만 건설사에 팔자는 의견이었다. 5개 중 3개 규모(700세대)를 민간건설사에 팔고, 나머지 2개 면적에는 ‘신혼희망타운(600세대)’을 조성하자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혼희망타운은 민간분양이 아니라 공공분양의 일종이다. 분양가가 민간분양보다 싸다.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신혼부부에게만 청약 자격이 주어진다. 주택마련 기회를 신혼부부에게 많이 줘 출산율을 높이는 출산장려정책이자 2030세대를 지원하는 청년정책이다.
2019년, 성동구치소 개발은 박 전 시장과 국토부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결론 나는 듯 했다. 박 전 시장 의견이었던 보존구역은 없애고, 국토부 의견이었던 신혼희망 타운 조성이 반영됐다.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계획은 ‘전면수정’ 쪽으로 쏠리고 있다. 주택을 공급할 축구장 5개 규모 부지에 반값아파트라 불리는 토지임대부주택이 들어설 공산이 커지고 있다. 땅은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분양가에서 토지비가 제외된다. 구치소 부지에 일반분양 아파트는 10억원을 훌쩍 넘어서겠지만, 토지임대부 아파트 분양가는 3억원 선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오세훈은 ‘하자’, 민주당은 ‘안된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김헌동 경실련 건설부동산개혁본부장을 SH사장으로 임명했다. 김 사장은 지난 20여년 간 ‘부동산 거품빼기’에 앞장서온 대표적 시민사회 인사 중 한 명이다. 토지임대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꾸준히 밝혀왔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주택’을 강남에 지어 분양가 3억원짜리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공언했다.
주민들이 반대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3억원짜리 신축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는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구치소 바로 옆 래미안파크팰리스 한 주민은 “집값 하락이야 불 보듯 뻔한 것”이라 말했다. 주민들 반대는 격렬했다. 4천명에 육박하는 주민들이 탄원서를 제출했고, 송파구 관내에 ‘이곳에서 함께 죽자’는 플랑카드를 붙였다. 송파구청에 몰려가 차량 시위도 벌였다. 구치소 철거 현장 입구를 점거하고 공사차량을 봉쇄했다. 그사이 탄원서에 동참한 주민은 4천명에서 1만1천명으로 3배 늘었다. 지나치게 오른 집값은 잡아야 하지만, 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부분 비슷한 인식이다. 주민들은 700세대 규모는 유명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와 박 전 시장 의견 혼합안을 선호한다. SH공사는 개발계획을 세우며 여러차례 주민 공청회를 가졌다. 공청회에서 설명한 안이 바로 혼합안이다. 주민대책위 이주민 비상대책위원장은 “오세훈 시장은 이미 주민들과 합의했던 원안(민간아파트 분양)을 진행해 행정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여론은 정치를 좌우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역 정치인이 부화뇌동했다. 주민을 설득하기 보단, 여론 뒤에 숨었다. 민주당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여러차례 ‘원안 추진’을 강조했다. 지난 5월 오 시장과 면담에서도, 9월 구 간부회의에서도“주민과 약속이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 잡겠다’고 강조하던 여당이지만, 정작 소속 구청장은 주택 시장 안정 효과가 분명한 토지임대부주택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송파구의회 구의원 26명 중, 민주당 소속이 14명이다. 과반을 넘어선다. 하지만 ‘토지임대부 주택 공급 반대 건의안’은 지난 9월, 만장일치로 구의회를 통과했다.
야당 오세훈 시장은 토지임대부주택 건설을 추진하는데, 여당 지역 정치인들이 계획 무산을 압박하는 꼴이다.
경실련 김성달 부동산개혁본부 국장은 “송파구는 물론 강남구 역시 구청장이 민주당 아닌가. 하지만 가격안정용 공공주택 공급은 대놓고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 당 이재명 후보도 토지임대부 정신이 바탕인 기본주택을 주창하는데 여론 눈치보며 반대하는 건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값 안정화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송파구청에 수차례 문의했으나, 구청장은 끝내 답변 하지 않았다.
지난 3일 오후, 송파구 가락동 옛 성동구치소 부지 인근에 주민들이 걸어둔 플랑카드에 서울시와 SH공사를 규탄하는 글이 적혀 있다.ⓒ민중의소리
오세훈 잇속 챙기기 우려는 왜?
서울시는 성동구치소 외에 토지임대부주택 공급 가능 부지 100여곳을 전수조사중이다. 서초구 성뒤마을, 강남구 구 서울의료원 부지, 대치동 세텍부지, 수서동 공영주차장 부지 등이 대표적이다. 강남·서초·송파, 이른바 강남 3구 주요 부지에 토지임대부가 대규모로 공급되면 시장에 미치는 파급은 만만치 않다. 집값 안정에 중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오 시장 역시 정치인이다. 서울시장 재선, 이후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민주당 구청장이나 구의원보다 여론에 더 민감한 처지다. 당장 7개월 뒤 선거가 있다. 그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토지임대부주택 대규모 공급에 나설수 있을까. 오 시장이 김헌동 본부장을 SH공사 사장에 앉힌 이유가 ‘대규모 공급’을 염두에 둔 포석일까.
토지임대부주택은 결국 소규모 시범사업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강남에 3억원 아파트를 공급했다’는 치적은 챙기고, 대대적 공급은 머뭇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임대부주택은 그간 한국 사회의 주택공급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라며 “세심한 계획과 오랜 의견조정이 필수인데, 임기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장이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나”라고 잘라 말했다.
선거결과를 지켜보자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시 공공주택과 관계자는 “모든 사업부지를 대상으로 어떤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재검토하고 있다. 내년까지 세부 계획이 발표되긴 힘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도하려는 욕망과 그 욕망에 굴복한 정치가 무주택자들을 배신해왔다. 한국 사회 부동산 정책이 그간 ‘더 왼쪽으로’ 가지 못한 이유다.
12억 고가 아파트, 무주택자 감당 될까
과거 자산형성 프레임 변화에 주목해야
정치의 배신에는 무주택자의 기대도 영향을 미친다. 집 가진 사람들이 가격 하락을 우려한다면, 무주택자들은 집값 상승에 올라타려는 욕망이 있다.
토지임대부주택은 아직 현실화 하지 않았다.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강남 아파트 3억원’ 구호는 매력적이지만 내집에서 발생하는 시세차익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은 가장 큰 논란 거리다. 어떻게든 마련하면, 집이 돈을 벌어주지 않겠냐는 무주택자의 기대에 반한다.
올 초 통과된 주택법에 따르면 토지임대부를 분양 받은 사람은 SH나 LH공사에만 되팔 수 있다. 되파는 가격은 시세가 아니다. 최초 분양가가 기준이다. 최초 분양가에 물가상승률을 곱한 금액 만큼만 집값 상승분으로 인정한다.
올해, 구치소 부지에 토지임대부아파트를 공급한다고 가정해보자. 김헌동 신임 SH사장의 공언대로, A씨는 3억원에 분양을 받았다. A씨가 10년 뒤 집을 팔때는 시세와 무관하게 3,180만원(3억×연 물가상승률 1.06%×10년)만 더 받는다. SH는 3억3,180만원을 A씨에게 주고 매입한 뒤, 행정 비용을 더해 3억4천만원에 다시 분양한다. 10년 뒤 주변 아파트 시세가 얼마일 지 알 수 없지만, 저렴한 주택을 시장에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다.
무주택자가 시세차익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집은 사는곳이기도 하지만 든든한 노후대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구치소 부지에 토지임대부주택이 아닌 일반 아파트가 들어온다면, 그곳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번엔, 주민과 민주당 지역정치인 요구대로 토지임대부 대신 민간 건설사 아파트를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분양가는 최소 12억원(30평형, 85㎡)을 넘어설 전망이다. 토지비는 평당 4,100만원이고 건축비는 평당 664만원이다. 토지비와 건축비를 합한 평당 분양가는 최소 4,764만원이다. 30평형(85㎡, 25.7평)기준 분양가가 12억2천만원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토지비는 지난해 10월 구치소 부지 감정평가 결과를, 건축비는 2021년 국토부 공시를 기준으로 했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면 분양가는 1~2억원 더 올라간다.
30대 B씨가 천만다행, 구치소 부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고 치자. 12억원 아파트 계약금만 1억2천만원이다. 적금 깨고, 부모님께 손 벌려 어찌어찌 계약금을 마련한다 해도 10억8천만원을 대출받아야 한다.
현실에선 금융 규제 때문에 10억8천만원을 대출 받을 수도 없지만, 가능하다고 해보자. 10억8천만원을 연 4%로 30년간 나눠 갚으면 한달 이자와 원금 상환금만 516만원에 달한다.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해보는 단순한 계산이다. 2030 청년은 고사하고, 무주택 4050 맞벌이 가구가 월 500만원 넘게 부담하며 이 아파트에 들어갈 엄두를 낼 수 있을까. 부동산 민심이 괜히 악화되는게 아니다.
2030 청년과 무주택자들은 어떤 아파트를 더 원할까. 입지 좋은 단지가 3억원에 분양되지만 시세차익을 누릴 수 없는 토지임대부아파트일까. 시세차익은 누리지만 월 516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고가 아파트일까.
과거 토지임대부주택을 과감하게 확대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집 있는 사람들의 집값 하락 우려에 더해 집 없는 사람들의 자산 형성 기회를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작용했다.
하지만 과거 프레임이 지금 한국사회에 적용될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집을 통해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불평등의 골은 지금이 가장 깊다. 시세차익을 포기하더라도 좋은 입지의 저렴한 아파트에 살고 싶은 여론 역시 지금이 가장 높다.
2030청년과 4050 무주택자들에게 ‘좋은 내집 마련’ 기회가 있어야 한다. 마천루 꼭대기에 붙어 있는 주택가격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울 주요 공공부지와 3기 신도시 상당수를 토지임대부로 공급하는 것은,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8.4 대책에서 발표된 서울 공공택지, 3기 신도시에 토지임대부주택이 대규모로 공급된다면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일 오후, 송파구 가락동 옛 성동구치소 부지에서 철거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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