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대원 '느루'의 언어탐험

아래 지도는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에 ‘Literal translations of South Korean city names’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이다. 익숙한 지도와 위치지만 이 지역의 이름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나라 지역명을 영어로 번역해보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발음 그대로의 로마자 표기다. 그러나 영어권 화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어 지명의 ‘문자 그대로의(literal)’ 번역은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를 살린 것이었다. 우리말 지명이 뭐였는지 헷갈릴 독자들을 위해 우선 우리에게 익숙한 명칭을 지도에 추가하였다.

 

대체로 동일한 한자에 동일한 번역어를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원주, 수원, 창원의 ‘언덕 원(原)’은 Field, 광주, 원주, 전주, 제주, 청주의 ‘고을 주(州)’는 Region이라 하였다. 그러나 대전의 ‘밭 전(田)’도 Field로 번역하고, 전주의 ‘고을 주(州)’는 Area로 번역하는 등 통일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또한 한자의 의미가 해당 지명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의미를 가져온 경우들이 있다. Benevolent는 ‘자애로운’이라는 뜻인데 인천의 ‘인(仁)’자가 가지는 ‘어질다’의 의미를 살리고자 택한 번역어라고 할 수 있다. Mugwort는 쑥을 뜻하는데 울산의 ‘울(蔚)’이 ‘고을 이름 울’ 외에도 ‘제비쑥 위’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사용한 번역으로 보인다.

하지만 울릉도의 ‘울(鬱)’의 의미 중 ‘우울하다’를 택해 depressed라고 번역한 것은 명확한 오역이다. 몇몇 아쉬움은 남지만 하나의 고유명사로 인식되어 각 글자를 나누어 살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재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이 땅의 의미를 알게 되기를 

장소의 명칭은 고유명사이므로 각 글자가 가지는 의미보다는 전체가 하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의미보다는 발음이 중요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의미를 담은 번역은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의미에 집중을 해보니 ‘부산’은 ‘가마 모양의 산’, ‘군산’은 ‘산들이 무리 지은 모습’, ‘수원’은 ‘물’과 관련된 지역일 것임도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명들을 다시 바라보자. ‘대전’은 ‘클 대(大)’와 ‘밭 전(田)’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본래 이 지역은 우리말로 ‘한밭’이라고 불렸다. 옛말에서 ‘하다’는 ‘많다, 크다, 높다’를 뜻했다. 즉, 큰 밭의 의미가 한자화되어 현재의 지명이 되었다. ‘대구’의 옛 지명인 ‘달벌’도 ‘넓은 촌락’ 혹은 ‘넓은 읍성’의 뜻이었다. ‘달벌’이 ‘대구(大丘, 현재는 大邱)’로 음차된 것인데 ‘언덕 구(邱)’가 분지 지형이라는 대구의 특색도 드러내 준다.

그런데 ‘대전’ 혹은 ‘대구’라는 말만 들었을 때는 크거나 넓다는 의미가 연상되지 않는다. 물론 한자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한자 지명의 의미도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큰 밭 마을’보다는 ‘대전’이, ‘높은 언덕 마을’보다는 ‘대구’가 좀 더 지명 같아 보인다. 그 이유가 ‘큰 밭, 높은 언덕’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어느샌가 의미의 직관성은 사라진 채 해당 지역의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지명에 담긴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고향 혹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한자를 찾아보고, 각 글자의 의미를 살려 번역해 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고려대학교가 위치한 안암동은 한자로 ‘편안할 안(安), 바위 암(岩)’이다. 의미를 살린다면 영어로 ‘peaceful stone’ 정도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유래 또한 실제 바위와 연관되어 있다. 수십 명이 앉아서 편히 쉴 수 있을 정도로 큰 바위였던 ‘앉일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의미와 발음을 모두 살려낸 재미있는 지명이다.

이러한 시도들이 모여 ‘대전’이 daejeon일 뿐 아니라 big field로도 기억될 수 있기를, 현재의 지명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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